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과 친해져라! 일본직장생활 분투기

나의 직장생활 연대기... 경쟁, 협력, 소통을 통해 배운다

by 중년의글쓰기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를 꼽자면, 영국 프리미어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 선수, 영원한 캡틴 박지성 선수를 들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유럽축구리그에 진출,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하여 그 실력을 입증했다.


월드클래스급 실력뿐 아니라, 영국 프리미어리그, 일본 천황배 우승이란 공동목표를 위해 팀 내에서 항상 솔선수범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서로 믿고 협력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했기 때문에 동료 선수들이 먼저 인정했다.


젊은 시절에 팀 동료들과 함께 목표에 도전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유명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의 ‘그라운드’에서 이런 경험을 자주 해야 된다. 나 역시 돌아보니,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했다.

특히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감내한다면 이는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킬 기회였다.

손흥민선수와 박지성선수

“어려움 속에 성장할 기회가 있다”


나는 닛산자동차 기술개발연구소(Nissan Technical Center)에서 파견 근무를 했었다 (내가 근무했던 연구소 위치…https://goo.gl/maps/W5uSeQRZ3GA9Ndav6)

나와 10여 명의 파견팀은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우선 대부분 일본어를 못했는데 파견 준비 중 영어회화 교육을 받았다 (몇몇 동료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일본어가 가능했다, 일본에 실무를 하러 가는 데, 영어로 소통할 거라니? 순진한 생각이었다! )


또, 일본연구소는 전혀 다른 cad(컴퓨터 활용 제도 프로그램)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급히 새로운 cad프로그램 4개월 과정을 2주 만에 속성으로 배웠다.


우리는 일본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양산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인 협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지에서 맞닥뜨린 일본의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은 정말 달랐다. 그야말로 극도의 ‘도전 상황’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일본어교재, 정말 최고!



일본연구소를 방문했던 첫날의 모습이 기억난다. 건물 안에는 많은 엔지니어들이 줄지어 작은 책상에 달라붙어 있었다.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앞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서류더미를 잘못 건드리기도 하면 와르르 무너졌다.


많은 엔지니어가 저녁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개미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저녁인데도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에 건물 내부는 후끈했다! 이런 지독한 일본 엔지니어 사이에서 일을 할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혔다. (다행히 우리가 복귀하던 2006년 6월에 새로운 건물이 완공되어 직원들이 좋은 환경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와 일본 엔지니어 간의 간 보기, 탐색전이 끝났다. 우리는 바로 프로젝트 일에 투입되었다. 우리는 일정을 따라가지도, 결과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지고 피가 말랐다. 일본에서 이렇게 바보가 돼서는 안 되었다. 우리는 각자 어떻게 해서든 실력을 보이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다.


우리는 새로운 cad를 다루는데 아직 미숙하고 일본 동료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었다. 결국, 연필과 자를 사용해서 종이에 아이디어 도면을 그리면서 일본 엔지니어와 협의를 했다. 낯선 일본 직장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각자 몸부림을 쳤다.


닛산자동차 기술개발연구소 건물 일부


“뜻을 통하고 실력을 보여주고 도움이 돼라, 그러면 그 누구와도 함께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선배들보다 경험이 부족했기에 더 노력했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 11시까지 컴퓨터 캐드 연습을 하고 밤 12시까지 일본어 공부를 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다. 몇 개월이 지나자 차츰 업무환경에 적응이 되었고 서서히 일본말이 터지지 시작했다.


업체에 일본어로 메일을 보내고 전화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업체와의 회의도 일본 동료 도움 없이 혼자서 진행했다. 이제 효율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성과를 내고 결과가 나왔다. 그러자, 일본 동료들이 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 옆의 한국 선배에게 주어야 할 일도 내게 주려고 했다. 나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거절했다.


20개월 후, 한국 엔지니어와 일본 엔지니어가 힘을 합쳐서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복귀를 앞둔 마지막 면담 자리에서 일본 매니저가 닛산연구소 정직원 입사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하지만 나는 일본 생활에 지쳐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정중히 제안을 거절했다(그 매니저는 그 후 닛산 자회사의 사장이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 시절 힘들게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했던 일본 동료와는 한국 복귀 후에도 서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낸다.


NISMO 레이싱카
nismo sports


“실력, 협력, 소통”


나는 일본 파견 시절 ‘실력, 협력, 소통’을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 원칙은 그 후에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도 똑같았다. 10년 후 프랑스에 파견을 갔을 때도 이 원칙은 통했다. <내 실력을 보여주고 상대방에 도움이 되면, 모두가 친구가 된다> 세상 어디에서든지 누구와 어떤 일을 하던지 동일했던 것이다.


젊은이들이 세계로 나가 몸으로 부딪혀 체험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니 글로벌 시대이니 이미 기회가 많다. 젊은 시절에 더 넓은 세계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나는 그런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세계의 다양한 젊은이들과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작은 성공들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자신감이 붙고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파견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외국 동료들은 선물을 준비했다. 일본 동료들은 자동차 미니어처를, 프랑스 동료들은 와인용품 세트를 주었다. 지금도 이 선물은 내가 동료들과 <세상이라는 넓은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뛰었음을 상기시켜준다.


손흥민 선수가 ‘발롱도르’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나도 사회생활에서 동료들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동료들이 직접 골라준 선물에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있다.


손흥민선수와 발롱도르, 골드슈트
파견에서 복귀할때 외국동료들이 준 선물


keyword
이전 09화일본직장생활, 일본거리에서 꽁초 투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