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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 Oct 11. 2024

맨드라미의 마음 키우기

 맨드라미를 본다. 꼬불꼬불 나선형의 미로가 시선을 잡는다. 친구가 사진에 담긴 내 화단을 보고는 묻는다.

 “그 집 맨드라미는 왜 삐죽 키만 크냐?”

 맨드라미는 대답이 없다. 벼슬 무게를 감당하기 벅찬 것인지, 할 말이 많아 아예 대답이 없는 것인지, 나 역시 대답이 없다. 무수한 말들이 내 안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문을 두드린다. 목적 없는 말들에게 어떤 방향을 주어야 할까.

    

 내어놓기를 연습 중이다. 글쓰기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했다. 듣지 않는 귀에 대고 떠들던 마음이 욕심임을 알았다. 귀는 들을 수도 안 들을 수도 있는 것인데 안 듣는다고 매번 타박을 놓았다.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내 마음이 급했다. 성격이 급해서 라는 졸렬한 핑계는 내 행동이 옳다는 우김보다는 미안하다 말하기 낯간지러워서다.  

   

 나는 조심성 많고 준비성 좋은 성격을 지녔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계획을 꼼꼼히 짜고 일의 진행을 여러 차례 그려본다. 여행 갈 때 여행지에서 쓸 걸레까지 챙겼다. 상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폐가 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나로 인해 괴로운 적이 많았음을 알았다. 사실을 알았다고 오래된 습관이 금세 바뀌는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내 식대로 했는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고 열까지 난다. 머리로는 모른 척하는 일이 뭐 그리 힘들까 싶은데 의지와는 다르게 마음에 고인 어떤 덩어리가 나를 자꾸 충동질한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이판저판 무슨 상관이겠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

 충동질의 결과는 언제나 대가가 크다. 감정도 경제에서 말하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들어맞는다. 점점 더 소비함에 따라 얻는 만족이나 효용이 줄어든다. 마음에 길을 내는 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다.

    

 

 오늘 아침엔 내려 마시는 커피가 먹고 싶었다. 원두는 떨어졌고 카누 몇 봉지만 눈에 띄었다. 그것으로는 향이 부족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오래전 선물 받는 생두 한 봉지가 보였다. 어쩔까 망설이는데 선선해진 기온이 번민을 물렸다. 어떻게 볶더라, 습관대로 유튜브 검색을 열다가 폰을 닫았다. 이런 작은 마음부터 내려놓아야지. 커피 맛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 주어지는 맛에 입을 맞추는 것도 삶의 방법이겠다.     


 램프쿡을 꺼냈다. 참깨를 볶는 용도로 구입했는데 건전지 힘으로 작은 모터가 핸들을 회전시키는 냄비다. 몇 해 잘 썼는데 고장이 나 사용할 때마다 수리를 해 썼다. 이번엔 번거로움 없이 그럭저럭 구동이 되었다. 슬렁슬렁 핸들이 돌자 생두의 연한 초록색이 점점 갈색으로 변했다. 어느 쯤에서 멈춰야 커피 맛이 괜찮을지 가늠하느라 냄비 곁을 지켰다. 그럭저럭 눈에 익은 색이 나서 불을 껐다.


 생두를 봐서는 껍질이 없었는데 껍질이 있는 상태였는지 볶은 원두에 얇은 껍질이 눈에 띄었다. 원두가 식기를 기다렸다 면장갑을 끼고 살살 비볐더니 껍질이 제법 나왔다. 마당에 나가 체 까불 듯 까불었더니 바람에 훌훌 잘 날렸다. 이 대목에서 혼자 깔깔 웃었다. 이런 건 왜 이리 잘하는지. 경험 치로 보면 마음 쓰는 일을 더 많이 했으니 체 까부는 것보다는 잘할 것 같은데 늘 수렁에 빠진 내가 민망했다.    

 

 커피 향과 다르게 커피 맛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익숙한 맛과 다른 맛을 훌륭하다고 치면 잘 볶고 잘 내렸다. 익숙한 맛을 찾는 것이면 늘 다니는 커피 점에 가야지 괜스레 생두를 볶아서는 안 되겠다. 고민이 낄 자리 없이 또렷한 사실이란 이런 것임을 깨친다. 여기에 생두가 어떠니 불의 세기가 어떠니 하면서 말꼬리를 늘린다면 나는 계속 어제의 나일뿐이다.      


 가슴속에 웅크려 덩어리 진 말들을 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면 덩어리는 점점 커진다. ‘참으면 이렇기도 하는구나’ 하니 얇게 펴지며 마음에 주름 한 겹이 는다. 주름은 마음의 면적을 넓힌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견딘 맨드라미의 주름이 건네는 침묵에 공감한다. 평안하다.


맨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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