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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결국엔 ㅎㅎㅅㅅ

by 이십일

길고 긴 대학원에도 끝이라는 게 보이는 마지막 학기가 도래했다.

이번 학기만 잘 마무리하면 졸업이기에 설레는 마음 반,

졸업하려면 넘어야 하는 졸업 과제들을 보며 착잡한 마음도 반이다.


개강 전 동기 선생님과 의지를 다지며, 항상 카톡 말미에는 졸업까지 정신 바짝 차리자, 우린 할 수 있다와 같은 걱정 섞인 격언을 나누며 다음 수업 때 보기로 하고 카톡을 정리한다. 복잡한 내 마음까진 말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평온하게 그리고 천천히, 꾸준히 한다면 졸업은 당연히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학기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사정 상 휴학을 고민하게 되었고, 해야 할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와중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도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광기만 남은 직장인대학원생은 휴학을 하진 않았다.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지라며 등록을 했다.


다섯 학기를 통틀어 수강신청은 대실패하여 남들이 고르지 않은 과목으로만 수강목록을 채웠다.

수강신청도 여유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거구나 하며 대학생 때 내가 얼마나 여유로웠는지 체감했다.


근데 막상 또 후기가 절절한 교수님의 수업을 가니 좋았다.

열정 넘치게 수업을 진행하시고, 목소리도 웃음소리도 호탕하시다. 너무 좋았다.


역시 파워가 있는 분들이 나와 잘 맞아.


무슨 정신으로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가서 벌써 한 달이 지났고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온다.

마지막 학기는 정말 역대급으로 정신을 그냥 집에 두고 몸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느낀다.

등록금이 아까워서라도 이렇게 다니면 안 된다 생각하지만, 지친 정신은 쉽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졸업시험은 벼락치기로 미친 듯이 풀고 외워서 답지에 답을 어찌어찌 쓰긴 했다.


지난 글 어디선가 썼던 것처럼 직장인은 진짜 어느 순간 과제를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요즘 진짜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럴 줄 알고 좀 쉬어가라고 25년의 황금연휴가 있었던 걸까?


연휴 동안 해버릴 것들에 대해 완벽히 플랜을 짜두었고,

절대 지키지 않겠다고 결심한 마음의 플랜을 성실히 수행했다.


쉬면서도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냥 안 했다. 하려고 일어나는 행위를 하는 게 더 불편했다. (ㅋㅋ)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핑계 대고 안 했던 달리기도 좀 했다.

연휴가 끝나갈 땐 괜히 후회스러워 친구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었다.

이 순간순간마다 대학원, 회사,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나 제대로 쉴 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근데 이게 나인데 어쩌겠어라는 합리화를 아주 3중주로 야무지게 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마음의 결심이 섰다. 나의 특장점인 추진력과 결단력이 발휘되는 시점이었다.

여기에 대학원을 다니며 얻은 나름의 교통정리 스킬로 순식간에 머릿속을 헤집던 생각의 정리를 끝마치고,

남겨진 걱정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상상 속에서 빠따를 쳤다. 감히 너희가 나에게?? How DARE you!


1번 걱정, 이건 졸업하면 해결됨.

2번 걱정, 이건 그냥 하면 해결됨.

3번 걱정, 버티면 해결됨.

4번 걱정, 걱정할 필요가 없음.

.

.

.

이렇게 할만한 걱정이 다 사라져서, 아니 일단락되어서 브런치에 와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신을 빼놓고 다녔지만, 학교 수업 중 하나였던 생활지도와 상담 수업이 꽤 도움이 되었다.


호탕하고 에너제틱한 교수님의 목소리가 정신이 빠져있는 내 귀에 쏙쏙 꽂히면서, 학생을 위한 생활지도와 상담을 공부해야 하는데, 교수님의 이론 설명을 들으며 나를 위한 나의 생활지도와 상담을 셀프로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꼭 여러모로 힘이 들어야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생활지도

생활지도는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 및 주변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활동이며 예방적 기능을 갖고 있음.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독립적·자율적·책임감 있는 성숙한 성인으로서 ‘성장’과 ‘발달’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자 함


나도 대학원생이긴 하니까,,, 효력이 있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성숙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닌가)



글을 쓰며 느낀 교육대학원의 긍정적 포인트 한 가지,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아보게 된다.

그렇다 보니 단어 하나를 내가 사용할 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교육학은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쓸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잘 설명하기엔 나의 식견이 부족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그러함..


증오스러웠다가, 정말 생각지 못한 포인트에서 약간의 도움이 되는 대학원생활이 얄미울 지경이다.


그래도 모든 걸 한건 나였으니, 내가 나를 칭찬해야 한다.

길고 길었던 연휴를 마무리하고 다시 하루에 출퇴근과 등하교를 모두 하는 삶으로 돌아가보자.


나름의 다짐문구도 써서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성숙한 성인은 아니고, 약간 삐뚤어진 성인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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