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필요한 문해력은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글로써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요즘은 사회 전체가 문해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학습역량은 물론 사회생활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문해력이 필요하다고요. 덕분에 부모는 물론 아이도 문해력의 중요성을 충분히 압니다. 중요성을 잘 알면, 문해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 잘 될까요? 노력으로 이끄는 힘은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의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친해져야 하며,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노력할 수 있습니다. 문해력이 아이에게 친구로 다가왔을 때, 아이는 문해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개발할지 스스로 탐구하고 노력하게 됩니다.
아이가 문해력에 거부감 없이 다가서게 하려면 ‘공부를 위해서’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라고 무조건 접근하면 안 돼요.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서, 심지어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수없이 들어온 말이니까요. 엄마 역시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한다면, 아이는 별 감흥이 없거나 자칫 잔소리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말은 달라야 해요. 아이 마음을 움직이는 말, 아이가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만드는 말로 문해력을 들려줘야 합니다.
그동안 많은 매체와 어른들은 문해력을 ‘공부 잘 하기’ ‘ 사회에서 말귀 알아듣기’와 연결했습니다. 비문학 긴 지문을 읽으려면 문해력이 필요하고, ‘금일’ ‘심심한 사과’ 이런 말뜻을 알려면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요. 안타깝게도 이런 설명은 아이 마음에 문해력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만듭니다. 문해력 낮으면 부족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부담감’, 이 때문에 노력해야 하는 ‘의무감’ 같은 감정이죠. 사람은 자신에게 부담과 의무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선 즐거운 노력을 할 수 없어요. 즐거운 노력은 좋아하고 흥미로운 걸 할 때 가능합니다.
아이가 문해력에 관심을 보이게 하려면, 문해력을 흥미로운 소재나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소재와 연결하면 좋습니다. “어 문해력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네”라는 걸 아이가 느낀다면 문해력은 곧 아이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친구는 서로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문해력이 친구가 된다면, 공부를 잘하겠다는 의무감 혹은 성적에 대한 욕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문해력을 알아가려 할 겁니다. 문해력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은 아이에게 멋진 성장을 선물할 거예요.
엄마는 아이에게 문해력을 어떤 말로 소개하면 좋을까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다양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마치 연극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같아”라고 말하는 겁니다. 글의 종류는 많아요. 각기 다른 특성과 의도를 담은 글들을 같은 마음과 태도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와 전문서적이나 논문을 읽을 때는 다른 태도가 필요한 것처럼요. 아이에게도 그걸 알려줘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문해력은 한 가지 종류의 글만 보는 능력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글을 두루두루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니까요.
그동안 소설을 열심히 봤던 아이는 비문학 긴 지문을 읽을 때 이해하는 게 힘듭니다. 전문적인 내용인 데다 모르는 어휘가 너무 많아서요. 또한, 교과서를 볼 때도 단원별 목차나 학습 목표는 무시하고 무턱대고 본문부터 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교과서 사용법을 모르니 어렵고 재미도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다양한 분야의 글을 다양한 태도로 읽어야 함을 먼저 말해주면 좋아요. 다양한 분야의 글을 탐구하는 건 마치 연극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아이 마음은 훨씬 편해질 겁니다.
다양한 글을 읽을 수 있는 문해력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해력과 캐릭터의 공통점을 비교해서 들려주면, 아이는 엄마의 말에 흥미로운 태도로 경청할 거예요. 먼저 문해력과 캐릭터는 각자의 특성을 연구해야 합니다. 논문, 전문서적, 문학, 시 등은 각기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글의 구성방식과 어휘, 문장표현 방식도 다르죠. 연극 캐릭터도 성격, 말투 등이 모두 다릅니다. 그러니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하려면 각 캐릭터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게 필요해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먼저 캐릭터의 성격을 연구해야 하잖아. 글도 마찬가지야. 글이 무엇을 의도하느냐에 따라서 구성방식이 모두 달라. 소설을 읽는 습관으로 교과서를 보면 안 된다는 말이야. 글을 읽기 전에 어떻게 읽어야 유익한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필요하단다”
“문학에는 인간관계에서 경험하게 될 수많은 감정과 갈등, 마음들이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릴 때 어떤 마음인지,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볼 수 있지. 문학을 통해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미리 엿보는 거야. 공감하는 마음으로 문학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에는 창의적인 표현이 많아. 특히 은유적 표현을 더 유의해서 보렴. 은유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거든. 일상에서 감정을 다스릴 때도 은유를 활용할 수 있어. 시를 읽을 때 작가가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잘 연구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문해력과 캐릭터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기만의 생각을 입혀야 한다는 겁니다. 다양한 글을 이해하려면 글쓴이의 의도와 생각,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생각을 놓치면 안 돼요. 마찬가지로 연극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철저히 캐릭터의 인격이 되어야 하지만 자기다움이 없으면 매력이 없습니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극에서 한 종류의 줄리엣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말로 엄마는 아이에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남의 지식은 머릿속에서 금방 사라져버려. 외우려고 애써도 금세 까먹고 말아. 지식이 마음에 오래 남게 하려면 네 생각과 감정으로 지식을 감싸서 함께 저장해야 해”
