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위해서야” “잘해야 해”라는 엄마의 말이 아이의 재능을 망치는 이유
이 순간 엄마의 말은 소중한 아이 재능을 깨워주고 있을까요? 아님, 영원히 잠재우고 있을까요? 단 몇 초 만에 내뱉은 엄마의 말이 평생 아이를 빛낼 재능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지만, 영원히 잠들게도 합니다. 한 줄기 빛도 보지 못한 채 말이죠. 아이에게 엄마의 바람이나 희망 사항이 마치 아이에게 꼭 필요한 능력인 것처럼 포장해서 강요하지 말아요. 엄마의 희망 사항을 이루지 못한 아이는 평생 자책하며 살아갈지 모릅니다. 또한, 아이를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비교는 아이 마음에 ‘잘해야 해. 못하면 루저야’라는 위험한 생각을 평생 품게 합니다.
말 한마디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은 우리 인생을 향기로운 꽃으로 채우기도 하고, 음식쓰레기로 가득한 시궁창 같은 삶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시궁창 같은 인생을 원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에도 세상 곳곳에는 많은 사람이 눈물겹고 고통 스런 삶을 살고 있어요. 자신의 삶인데도 스스로 변화시킬 힘조차 내지 못한 채요. 이유는 스스로 재능 없는 사람, 불운한 사람,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착각을 뿌리 깊이 심어두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 지녔던 수많은 재능은 우리의 잘못된 말들로 어느 순간에 빛을 잃어버립니다. 재능이 꿈틀대며 세상 밖으로 싹틔우기도 전에 메말라버려서 영원히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거죠.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재능을 깨뜨리는 말은 뭐가 있을까요? 무심코 내뱉는 부정적인 말이 아이 재능을 깨뜨린다는 건 모두가 알 겁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 마음에 했던 일상의 말들이 결과적으로 아이 재능을 깨뜨릴 때도 있습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아이 재능을 깨뜨릴 수 있는 엄마의 말 2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라는 말과 함께 아이의 단점, 고쳤으면 하는 점, 엄마의 바람을 줄줄 전하는 겁니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가끔 아이에게 독이 되기도 하죠. 사랑하는데도 점점 관계가 멀어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널 사랑해서 그래”라고 말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이건 사랑이 아니야. 욕심이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엄마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따뜻한 마음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하고, 아이 마음을 빗나가기도 합니다. 말투, 표현 방식, 눈빛, 음색, 제스처 등 엄마에게서 흘러나오는 모든 언어가 아이의 섬세한 감각을 통과할 때 아이는 엄마의 진짜 마음을 느낍니다. 아이를 위한 건지, 엄마 자신을 위한 건지를요. 무의식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의식적으로 알거나 설명하지는 못해요. 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는 왜 내 마음을 모르지? 날 사랑하지 않아’라는 외침이 들려올 뿐입니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아이 마음에 안전하게 도달하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먼저 “널 위한 거야”라면서 엄마 바람을 줄줄이 전하지 마세요. 고쳤으면 하는 단점도 그만 지적하세요. 다만 지금 이 순간 엄마 눈에 비치는 아이를 그대로 말해주세요. 지금 이대로 아이가 얼마나 훌륭한지, 이 모습 이대로 얼마나 큰 감동을 매 순간 엄마에게 선사하고 있는지를 말하는 겁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아이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를 바라보세요. 그리고 이 말들을 해주세요.
“네가 엄마를 향해서 웃어줄 때 엄마는 참 행복해져. 넌 행복을 만드는 재주가 있나 봐”
“네 목소리는 엄마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네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해져. 고마워”
“너에게서 느껴지는 활기찬 에너지가 좋아. 작은 꿀벌이 꽃 주위를 돌면서 아름답게 춤추는 것 같아. 지금 너의 에너지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는걸”
따뜻한 미소와 눈빛, 포근한 목소리로 전해 들은 말 덕분에 아이는 자기가 얼마나 귀한 재능을 가졌는지를 알게 될 겁니다.
아이의 단점 지적을 멈추고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밥 먹는 것이 힘든 아이, 입맛이 예민한 아이에게,
“왜 이렇게 안 먹어? 골고루 먹어야 키 크지” 대신 “넌 참 섬세한 감각을 가졌구나. 덕분에 식재료가 어울리는지 아닌지 미세하게 알아내잖아. 멋지다”라고 말해주면 좋아요.
숙제 안 하고 먼저 나가서 뛰어노는 아이에게,
“숙제 먼저하고 놀아야지. 할 일을 미루면 어떡해?” 대신 “넌 에너지 넘치는구나. 넘치는 에너지로 즐겁게 놀고 나서 숙제는 언제쯤 할 거야?”라고 물어봐 주세요.
유튜브 영상 보면서 뭔가를 열심히 연구하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것 그만 보고 문제집이나 풀어” 대신 “뭘 보고 있어? 큐브 맞추는 비법을 보는 거야? 와! 엄마는 큐브가 어렵던데. 넌 문제해결력이 뛰어나구나”라고 말해주세요.
아이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에 엄마는 이렇게 말해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창의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어. 무엇보다 책을 봐야 창의력이 생겨”
“재능이 없으면 공부라도 잘 해야 해. 아니면 성공할 수 없어. 나중에 어떻게 먹고 살래?”
