변수를 즐길 수 있다면
열심을 내던, 달리기가 주춤했다.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 쉬었고, 동인지 발간과 소설 수정으로 인해 공백이 생겼다. 이제 명절도 다가왔다. 달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절박한 마음으로 로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달리지만 10km를 뛰었고, 15km의 장거리도 뛰었다. 다시 계획한 거리는 15km, 한번 뛰어서 쉬워질 줄 알았다. 아니다. 한번 뛰었다고 해서 그다음이 쉬워지는 게 달리기가 아니다. 다만 그 경험을 믿고 조금만 더 참자며 나를 다독일 수밖에 없다. 그 힘듦을 다시 견뎌내는 것이다.
선선한 줄 알았는데 햇볕이 아직도 뜨겁다. 앙상한 나무는 이파리를 땅에 떨구어서인지 그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햇볕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자꾸 목이 말랐다. 준비해간 물을 입에 머금으며 조금씩 목으로 넘겼다.
10km 이후, 마음의 소리가 쉼 없이 들린다. 이 정도면 애썼다는 마음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조금 더 달려서 계획한 거리를 채우자는 마음도 반대편 귀퉁이에 자리했다. 멈춰 설 건지, 달릴 것인지, 얼마나 더 달리다 멈춰 설 것인지, 달리고 있는 다리만큼이나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목표한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지만, 의욕은 희미해져 갔다. 조금 더 속도를 줄여 힘듦을 낮춰본다. 걷지는 말자고도 타이른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고비를 이겨냈다.
이제 2km 정도가 남았다. m(미터)로 환산하면 2000m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거리는 멀고도 멀다. 스마트 워치의 알람이 울리지 않는 것 같아 몇 킬로인지 확인했다. 한참 남았다. 숫자가 더디게만 느껴진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시선이라도 분산시켜야 이 힘듦도 나누어질 것 같다. 당진천의 물소리가 들리고, 논의 벼가 익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걷는 사람들이 보이고, 나의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처음 출발지로 되돌아가고 있다. 마음의 저항을 겨우 이겨낸다.
명절이다. 이번 명절은 길기도 길었다. 계획에 없던 부산 여행을 가자는 남편, 열이 올라오는 큰 아이, 명절 일정이 시작하기도 전에 변수가 생겼다. 결국 부산까지 갔으나 예약했던 요트 체험을 형님께 양도하고 시가로 갔다. 큰 아이는 A형 독감 판정을 받고 링거를 맞았다. 독감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독감이 누군가를 전염시키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특히 형님네 아이들에게 옮길까 봐 눈치가 보였다. 큰 아이에게 마스크를 끼고 있으라고 했지만, 밥을 먹을 때나 답답할 때는 마스크를 벗었다. 작은 아이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의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막막했다. 당장 집에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가의 분위기는 차례와 제사는 꼭 지내야 하는 것, 정성껏 전과 차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룰이 있었다. 심지어 아주버님은 그 풍습을 자신의 아들과 미래의 며느리에게도 전하겠다고 확고하신 분이다.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고 남편까지 아팠다. 장롱 면허인 나는 눈치가 보였다. 친정에 가지 않고 집으로 가자고 하기에는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막히지 않아도 4~5시간 거리인데 명절에는 더 긴 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결국 친정에 들렀다. 평소 2시간 거리지만, 이번에는 4시간이 넘는 시간을 남편이 운전했다. 결국 남편도 탈이 났다. 작은 아이도 열이 났고, 남편은 열과 함께 기침을 계속했다. 친정 집에 있던 감기약, 판콜 등을 계속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친정집에서 3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6시간이 넘어서 도착했다. 남편은 탈진할 정도가 되었고 독감 판정을 받았다. 우리가 다녀간 이후 부모님께서도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해져 링거를 맞았다고 했다. 형님네 둘째도 독감 판정을 받았다. 명절 내내 마음 졸이고 민폐는 이런 민폐가 없는 것 같았다.
마음에는 여러 원망들이 자리했다. 무리해서 여러 일정을 소화해 내려던 남편이, 독감 판정 후 집으로 바로 가야 한다고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시가의 분위기가, 길고 긴 연휴가, 장롱 면허인 내가, 독감의 전염력이 말이다. 변수들에 마음의 여유를 잃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몸은 모든 긴장감을 풀었다. 잠을 자고, 푹 쉬며 힘듦을 내려놓았다. 달리기는 꺼내놓지도 못했다. 동인지 수정본 파일을 보냈고, 소설을 수정하며 마감 날짜를 지켜야 한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남편은 장거리를 잘 견뎌왔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까? 아이들도 힘들었을 텐데 잘 참았다고 대견해야 할까? 마음의 여유를 잃었지만, 다시 괜찮다고 일으키려는 나를 감싸 안아야 할까?
힘듦은 분명 지나가고 있다. 물론 짜증이 늘었고 서로 눈치싸움을 한다.
비가 많이 왔던, 온가족이 골골골 했던, 교통정체를 2배나 더 맛본 이번 명절은 오래도록 기억 남을 것 같다. 그때는 그랬었지. 아무렇지 않게 말할 날을 기다려 본다.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길 기도한다.
#달리기에진심입니다만
#로드달리기도쉽지않아
#차례와제사를중시하는시가가조금은버겁다
#장롱면허의후회
#아직도나의할일은남았지소설수정
#힘듦도분명지나가리
#더기억될이번명절
#명절은적당히쉬자너무길다
#독감출몰
사진 : 언스플러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