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던 과제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손에 꼽았던 하기 싫었던 과제는 c언어 별 찍기였다. 오만가지 모양을 다 찍어오라는 교수님이 미웠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하게 된 수업시연은 별 찍기를 2등으로 내리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업시연을 마치고 나선 정답이 있었던 별 찍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기도 했다.
수업시연의 진행방식은 과목의 한 파트를 정해서 20분 동안 수업을 직접 하는 것이다.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수업의 목표는 무엇인지 작성하는 수업 지도안도 작성해야 한다.
수업 시연을 하면서 볼 수 있는 자료는 없고 주어진 것은 분필, 칠판, 나뿐이다. 청중은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교수님이다. 하지만 앞에 중고등 학생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해야 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교수님의 피드백, 다른 학생들의 질문과 내 수업을 평가한 평가지, 나의 수업시연 영상을 받을 수 있다. 이후 피드백을 반영해 수업 지도안을 수정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과제가 종료된다. 실제로 임용고시 2차에서 이렇게 수업 시연을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교수님은 이 시험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 잘해야만 할 것 같아 부담이 되었다.
이 과제는 거의 한 달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지도안을 작성하느라 2주가 흐르고, 수업시연을 준비하느라 또 2주가 넘게 흘렀다. 수업 시연 당일엔 반차를 쓰고 도서관 강의실을 빌려 혼자 연습했었다. 수업 시연을 연습하며 찍은 동영상을 다시 보면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보다 앞순서의 학생의 시연을 보고, 여기에 얹어지는 교수님의 피드백을 내 수업 시연에 녹이기 위해 지도안도 수정하고, 시연 준비도 수정하다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솔직해서 칼날 같은 교수님의 피드백이 마음을 헤집고 겁을 나게 하는 것은 덤.
시연 날이 다가왔을 땐 거의 좀비에 가까웠다. 초조함을 압도한 해탈이었다. 웃으며 동료들과 수업 시연해야 하는데 도입을 뭘로 할지 고민이에요. 제가 준비한 거 들어보실래요? 말하곤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외웠던 스크립트를 읊곤, “웃기죠? 하하하 저도 웃기네요... 하하하(절망)” 하곤 이야기했다.
아예 처음 해보는 형태의 과제였기에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제 어떻게 되던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어찌어찌 시연을 마쳤지만 마음에 들진 않았다.
목소리는 20분 내내 덜덜 떨리고 판서는 엉망진창에 준비한 내용을 잘 전달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학생들의 질문이 끝나고 교수님의 피드백이 두 귀로 슉슉 꽂혔다. 왜 이렇게 떠냐 듣는 사람도 불안하다, 이 단원에서 왜 이건 설명을 하지 않았는지, 더 좋은 예시가 있을 텐데 왜 이런 예시를 들었는지 등등
아마 열심히 준비한 것 대비 쓰디쓴 피드백만 올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하는 동안 괴로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방법은 직접 고민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 머리가 아팠다.
항상 낙관적인 나인데 이 날 만큼은 정말 대학원을 그만둬야 하나 싶은 고민도 했었다. 여러 가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탈탈 털려버린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어찌 됐던 완료는 했으니까.. 도망치진 않았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집에 와서 엄마의 응원과 위로 그리고 맛있는 밥을 먹고 나니 어느 정도 해소되긴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받은 수업 시연 동영상은 20분을 다 보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내 모습이 정말 구렸고, 열심히 하고 있는 시연은 더더욱 구렸다. 연예인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잠깐이나마 생각하다가, 교수님이 욕을 안 한 게 천만다행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수업 시연을 마무리했다. 이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이 수업에선 시연 외에도 계속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를 교수님이 던졌고,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벼운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에 대한 반론도 16주간 계속되었다. 종강 이후에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니, 수업 시연도 처음이지만 그렇게까지 토론을 벌이는 수업이 많지 않으니 내성이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내 의견에 대한 반론, 그것도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교수님의 논리적인 반론에 정신을 못 차렸고 실제로 이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정말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서 양치만 하고 잠에 들었다. 정말 말하는 감자였던 16주였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주간 굴하지 않고 질문을 한 점은 나를 위해 칭찬해 주었다.
말만 하는 감자에서 조금은 단단한 감자가 되었길 바란다.
하지만 운도 지지리 없던 나는 학교의 정책에 의해서, 그리고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한 학기 더 다녔단 이유로 다른 수업에서 수업시연을 한번 더 하게 되었다. 하하하.
그래도 한 번 해본 터라 준비와 진행 과정은 처음보다 나았고 시연 자체도 훨씬 더 매끄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피드백도 쓰디썼다. 하지만 나는 경력직 아니던가? 최고의 주문인 "그래 그럴 수도 있지"를 되뇌면서 이 상황을 즐기기 위해 애썼다. 교수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까지 피드백해 주시는 걸까? 더더 단단한 감자가 되어야지 라는 잘못된 결심과 함께.
그리고 며칠 전 1학기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 나눌 일이 있었는데 나지막이 수업시연은 하셨는지 여쭤보니
1학기 선생님이 어제 하고 아직 멘탈 회복이 되지 않았다며 약간은 울상으로 이야기했는데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기에 열띤 응원을 해줬다.
이 정도면 단단 따뜻 감자로 잘 성장한 것이겠지? 앞으로 더한 시련에도 꿋꿋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