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능선을 걷는다. 붓으로 흘려 쓴 한 줄 획이 정갈하게 길이 된 듯하다. 햇살을 등에 지고 원효봉 지나 의상봉 가는 중간쯤에서 풍파가 가늠되는 너럭바위를 향해 선다. ‘김유신 솔바위’다. 신라의 화랑 유신의 기합소리를 듣는다. 하나! 둘! 명운을 다한 가야의 왕손이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은 비단 가문만은 아니었을 터, 수련에 임하는 그의 옹골참이 심상한 나를 깨운다.
심지가 뭉텅 빠진 듯했다. 영재같던 작은아이마저 늦은 사춘기 열병에 학구열을 뺏기고 예상에도 없던 대학 문턱을 겨우 넘었다. 헛한 마음은 작은 일에도 울컥하다 잔소리를 쏟아냈다. 무언가 더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마음이 떼를 썼다. 결국 아이들이 떠났다. 아이들의 독립은 내게 큰 구멍을 남겼다. 긴장과 설렘으로 떠난 딸들과 달리 나는 쉬이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했다. 길을 찾아야 했다. 날 선 번민에 수시로 산에 오르다 유신의 바위를 만났다.
경주가 아닌 곳에서 그의 이름을 듣고 의아했다. 안내문을 읽으니 고당봉과 원효봉 일대는 화랑시절 그의 수련장소였다. 일찍부터 금정산은 호국의 산이었기에 쉬이 납득이 갔다. 가야의 후예였던 그의 처지도 있었으리라. 쓸쓸한 짐작이 마음을 훑었다.
수기(修己)를 이룬 후에야 입신(立身)할 수 있음을 어린 나이에 어찌 알았을까. 어머니가 신라의 왕족임에도 주류에 들지 못한 유신은 일찍 철이 들었다. 백하나! 백둘! 흔들림 없는 기백을 몸에 새기는 그의 기합 소리가 고당봉에 메아리쳐 들려온다. 어린 그가 쩌렁하게 내 안을 흔들었다.
수행을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빈 방에서 108배와 명상을 하고 경전을 낭독했다. 첫날엔 다리보다 마음이 굽혀지지 않아 첫 절을 하는데 동이 텄다. 다음날엔 발목이 퉁퉁 부었다. 통증이 가라앉을 무렵에는 눈꺼풀과 싸워야 했다. 수십 년을 올빼미처럼 살았으니 새벽 다섯 시 수행은 오기였다. 눈꺼풀의 무게가 이기려들 때면 어김없이 유신의 기합소리를 들었다. 백 번에서 천 번으로 게으름 없이 검을 휘둘렀을 유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굽혔다. 첫 번째 백일이 지나니 나의 업식과 지난 삶 속 엉킴이 조금 보였다.
봄이면 지인은 야생 차나무 새순을 덖고 차를 내려 금정산 미륵사 대웅전에 올렸다. 겨우 서너 번 내려먹을 그 찻잎을 덖는데 들이는 정성이 지극해 그해 봄엔 따라나섰다. 금정산 일대엔 야생 차나무가 많다는데 다 옛일이고 그마저도 찻잎을 구별 못하는 내 눈엔 보이지도 않았다. 등산로를 벗어난 차나무는 풀숲이 무서워 엄두를 못 내고 겨우 몇 순을 따는 게 전부였다. 등산로 정비로 베인 차나무가 새삼 아까웠다. 아홉 번 덖고 나면 두어 번 내릴 것도 없어 하나라도 흘릴까 공들이며 따고 있었다.
낯선 청년이 다가와 막무가내로 야단을 쳤다. 정신 나간 아줌마라는 소리도 모자라 자연보호에 대해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 벼르는 듯한 청년의 기세에 위아래도 없이 여자라고 이런다 싶어 얼굴이 굳어졌다. 슬그머니 등산지팡이를 찾으며 싸우려 했다. 눈치 빠른 언니가 청년을 달래며 자리를 떴다. 앞서며 어서 오라 목소리를 높였다. 미적미적 다툼의 위기를 벗어났다. 하산 길 내내 편안한 언니와 달리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뜬 것만 같아 두고두고 화가 났다.
매사에 이랬다. 사사건건 시비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실로 삶을 엮었으니 자식들의 혹독한 사춘기는 준비된 수순이었다. 봄날의 새순은 뜯고 나면서너 잎 새로 돋는다. 청년은 몰랐을 뿐이다. 단지 그랬을 뿐이다. 어디로 길을 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듯했다.
유신의 바위틈에는 소나무가 자란다. 화랑 유신이 낭도들과 훈련할 때 이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몇십 시간 훈련을 하다가 선 채로 오줌을 싸 버렸다. 그것을 본 낭도가 그 자리에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 오줌 싼 곳에 나무를 심은 낭도의 마음은 알 수 없어도 유신의 마음은 헤아려졌다. 천하나! 천둘! 구백구십구 다음 천을 외치고 천하나로 이어질 때 처음 하나와 다름없기를 습으로 익히고 싶었겠지. 훗날 그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일찍이 닦은 행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욕심내지 말고 눈을 떴으니 하자 했다. 꾸준히 몸을 숙이고 ‘지금, 이대로 아무 문제없습니다.’ 명심문을 되뇌며 마음을 돌아보았다. 화내는 일을 열에서 아홉으로 다시 여덟으로 줄여나가며 시비를 내는 습을 고쳐나갔다. 손해 보는 것 같은 회의가 들 때면 유신이 등을 밀었다. 그렇게 세 번의 겨울이 지났다. 하루에서 하루를 건너가는 간극은 없었지만 조금씩 옳다 그르다 모양 짓는 일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놓쳤던 것들에 눈이 밝아졌다.
나의 변화는 아이들이 먼저 알았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움직이려 들지 않더니 전화도 하고 자신의 문제를 의논했다. 그렇게 천천히 사춘기가 아물며 아이들을 독립은 어미로써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남편과 시댁을 바라보는 눈에도 틈이 생겼다. 남이었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문제이니 가족이라 여겨 생긴 문제일 뿐이었다.
떠받든 신념에도 균열이 일었다.싫고 좋고 가 분명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 여겼으나 아니었다. 하지만업식은 살아온 세월보다 깊었다. 네가 이랬으면 하는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업식을 보며 지난 세월 습관된 감정의 노예였음을 인정했다.
시비 내는 것은 타인을 주인으로 삼은 마음이다. 처한 상황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그에 따르는 감정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인이 된다. 천 하루를 처음 하루처럼 몸을 낮추자 내 안에 작은 심지가 생기며 길이 열렸다. ‘바위를 뚫는 낙숫물처럼 꾸준히 정진하라.’ 삶으로 증명하신 큰 분의 가르침이 그제야 귀하게 와닿았다.
나의 꿈에 유신의 꿈이 찾아왔다. 만하나! 만둘! 멈추지 않는 한결같음이 일상에서 이뤄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기 믿음이 완성된다는 속삭임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다섯 시. 눈꺼풀이 가볍다. 이제는 살아온 모든 날이 길이었음을 안다. 나무의 휘청임도 보인다. 바람에 맞서며 어찌 매번 바람과 함께 춤출 수 있겠는가. 휘청이며 생긴 옹이를 기둥 삼아 다시금 한결같을 때 사랑에 한걸음 가까이 가는 것이리라. 알고 보면 사랑하는 일도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