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우의 체계적 스펙화

일본 직장 이야기... 사람이 중요하다.

by 중년의글쓰기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외국 자동차 모델을 국내에서 제작, 생산하면서 시작되었다. 먼저 제조 생산기술을 습득하고 점차 설계 및 개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리고, 현대정공)는 미국 포드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기아자동차는 마츠다와 포드, 쌍용자동차는 벤츠, 대우자동차는 오펠(GM계열)에서 모델을 들여와 기술협력을 했다. 이 과정에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도면을 구매하고 생산과 평가를 위한 여러 기준서를 입수하게 된다.



부품의 경우, 엔진 트랜스미션 등 주요 부품은 수입하고 그 외 주요 부품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국산화를 통해 원가경쟁력과 기술을 확보했다.


서울 올림픽 이후 1990년대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여 수요가 확대되자 더욱 다양한 차종을 들여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글로벌 외국계 부품회사와 국내업체 간 합작사가 생기고 부품개발이 활발해졌다. 이렇게 협력업체의 기반이 튼튼해지면서 완성차업계의 독자모델 개발도 촉진되었다.

1990년대 후반, 나는 회사의 오래된 자료와 한정된 범위의 스펙, 협력업체 기준서를 가지고 설계 공부를 했다. 신입시절 일단 현장의 문제를 부딪혀 배우면서 시작했다. 실수도 많이 했다. 그때 선배들은 좋은 기술자료는 책상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고 잘 공유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자 많은 차종이 개발되고 수출이 급속히 증가했다. 그리고, 전 세계 다양한 고객 요구사항을 알게 되고 많은 품질문제를 겪게 되었다. 우리 자동차 업계의 설계 개발 기준서 (specification)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 GM이 국내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자 외국의 다양한 기술자료들이 국내 협력업체와 완성차연구소에 소개되었다. 특히, 일본 자동차사의 100년 노하우가 담긴 잘 정리된 기술자료들은 가치가 컸다.




2004년~2006년 일본연구소 파견 당시, 나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들의 '최신 자동차 스펙, 기준서’ 자료를 열심히 찾아 보았다. 또한 연구소에서 추최하는 벤치마킹 행사와 업체 기술 세미나를 참석했다. 외국 유명 업체 부품들을 보며 직접 질문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일본 연구소의 최신 스펙, 기술자료 접근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들은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자료를 한국 엔지니어에게 쉽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해야 하니 내가 필요한 만큼만 그때마다 복사해서 주었다.


나는 점차 일에 익숙해지자 결과를 만들어 내었고 더 많은 일을 하려고 덤벼들었다. 그제야, 일본 매니저는 더 많은 자료를 마음껏 주었다. 일을 위해 필요하니까, 그래야 본인들도 좋으니까 그런 것이다. 직접 실무 일을 하면서 그 ‘기준서’가 나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회사에 기여하고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성장했다.



2006년 6월, 프로젝트 상세설계를 끝내고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한국 복귀 전, 일본 매니저와 상담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Capitalization’ 자료를 요구했다. 나는 ‘capial. 하면 자산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엇을 원하는 지를 다시 물었다. 매니저가 원하는 것은 내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발견하거나 실수한 것에 대하여 ‘자료 정리’를 해서 보고해 달라는 거였다.


사실 나는 습득한 노하우와 일본 기술자료를 모아서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속으로 ‘너희는 가진 것이 많으니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서 capitalization을 하자’ 고 다짐했다.


한국으로 복귀한 뒤, 자료를 정리하여 보고서를 만들었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큰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결국, 내가 정리한 보고서는 ‘과장 진급 프리젠테이션’자료로 써먹었다.


내가 경험한 일본 회사의 원칙 하나는 <실패 또는 성공을 다음 성공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 세계 주요 기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체계적이고 쉽게 적용 가능한 기술자료>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웃소싱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기업의 설계품질,설계비용 경쟁력은 실패를 줄이고 단기간에 신뢰성 높은 제품을 개발하는 능력에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자료만 가지고 ‘자동차 설계 개발’이 가능한 게 절대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항상 그렇듯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엔지니어 개인 노하우는 10년~15년 이상 실무에 몰입한 결과이다. 회사의 미래는 이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체화된 노하우는 1~2년 가르쳐서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경험 많은 엔지니어’와 한창 일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 엔지니어 간의 멘토-맨티 커뮤니티가 중요한 것이다. 선배의 티칭보다는 코칭을 통한 후배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현지 글로벌 기업에서 외국 엔지니어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서로 협력하면서 같이 성장했다.


우리는 젊은이가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갈수록 젊은 인재들이 현지 외국기업에 취직하려고 한다. 청년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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