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훈 작가님의 소설 [개]에 대한 샤라웃(Shout out)이며 나의 반성문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을 치사하고 비겁하게 여기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사람들도 개처럼 남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해. 남들이 슬퍼하고 있는지 분해하고 있는지 배고파하고 있는지 외로워하고 있는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지겨워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척 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야.”
“마음이 재빠르고 정확해야 해. 그래야 남의 눈치를 잘 살필 수가 있어. 남의 얼굴빛과 남의 마음의 빛깔을 살필 수 있는 내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부드러운 마음이 힘센 마음인 거야”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라.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라는 말이 아니야.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지.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 되었건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대접을 받고 또 이런 사람들이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들은 웃어. 웃지 않기가 힘들지. 그야말로 개수작이야. 사람들의 속담에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거야!”
“사람의 눈치를 정확히 살피는 공부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야. 사람 곁에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해. 사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과 벌레들의 눈치까지도 정확히 읽어내야 해. 그게 개의 도리이고, 그게 개의 공부야. 그래서 개는 일생 동안 공부를 계속해야 돼. 신바람이 많은 개가 눈치 공부도 빨라”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왜 이렇게 공감력이 없습니까.. 이제 국민의 마음을 읽어야 할 의무도 있는 거 아닙니까?” 어느 국회의원이 장관 후보자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 김훈 작가의 소설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 생각났다. 소설 도입부에 진돗개가 사람들에게 ‘눈치’ 공부를 하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있다. ‘눈치를 살필 줄 아는 개’를 빌려서 ‘눈치 없는 인간’을 꾸짖고 있다. 사실 작가가 우리 사회에 ‘소신 있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맹이다”라는 말도 있다. 비록 글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아도 공감능력이 없으면 문맹이라니..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나 역시 사람의 마음을 못 읽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눈치가 없다는 말을 가끔 듣는 편이다. 약삭빠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스스로 좋게 생각하고 있다. 가끔 나는 공감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고 오히려 냉정한 면이 있는 거 같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 있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잘난’ 사람이 아니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 이라니 욕이 아닐 수 없다. 정치를 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꽤 있는 거 같다. 아차, 나도 젊은 시절, 남의 눈치 안 보고 할 말을 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한 적이 좀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봐주었다. 돌아보니 부끄럽다.
진돗개는 누가 가르쳐서 아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보고 마음을 살피고 행동하면서 배운다고 한다. 내가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무례하게 대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반성해야겠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떻게 들리고 보일지를 ‘상대방의 마음’에서 미처 살피지 못했다.
내 마음이 먼저일 때, 말과 행동에서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전에 다른 이의 마음과 눈치를 살펴 배려한다면 그것이 예절이 되고 규범이 된다. 법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런 문화가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면 이게 선진국의 품격이 아닐까?
눈치를 정확히 읽어내려면 마음의 힘을 기르는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마음공부가 많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사람이라면, 응당 사람들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진돗개의 마음이 예쁘다.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행동하는 ‘진돗개의 마음’을 닮고 싶다. 빈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