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의 <합리적 기준 없는 임금피크제 무효>라는 판결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었다. 이번 사태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임금구조에 대한 해결을 등한시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공감되는 기사였다. 반면에 “호봉제 등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한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라고 소개하는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2014년부터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온 정부가 일관성 있게 정책을 집행했더라면 호봉제 임금체계에 따른 임금피크제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많은 분들이 이웃 나라 <일본 직장, 일본 회사>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다. 이 글은 나의 <일본 직장생활>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내가 경험한 <일본 회사>는 이미 직무중심으로 조직이 구성되어 있었고 아웃소싱에 대한 활용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2004년 10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일본 현지에서 일본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직급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겪은 직급 호칭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2004년 그룹 차원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새로운 자동차를 출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업무분담이 결정되었다. 디자인은 프랑스연구소가, 설계 개발은 일본연구소가 담당하고 생산은 한국공장에서 하기로 했다. 대신 설계 개발 단계에서부터 한국연구소에서 일부 참여를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연구소 십여 명의 엔지니어가 선발되어 일본연구소로 파견근무를 가게 되었다. 당시 나와 동기 한 명이 대리였고 대부분 과장급의 선배들이었다.
당시 회사는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 순으로 수직적, 연차 호봉 중심의 직급체계였다. 다만, 각 그룹장은 차장급 대표한명이 팀장은 부장급에서 대표한명, 부서장은 보통 임원이 맞는 식이었다. 파견팀은 실무자급으로 꾸려졌지만 호칭은 직급대로 불렀다. 따라서 파견팀에 주어진 새로운 영어 명함에 대리는 주니어 매니저(Junior Manager)로 과장은 (Manager)로 표기했었다.
파견팀 명단을 전해받은 일본연구소는 우리의 소속 부서, 업무별로 일본연구소 담당 카운터 파트너를 배정했다. 일본 측의 카운터 파트너는 각 부서의 매니저로 구성되었다. 일본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서로 인사를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각 부서별로 면담을 시작했다. 우리의 ‘매니저’에 대응하는 일본의 ‘매니저’와 면담을 한 것인데, 일본에서 매니저라고 하면 ‘부서장(임원급)’을 뜻했다.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의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서로 얘기의 수준이 맞지 않았다. 일본 측은 우리의 직급이 과대포장? 되었다는 걸 간파했다. 그 후, 일본 측은 우리의 카운터 파트너를 실무담당자나 테크니컬 리더로 바꿨다.
결국, 한국 회사의 직급체계에 따른 호칭이 일본 회사의 직무중심 호칭과 맞지 않아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두 번째, 일본은 실무자 대비 관리자의 수가 굉장히 적다. 일본연구소 현장에서 근무해보니, 대부분의 인원이 현업 업무를 가지고 있는 실무자였다. 관리자는 부서장 1인과 장차 부서장이 될 후임 1인이 진짜 ‘매니저’ 업무를 했다. 부서 안에는 부품, 시스템별로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그룹 리더 역시 실무를 하면서 ‘매니저’와 ‘담당자’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결국 100명이 넘는 인원이 전무 실무자이고 단지 2명만이 관리자 직급이었다.
일본 매니저는 무수히 많은 전 세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한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처럼 1~2개 프로젝트만 하고는 바로 매니저 커리어로 옮기는 일은 없었다. 나의 담당 일본 매니저를 대해보니, 실무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 그리고 경험이 굉장했다. 뿐만 아니라 밤늦게까지 작은 부분까지 스스로 챙기고 나의 요청과 질문에 대해 본인이 직접 회신을 했다.