“세상에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지식 중에 몇 개를 건져낸다고 네 것이 될 순 없어. 네 생각이 단 한 줄도 없으니까. 네 지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네 생각이 그 지식에 스며들어야 해. 너의 생각 향기가 세상의 지식과 합쳐질 때 그 지식은 너만의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다양한 글의 세상에서 각각의 글은 우리에게 다른 문해력을 요구합니다. 아이가 다양한 문해력을 익힌다면 다양한 세계를 즐기면서 경험할 수 있어요. 마치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많은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처럼요. 물론 한 가지 종류의 글, 한 가지 캐릭터에만 충실한 것도 괜찮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요. 대신 차차 넓혀 나갈 가능성을 조금씩 심어주세요. 많은 엄마는 아이가 연극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길 원할 겁니다. 글의 세계에서도 아이가 다양한 문해력을 탐구하고 많은 종류의 글을 즐길 수 있도록 엄마의 격려는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문해력을 소개하는 엄마의 말, 둘째는 “문해력이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글로써 소통하는 능력이야”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문해력은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보통은 말을 주고받는 대화를 소통이라고 말하지만, 소통의 본질은 서로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겁니다.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세상 사람과 소통합니다. 작품에 작가의 생각과 혼이 담겨있으니까요. 글 쓰는 사람은 글로써 세상 사람과 소통합니다. 글 속에 자기 생각은 물론 세계관까지 담았으니 얼마나 깊은 소통을 하는 걸까요? 그 깊은 소통을 나눌 당사자가 바로 아이입니다.
소통 방식은 아주 다양합니다. 말로써 하는 소통도 언제 누구와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소통이 됩니다. 토론, 수업, 질의응답, 통화, 카톡, 둘만의 대화 등이 모두 다른 것처럼요. 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시인, 건축가, 생물학자, 먼 과거의 철학자와 천문학자 등 이들 모두는 글을 전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어휘가 다릅니다. 그러니 다양한 글을 읽으면서, 각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어휘를 사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전하는지를 경험하는 거죠. 글이 곧 소통이라는 걸 아이에게 전하려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과 같아. 각 분야의 사람들은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 과학자, 철학자, 소설가, 시인 등 이들과 글로써 소통할 때 막히면 곤란하잖아. 그러니 문해력을 키워서 이들의 언어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거지”
아이가 다양한 글을 읽으며 소통하고자 할 때, 도움이 되는 팁이 있습니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글을 읽고, 필요하다면 자기만의 언어로 글을 요약해보라고 말해주세요. 말로 소통할 때보다 글로 소통할 때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기 때문이죠. 글을 보면서 의문이 드는 문장은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도 있습니다. 긴 내용의 글이라면 한 문단씩 혹은 적당한 덩어리로 잘라서 글의 핵심을 자기만의 언어로 요약한다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생각 능력이 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지식과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땐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고민이 들어가. 이런 글을 단숨에 읽는다는 건 1시간 동안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5분 만에 맛도 느끼지도 않고 삼키는 것과 같아. 얼마나 어리석니? 귀한 음식을 천천히 맛보듯, 귀한 글도 천천히 생각하며 읽어야 해”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한입씩 맛보면서 느껴지는 맛을 설명하듯이, 글을 읽을 때도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고 내가 느낀 걸 너만의 언어로 간단히 표현해보는 거야. 힘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너만의 생각과 언어로 표현된 지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네 안에 머물 거야”
“전문적인 긴 글은 내용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힘들 거야. 이런 어려운 글은 한 문단씩 간단하게 핵심을 요약하면서 읽으면 도움이 돼. 단, 핵심요약은 너만의 언어로 풀어서 네가 설명하듯이 간단하게 써보는 거야. 이런 과정은 너의 생각 능력을 엄청나게 키워 줄 거야”
많은 글을 모아놓은 책에는 글 쓴 사람의 생각과 지식이 조화롭게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생각과 지식을 읽는다는 건 배움을 넘어 소통이라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 분야의 지식인과 글로 소통하다니 아이에게는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많은 글을 읽으면서 각 분야 지식인이 사용하는 언어에 익숙해진다는 건 소통능력은 물론 문해력을 키우는 길이 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누구와 어떤 소통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자라는 동안 많은 글을 읽으면서 작가들과 소통하게 해주세요. 처음은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어려운 글이 점차 익숙해지고 글 쓴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글은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에너지를 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각과 간절함이 글에 녹아있기 때문이죠. 다양한 글을 이해하는 문해력은 그런 마음을 더 잘 알아보게 합니다. 사람은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로 입혀진 관점의 안경을 하나씩 쓰고 있어요. 많은 글을 읽으면서 글 쓴 사람의 생각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그들의 관점이 무엇인지 알게 해줍니다. 글을 통해 얻은 다양한 관점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하고, 생각지 못한 발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글을 통해 쌓은 문해력 덕분에, 아이는 더 큰 세상을 만나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