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분간의 대화로도 우리는 서로를 상당히 많이 파악하게 된다. 나와 잘 맞을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은 아닌지, 바로 느낄 수 있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소재도 손님만큼이나 다양하다. 손님과 매물정보나 지역호재만 얘기하지 않는다. 세금이나 정부 정책에 관련한 대화들도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삼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중장년층 고객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중개사무소에 들르시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정치나 종교 관련된 주제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 첫 만남에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 놓다 보면, 사회적인 이슈 거리를 두고 의견이 상충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지만, 첫 만남에서 ‘저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르네..’라는 마음에 그 어떤 브리핑과 정보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손님과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난 대선을 몇 달 앞둔 시기에 방문했던 손님이었는데, 아파트단지의 장점을 홍보하다가, 어느 순간,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때 손님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순간 서로의 얼굴은 굳어지고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리고, 손님은 황급히 나의 사무소를 떠났다.
손님이 원하는 집이 막 파악이 된 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심지어 그 매물들을 이미 정리해 두었기에 집을 보시면 바로 계약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일 이후로, 정치나 종교 얘기를 하는 게 꺼려졌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최근에 60대 어르신 한분이 사무소를 방문하셨다. 지자체 시설을 관리하시는 공무원이었다. 단지가 조용하고 마음에 들어서 잠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부동산에 들리셨다고 했다.
먼저, 원하시는 조건을 잘 들어드렸다. 예산이 조금 부족하셨기에 다음에 좋은 물건이 나오면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짧은 상담 후에 어르신은 ‘주민들이 전기를 아껴 쓰지 않더라’ 하시고는, 한 두 명 이용한다고 밤에 불을 환히 켜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얘기를 꺼내셨다.
일단, 나도 웃으면서 공감을 표현했다. 다행히 어르신은 ‘열린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종국에는 우리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싸잡아서 나무랐다. 정치와 종교얘기는 첫 만남에서 꺼내지 않는 주제가 맞다. 하지만 손님이 먼저 얘기하시면, 가볍게 맞장구 쳐주는 것도 좋다.
얼마 후, 예산에 맞는 매물이 나와서 그 손님께 연락을 드렸다. 손님은 집도 보지 않고 나를 믿고 계약까지 하셨다. 그날 나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이렇듯 정치얘기는 절대로 거론하지 말아야 할 주제라기보다는 심각하게 얘기하면 안 되는 주제이다. 심각해지면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확인하게 되어, 고객과 중개사의 관계가 아니라 어느새 서로 맞서는 진영에 서있게 된다. 이런 첫 상담 후에 다음이 있을 수 없다. 그걸로 손님과의 관계는 끝이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이슈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면, 일단 표정은 부드럽게 하자. 웃으면서 가볍게 응수하자.첫 만남에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아이스브레이킹’이다. 오히려, 고객의 관점에서 보면, 중개사에 대한 신뢰감과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다.
상담을 많이 하다 보면, 젊은 손님들과의 대화와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확실히 다르다. 젊은 세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미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를 하고 와서 상담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의 의견, 검토가 맞는지 중개사를 통해서 확인을 하고 싶어 한다. 길고 사족이 많은 대화를 싫어한다.
이에 반하여, 어르신들은 부동산 이외에 다른 얘기도 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나처럼 사회경험이 많아 보이는 중년나이의 중개사무소 대표를 만나면, 왠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듯하다. 결국, ‘내 말에 공감해 줘…’라는 말로 알아 들어야 한다. 고객의 말에 가볍게 그리고 충분히 공감을 표현하자.
가끔은 아예 본인의 주장을 펼치러 중개사무소에 오시는 단골손님도 있다. 이럴 때는 처음 몇 번 정도 가볍게 응대하고는 끊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설이 된다. 중개사무소도 시간이 빠듯하다. 이럴 때 손님께 살짝 눈치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