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주택가 골목 초입에 있는 단층의 자그마한 주택이다. 이 집은 전에 사시던 할머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매물로 나왔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또 혼자 이 집에서 28년을 사셨다. 자식은 없으셨던 모양이지만,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이 집을 얼마나 자식처럼 사랑하셨는지 느껴진다.
집 안은 45평 정도인데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앞, 뒤, 마당의 넓이가 그 다섯 배쯤 된다. 뒷마당에는 갖가지 나무가 한 그루 한 그루 정성스레 심겨 있다. 봄마다 태양처럼 눈부신 개나리 한 그루, 여름마다 시큼한 사과가 달리는 사과나무 세 그루, 체리가 열리지 않는 체리나무 한 그루, 인디언들이 활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이 정도 크기는 희귀하다는, 이름을 까먹은 나무 한 그루, 그 외에도 아직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나무가 네댓 그루다. 앞마당에는 집 벽을 따라 블루베리 나무가 늘어서 있다. 블루베리 나무의 키가 창문의 높이보다 커지면 창문 높이에 맞게 잘라주곤 한다. 어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이 좋으면 우리 집 앞 블루베리를 따 먹고 가는 사슴을 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군데군데 꽃밭을 만들어 다양한 꽃을 심어 놓으셨는데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것은 장미와 튤립, 은방울꽃, 라벤더 정도로 아주 일부분이다. 이 집에서 3년 반을 살았음에도 아직 집안의 나무와 꽃의 이름도 다 알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거리는 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만삭이 돼서 이 집에 이사 왔다. 이사 온 지 3주 만에 핑크가 태어났고 그 이듬해 포동이가 태어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남편과 나는 직장일과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에 급급하다.
이 골목에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25년, 30년씩 사신 분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들어와 한 골목에서 함께 아이들을 길렀고 이제는 노부부들만이 남아 계신다. 전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이사를 들어왔을 때 골목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한 분씩 우리 집에 찾아주셨다. 어떤 분들은 아기 옷을, 어떤 분들은 아기 장난감을, 어떤 분들은 직접 구운 빵과 케이크를 들고 오셨다. 미국에서 십 년이 넘게 살았지만 새로 이사 들어온 사람을 온 골목이 이렇게 맞아줬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감동을 받은 우리는 핑크가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작은 선물을 사서 골목의 집들을 돌며 답례 인사를 했다. 그때 만난 할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전에 사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골목이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젊은 우리가 이사를 들어오더니 새 생명까지 낳았으니 참 기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것을 목도함에 골목 어르신들의 기분이 복잡하셨겠구나.
처음 이사를 들어와 한창 짐 정리를 하던 때였다. 당분간 필요 없는 짐들을 정리해 안 보이는 곳에 치우려 다락에 올라갔던 남편이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 몇 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전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유족분들에게 연락을 취해봤더니 폐기해 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왠지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 그냥 그대로 버렸으면 했는데 역사가 오랜 물건들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남편이 자기 혼자라도 열어보겠다며 마당으로 박스들을 가지고 나갔다. 마당으로 난 큰 창문으로 남편이 박스에서 꺼내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공군이셨던 모양이었다. 한 박스에 공군 가방, 수첩, 문구류 등이 잔뜩 있었다. 수첩을 열어보니 할머니의 생일과 기념일, 그리고 자잘한 일정들이 쓰여 있는 것을 남편이 읽어줬다. 로맨틱했다. 할머니께서는 뜨개질을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박스 하나가 온갖 털실과 각종 코바늘과 만들다 만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태교를 핑계로 뜨개질로 쓸데없는 몇 가지를 만들어봤던 터라 욕심이 스며 남편에게 그건 버리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
할머니의 유품 중에 자잘한 꽃무늬로 장식된, 핑크색 천으로 커버를 만든, 아직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도톰한 다이어리 하나가 있었다. 잘 쓰지도 않는 다이어리를 크기별로, 색깔별로, 두께별로 사서 쟁이곤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창문 밖 남편에게, 그 다이어리는 내가 갖고 싶다, 집안으로 가져와 달라, 이야기했다. 그 후로 다이어리는 거실 벽난로 옆 책장 맨 아래칸에 줄곧 꽂혀만 있었다. 가끔 책장을 뒤적이다 아 맞다 이게 있었지 하긴 했지만 마땅히 쓸데가 없어 다시 꽂아두곤 했다.
며칠 전 그 핑크색 다이어리가 핑크의 눈에 띄었다. 첫눈에 반한 모양이었다. 당장 "This is my special!"을 외치더니 볼을 부비고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겨보고 난리가 났다. 저녁 내내 고이고이 품에 안고 다녔다. 어느 순간 다이어리에서 코닥 갈색 필름이 툭하고 떨어졌다. 핑크가 이게 뭐냐며 내게 물었다. 그런 필름을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알아보는 데 몇 초가 걸린 듯하다. 불에 비춰봤다. 주로 풍경 사진이었다. 바닷가 여행을 가서 찍은 듯 보이는 것도 있었고 산에 가서 찍은 듯 보이는 것도 있었고 우리 집 전면을 찍은 것도 있었다. 그중 딱 한 컷, 웬 젊은 여자 하나가 옛날 미국 가정주부가 입었을 듯한, 잘록한 허리 아래가 사방으로 퍼지는 원피스를 입고 우리 집 마당에 서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전에 사시던 할머니였을까. 할아버지께서 찍어주신 사진일까.
핑크는 내게 코닥 갈색 필름을 주고는 핑크색 다이어리만 본인이 챙겨 갖다. 필름과 남겨진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버릴 수가 없다. 동네 친구분들에게 드릴까 했더니 지난 3년 사이 많은 분들이 30년 사셨던 집을 처분하고 실버타운에 들어가셨다. 내가 가지고 있자니 그건 기분이 좀 이상하다. 땅에 묻자니 천년이 가도 썩지 않을 것 같은 플라스틱이다. 남편에게 부탁해 다락에 올려놓을까 보다. 아직 몇 개 가지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유품들 사이에 끼워놓자고. 그 편이 가장 행복하고 편하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