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장인 것처럼 일하기.

나의 직장 연대기 … 혼신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프로젝트

by 중년의글쓰기


2006년 6월 일본 파견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어머니 지인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도 했고 2007년에 아들이 태어났다. 달콤했던 짧은 신혼생활이 끝났다. 아내는 아이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다시 바빠졌다.


프랑스 본사에서 진행 중인 소형차 개발 프로젝트였다. 시작단계(첫 부품을 받아서 첫차량을 조립해 보는 과정)에서 일을 받아와서 부품개발과 한국공장 양산까지 마무리하는 게 임무였다. 과장 진급을 한 후, 후배 2명과 함께 일을 맡게 되었다. (후배는 이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도 동시에 담당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새로운 조직 그리고 이제까지 개발했던 부품과는 다른 시스템을 담당하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설계자가 부품(시스템) 설계뿐 아니라 개발 담당자, 구매담당자를 아울러서 총괄 매니징을 하는 특이한 조직을 운영했다. 나는 3가지 시스템 별로 수백 개 부품의 설계, 개발을 맡았고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


그래도, 이미 설계가 되어 있는 차량이었기에 큰 부담이 없을 거라 여겼다. 담당 부품들의 QCDW (Quality, Cost, Delivery, Weight 부품 품질, 구매원가, 일정, 중량) 지표를 목표에 부합하도록 매니징 하는 게 주된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큰 착각이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선행 개발 중인 차량을 참조하여 외부용역이 설계를 담당했었다. 2008년 Job hand-over를 하러 2주간 프랑스에 출장을 가서 현실을 알게 되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용역담당자가 설계한 부품들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선행 차량의 부품이 바뀌면 따라서 변경해야 하는 불가피한 점도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 공장의 양산 조건 (조립, 품질관리)에 맞지 않는 점이 많이 발견되었다.


워낙 부품별로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에, 문제 케이스별로 계속해서 해결책 solution을 만들어야 했다. 그때마다, 타 부서와 업체를 설득하고 예산을 받아오고 일정을 챙겨야 했다. 공장에서 생산 trial을 하면서 동시에 설계변경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프랑스 연구소는 일본연구소에서 활용했던 상세한 설계 가이드 spec도 없었다. 일본연구소는 이미 동시공학* (simultaneous / concurrent engineering ) 설계 시스템이 정착되어 되어 있었다. 애초에 문제점이 없도록 설계하는 프로세스를 경험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개선 후의 설계 프로세스에서 이제 거꾸로 개선 전 설계 프로세스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함께 참여했던 모든 한국 엔지니어들이 이제 죽을 만큼 고생길이 열렸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계하는 프랑스 엔지니어 측 hand-over 지표는 녹색불 green light이었고 실제 인수하는 입장에서는 red light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수박 water melon’이라고 놀렸다. 겉은 녹색이지만 속은 시뻘겄다는 뜻)


내가 담당하던 부품이 수백 가지였는데, 마지막까지 설계 변경하지 않은 부품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한 부품에 2번씩 설계 변경해도 나는 수백 번의 설계변경을 했었다. 비용이며 품질 육성, 일정 등 모든 지표에서 최악이었다.


한국 공장에서 첫 차량에 대한 ‘품평회(품질평가)’를 열었을 때를 지금도 기억한다. 나의 책임분으로 가져온 첫 번째 차량에서 나온 결점 defect가 수십 개였다. 오죽하면 평가 담당자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몇 개를 중복으로 빼줄 지경이었다.


내가 담당하던 3가지 시스템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관리 1순위 대상이었다. 나를 믿고 따라준 두 명의 후배 엔지니어와 구매담당자, 공장 담당자는 살기 위해 죽을 만큼 일했다. 나는 매일 밤늦게 야근은 기본이고 토요일에 공장에서 남아서 일했다. 겨우 토요일 늦게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와서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다시 일요일 밤부터 보고서를 쓰는 생활을 1년 넘게 했다.


아들은 얘기였고 아내는 아이 키우는 게 처음인데, 나는 육아를 도와주기는커녕 회사일에 올인해야만 했다. 내가 잘못하면 내 그룹(엔지니어, 구매, 부품개발 담당자) 모든 사람들이 고생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보고서 문구를 고치고, 내가 직접 설계 검토하고 변경안도 만들고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신차를 제때 출시해야 했다.


이 당시 나는 잘 피우지 않던 담배를 매일 반 갑씩 피웠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머리도 많이 빠졌고, 체력도 심하게 꺾였다. 내가 놓치면 동료들과 팀장과 이사님까지 모두 곤란한 상황이었다. 매일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묻고 요청했다.


"어떻게 되고 있나? 보고하라고…"


소 키우는 사람은 적고, 소 잡아먹어야 하는 식구들은 많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 근무환경을 바로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눈앞에 드러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후배와 동료,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그 어려운 시절을 잘 견뎠다. 지금도 감사하다!


나는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무척 강했었다. 내가 직접 모든 걸 파악하고 내 손길이 가지 않은 부품이 없었다. 내가 개발했던 그 차가 징그러울 만도 한데, 애착과 자부심이 크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 차량은 남미, 인도, 러시아 공장에서도 출시를 했다. 덕분에 여러 나라의 엔지니어를 이끌고 글로벌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 이후에 내가 얻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타 부서와 협력업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전화를 하면 모두가 먼저 협력을 해주었다. 왜냐면 내가 일을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나의 능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주인의식이 한층 더 커졌다.


다만, 이러한 자부심과 주인의식은 퇴사할 때, 나에게 더 큰 상실감으로 변하게 된다…





설계 노하우를 정리해서 초보 설계자라도 쉽게 활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프랑스 본사는 일본연구소 설계 노하우를 가져다가 입맛에 맞게 설계 전략 policy*를 정립하는 작업을 했다. 또한, 과거 문제점을 정리해서 capitalization 하고 spec을 만드는 문화도 만들었다. 이제는 일본과 프랑스의 100년 차량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시공학 simultaneous / concurrent engineering* 차량 개발 프로세스 융합하여 발전시켜 가고 있다.




*policy: 엔지니어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solution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자동차 회사마다 추구하는 전략 policy가 다를 수 있다. 그간의 경험, 개발된 부품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차량에서 동일한 위치에서 유사한 기능을 가지는 부품이라도 자동차 회사마다 solution은 다를 수 있다.


* 동시공학: 동시 공학의 목적은 개발과 테스트까지의 전 과정을 동시에 반복 진행하여 완벽한 신제품을 최대한 빨리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높은 수익률을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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