반면, 우리나라 직급체계에서는 일하는 인원에 비해 챙기고 보고하는 사람이 많다. 소 잡아먹는 사람만 많고 정작 소키 우는 사람은 적다! (최근 이런 경향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보고 하고 설득하고 실무자들을 이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잠시, 나의 파견근무 조건을 간단히 설명해야겠다. 나는 한국 회사와 고용관계이면서 사용 사업주는 일본 회사였다. 파견 후에는 일본 회사가 나의 일에 대한 감독과 평가를 하게 되었다. 다만, 인사 관련된 일은 한국연구소 인사팀과 일본연구소 인사팀 간 협의를 하기로 했다.
업무 관련해서 부서 배치 상황은 더 복잡했다. 나의 소속은 일본연구소였지만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이곳에서는 <설계 전문 자회사>가 수행했다. 나는 다시 자회사로 사무실을 옮겨야 했다. 결국, 소속은 일본연구소였지만 자회사에서 실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무를 같이 하는 매니저와 동료들은 자회사 소속이었고, 기술지원이나 고과 면담은 일본연구소 매니저와 해야 했다. 인사 고과 의견은 자회사 매니저가 하고 최종 결과를 나와 일본연구소 매니저와 협의해서 결정했다.
세 번째, 설계 전문 회사에 프로젝트를 턴키 계약을 하고, 수주받은 전문 회사는 아웃소싱 인력을 많이 활용했다. 새로운 프로젝트 업무를 주로 외부 설계 회사에 통째로 맡겼다. 프로젝트는 그 일의 범위와 일정이 정해져 있고, 기술 수준이 아주 높지 않아서 이런 방식이 적당했다. 결국, 인건비가 낮은 자회사에 맡겨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004년 이전에 이미 설계 개발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 중에 있었다.
연구소 정직원과 자회사의 연봉 차이는 꽤 있다고 들었다. 그러면, 일은 다른 것인가. 어느 정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동일 프로젝트에서 신기술을 적용하는 부분은 연구소 직원이 담당한다. 대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술이 적용되는 부분은 자회사에 전적으로 맡긴다. 연구소 직원은 신기술이나 품질문제 대응 전략이나 기술분야 Policy, 새로운 기준서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설계 개발 자회사는 이런 정책, 기준서를 바탕으로 실제 차량을 설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맡는다. 그리고 프로젝트 업무 중에서 반복적이고 테크니컬적인 일은 외부 용역에 맡긴다, 예를 들어 CAD 작업(오퍼레이터)은 외부 용역 인원이 회사 내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었다. 간단하고 일회성 해석 업무는 베트남연구소에 보내서 결과를 받았다.
네 번째, 설계 아웃소싱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다. 아웃소싱을 잘 활용하려면 설계 개발 업무를 표준화해야 한다. 그리고 기준서, 스펙이 쉽게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웃소싱 담당자가 이를 이용해서 일을 맡긴 회사의 정책과 스펙에 맞게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연구소 인력의 시간을 빼앗게 된다. 즉, 연구소 인원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대신에 아웃소싱 담당자를 일일이 가르쳐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회사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일본 연구소는 <표준설계 프로세스>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신입사원이든 아웃소싱이든 업무 노하우가 아직 미흡한 인원을 프로젝트에 투입했을 때, 쉽게 단기간에 70점짜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협업과 지도 등 내부 피드백을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설계 품질 목표 100%에 도달하는 것이다.
유럽연구소 역시 프로젝트를 별도의 설계회사에 맡기기 위해 스펙을 고도화하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경쟁력 있는 협력업체와 ‘기술을 공유하는 합의’가 필요하다. 연구소 자체적으로는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화해야 한다.
세계의 유수 자동차 기업들은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자동차를 출시해야 한다. 자동차 프로젝트의 성패는 목표 품질(Quality), 목표 원가(Cost)를 맞추는 차량을 적절한 시기(Delivery)에 출시하는 데 달려있다. 디자인은 새롭게 하되 신뢰성 있는 제품을 설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존 기술을 빨리 적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따라서 경력이 많은 선임들이 엔지니어링 멘토와 설계 검증을 담당하고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연구원과 경쟁력 있는 설계 아웃소싱 인력의 활용이 중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