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by JVitae

엄마와 아빠가 냉전에 들어가셨다. 작은 집에 마흔 살의 커플과 일흔 살의 커플이 함께 살 때의 불편함은 이런 것이다. 싸운 티를 낼 수도 없고 안 낼 수도 없다.


엄마는 어제 아이들이 잠들자 초저녁부터 방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아빠도 엄마가 많이 피곤한 모양이라며 어색한 굳은 표정으로 일찍 방에 들어가셨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두 분이 시애틀에 오시면 방을 늘 따로 마련해 드린다.


"아빠 방에 한번 따라 들어가 볼까?"

물었더니 남편이 말렸다.

"이런 상황에 분위기 풀어본다고 자기가 아버님 방에 들어가면 꼭 울고 나오더라고."

맞는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일은 엄마와 아빠를 떨어뜨려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코스트코에 가자는 핑계로 엄마를 집에서 모시고 나왔다.

"차 안에서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아니."

볼륨을 높여 찬송가를 틀었다.


찬송가에 얽힌 엄마와의 추억이 많다. 엄마는 노래를 잘하시고 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 나는 피아노 반주를 하고 엄마는 그에 맞춰 찬송가 부르기를 자주 했다.


나 중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교회에서 중창단을 하셨다. 메조소프라노셨는데 악보만 보고는 음을 못 찾겠다 하셔서 내가 메조소프라노 파트만 피아노로 쳐서 녹음을 해드렸다. 저녁이 가까워지는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불 꺼진 집안에서 녹음기 옆에 앉아 바닥에 찬송가를 펼쳐놓고 엄마가 연습을 하고 계시곤 했다.


엄마와 함께 찬송가를 들으면 우리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차 안에서 각자 생각에 잠겨 한참을 갔다. 음악이 꽁꽁 얼어붙은 엄마의 마음을 녹여주길 바랐다.


아직 코스트코가 열지 않은 시간이라 근처에서 잠깐 산책을 했다.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하다 예전에 남편과 다퉜던 이야기까지 나왔다. 내내 듣기만 하시던 엄마가 운을 떼셨다.

"나야말로 지금 너희 아빠랑 이혼을 할까 싶구만."

언제나 표현이 과격하신 분이다.

"왜?"

"네 아빠가 정신을 못 차리잖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모르는 것 같기도. 더 묻지 않았다.


개점 시간이 다 되어 산책을 끝내고 차에 올랐다. 코스트코 주유소에서 먼저 기름을 넣고 매장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에게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물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 아빠한테 말을 해 줘?"

"아니."

안 하신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왜?"

왜 말을 안 하시는 건지가 궁금했다.

"그럼 내가 언성이 높아져. 너희 집에서 그럴 수는 없잖아. 그리고 너희 아빠는 내가 뭔가 한 마디를 하면 자기는 백 마디 천 마디를 하는 사람이야."

엄마의 첫마디에 이미 납득이 갔다. 아빠는 말로 이기기가 힘든 분이다. 독하다는 표현도 어울린다. 그런 아빠에게 본때를 보이기 위해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의 무기와 대처법이 있는 거다.


어느새 코스트코 장을 다 보고 계산대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코스트코 계산대 근처에는 간식거리가 많이 진열돼 있었다.

"우리 사야 할 거 뭐 빠뜨린 건 없나? 엄마 간식은 안 사도 돼요?"

"너희 아빠 먹을 만한 달달한 빵 같은 거 뭐 하나.. 커피하고 그거 먹는 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일과라잖아"

엄마가 마들렌 한 상자과 미니 웨하스 한 박스를 추천하셨다.

"아빠랑 이혼할 거라면서 챙기기는 또 엄청 챙기네?"

내 말에 대꾸하지 않으셨다.

"집에 가면 아빠한테 간식으로 드시라고 말하면서 이거 두 개 드려."

카트 위에 얹혀 덜덜덜 끌려가는 아빠의 간식을 보는 내 정신도 함께 덜덜덜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미우니 고우니 해도 엄마 인생에 남자는 아빠뿐이다. 아빠 인생에도 여자는 엄마뿐. 두 분은 대학교 1학년 때 미팅에서 만나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셨다. 잘 살았던 아빠네 집안이 결혼할 무렵에 폭싹 망하면서 아빠가 엄마를 놓아주려 하셨다는 한 번의 위기 정도가 있었을까.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빠를 더 냉랭하게 대했다. 아빠도 무조건 굽히고 싶진 않으신 모양이었다. 애쓴 일에 결과가 없어 힘이 빠졌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다 마음을 달랬다.


저녁이 되자 엄마는 또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셨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아빠는 나와 남편에게 다가오셔서 엄마 체력이 많이 약해져 큰 일이라 말씀하셨다. 몸이 안 좋으니 별 것도 아닌 일에 자꾸 짜증을 부린다고. 내년부터는 시애틀에 못 올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빠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다. 더 이상 우리와 애들을 보러 시애틀에 올 수 없게 되는 것.


아빠 말대로 엄마가 몸이 안 좋아 기분까지 안 좋으신 것일 수도. 혹은 아주 헛다리일 수도. 내게 배팅을 하라면 후자에 걸겠으나, 커플의 일은 커플만이 아는 것이니. 그저 내일은 두 분 사이에 진전이 있기를 바라게 되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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