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법성포에서 행복을 느끼다
영광에 가다
대학생 딸과 함께 전라남도 영광을 찾았다. 건축을 전공하는 딸이 집짓기 경험을 하고 싶다며 해비타트 봉사에 지원했는데, 가능한 지역이 영광이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자원봉사에 맞춰 가려니 당일 이른 아침에는 버스가 없어 전날 내려가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영광에 하루 전날 도착해 들른 곳이 바로 법성포였다. 뜻밖에도 그곳에서 우리는 삶의 우연이 선물해 준 특별한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 법성포
법성포는 영광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였다(돌아올 때 보니 버스로는 약 30~40분이 걸린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영광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 무렵이라 허기를 달래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법성포로 향했다.
법성포는 예로부터 굴비로 유명하다. 영광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힌 참조기는 맛과 풍질이 뛰어나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는데 이것이 바로 법성포 굴비의 명성이 시작된 이유이다. 굴비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이 왕위를 찬탈하려다 실패하여 영광으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훗날 이곳 굴비를 임금께 진상하면서 ‘비굴하게 굴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라 이름 지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의 어떤 기록에도 ‘굴비(屈非)’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되었든 굴비에 그러한 배경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법성포에 들어서자 가게마다 ‘굴비’ 간판이 즐비했다. 검색으로 찾은 강화식당이란 곳에 들어가 보리굴비와 굴비 정식을 주문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푸짐하게 차려진 반찬들과 담백하고 고소한 굴비는 우리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았다. 딸은 녹차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와 함께 마지막 한 톨까지 깨끗하게 비웠고, 굴비의 잡내 없는 깔끔한 맛에 연신 감탄해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마침 우리가 법성포를 찾은 날에 단오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 축제는 법성포 일대에서 단오 무렵 열리는 전통 민속축제로, 올해는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시골 축제에 가니 왠지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와 품바 공연, 풍선 터트리기 같은 옛날 놀이동산에서 보던 놀이도 하면서 오랜만에 여유롭게 시간을 즐겼다. 보통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모든 것들이 즐겁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숲쟁이 꽃동산
산책을 하려고 둘러보던 중 근처에 숲쟁이 꽃동산과 백제불교최초도래지가 눈에 들어왔다. 숲쟁이 꽃동산은 6월이면 노란 금계국이 활짝 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그곳에 갔더니 노란 물결의 아름다운 산책길이 이어져 있었고, 약간만 올라서도 드넓게 펼쳐진 논밭과 멀리 영광대교가 쭉 펼쳐 보였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우리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숲쟁이 꽃동산에 이어져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는 또 다르게 인상 깊었다. 이곳은 불교가 처음 백제로 전해진 곳으로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을 거쳐 이곳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석탑은 인도 양식이 가미되어, 우리가 흔히 보는 한국 사찰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지역에 대한 댓글에 누군가 적어 놓은 것처럼 참 묘하게 신기로왔던 곳이었다.
우연이 가져다주는 행복
법성포에서의 하루는 다음날 해비타트 봉사를 목적으로 시작된 여정이었지만 한상 가득한 굴비 밥상과 시골 단오제, 금계국이 만발한 꽃동산, 그리고 불교의 첫 발자취를 간직한 도래지까지 모두 예측하지 못한 우연의 선물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계획하고 예측하며 살지만, 예측을 벗어나는 순간들은 종종 뜻밖의 행복을 안겨준다. 이 날 법성포에서의 모든 순간처럼, 우리의 삶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우연적 행복으로 가득 찰 것 같은 기분 좋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