“일류대를 나와야 사람들이 널 인정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엄마가 살아온 세상이 이런 세상처럼 보여서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어요. 아이의 진짜 속마음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엄마의 바람을 많이 들어온 아이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 듣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원하는 세상은 사라지고 엄마가 원하는 세상만 남는 거죠. 엄마의 바람도 소중하지만, 자기 내면의 목소리 또한 지키고 싶은 것이 아이 마음입니다. 책, 성공, 일류대는 엄마가 원하는 삶이지 아이가 원하는 삶은 아닐 수 있어요. 공부보다 그림 그릴 때 더 행복한 아이, 돈 벌어서 성공하는 삶보다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 아이, 일류대보다 개인이 즐기는 일로써 창업을 먼저 하고 싶은 아이들도 있거든요. 엄마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아이 내면의 목소리가 묻히면, 아이의 빛나는 재능도 함께 묻혀버립니다.
둘째, “~잘 해”라면서 엄마의 완벽주의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겁니다. 완벽한 엄마는 아이가 뭐든 잘하길 원합니다. 소지품을 잘 챙기고 자기 할 일을 잘 하는 아이, 놀기 전에 숙제부터 끝내는 아이, 게임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는 아이, 15시간 꼼짝 않고 공부해서 1등급을 척척 받아내는 아이, 명문대를 떡 하니 합격하는 아이. 내 아이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한 번쯤 가졌을 겁니다. 우연히 옆집 아이가 이럴 때, 은근히 비교도 했을 거예요.
뭐든지 척척 잘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그리 많을까요? 과연 인류의 몇 프로가 이런 사람일까요? 완벽해 보이는 이들의 삶이 상상만큼 행복할까요? 우리도 모르게 내뿜는 완벽주의는 자칫 소중한 아이에게 근거 없는 죄책감을 안겨줍니다. 혹은 평생 주눅 든 삶 속에서 자기만의 귀한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왠 죄책감?” “왠 주눅?” “잘 하면 자기가 좋지. 내가 좋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부모님도 계실 거예요.
아이는 엄마를 많이 사랑합니다.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건 다 잘 해야지”라고 결심하죠. 잘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고 모든 아이가 뭐든지 잘하게 될까요? 어떤 아이는 ‘잘 해야 해’라고 마음먹은 순간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실수할 것 같은 두려움,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이죠. 어쩌다 실수와 실패가 반복되면 더이상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조차 힘들 수 있어요. 삶에서 도전이 점점 사라지는 겁니다. 이런 삶은 아이에게 엄청난 좌절과 죄책감을 안겨줄 수 있어요.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에도 어른인 우리 역시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자신을 물론 자기 때문에 실망했을 소중한 사람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이지만, 결혼해서는 가족이 소중한 사람이에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면에 잠들어있는 수많은 재능이 그 빛을 잃게 합니다.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하는 겁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많은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잠든 재능이 하나, 둘 깨어납니다.
태권도 시합에 나가는 아이에게,
“자신감 가지고 잘해. 넌 이길 수 있으니까” 대신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재미있게 시합하면 돼. 엄마는 네가 즐기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해”라고 말해주세요. 아이는 이기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시합에 임할 수 있습니다. 편안함 속에서 아이 재능은 더 멋지게 빛나요.
오늘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할 아이에게,
“시험 잘 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문제 풀어. 실수는 절대 하지 마. 실수도 실력이니까” 대신 “네가 아는 문제만 풀면 돼.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애쓰지 마. 시험은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행사가 아니야. 네가 뭘 모르는지 확인하는 행사지”라고 말해주세요. 시험은 언제나 긴장감을 줍니다. 점수라는 결과 때문이죠. 점수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이걸 ‘메타인지’라고 해요. 시험을 통해 메타인지를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아이가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정교한 ‘메타인지’도 재능입니다.
요즘 들어 자꾸 학원을 빼먹는 아이에게,
“자꾸 학원 빠질래? 그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따라가려고? 열심히 해도 부족한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 앞으로 절대 학원 빠지면 안 된다” 대신 “요즘 학원을 자주 결석하네. 공부가 힘들어서라면 잠시 쉬어도 돼. 엄마도 가끔 일하기 힘들 때는 쉬거든. 가끔 쿨~하게 쉬어도 괜찮아. 너를 위해서”라고 말해주세요. 게으름 때문인지, 정말로 힘든지 아이 자신도 모를 때가 있어요. 단 엄마가 마음대로 ‘결석’과 ‘게으름’을 같은 의미로 판단하지 말아요. 대신 아이 속마음이 무엇인지 관심 가져주세요. 진정한 소통은 마음을 이해받았을 때 이루어집니다.
엄마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아이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간절히 원해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말해줍니다. 하지만 ‘부족한 것’, ‘고쳐야 할 것’, ‘더 개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일이 말할 때마다 아이는 마음으로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확인합니다. 엄마의 바람, 잘해야 하는 부담은 아이 마음을 위축시켜요. 잘못하면 어떤가요? 아이가 건강하게 숨 쉬면서 엄마 곁에 있는 것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
우리는 왜 아이가 부족한 걸 채우고, 잘하길 원할까요?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비교’는 나에게는 없는 것, 나는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만들어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비교하는 마음은 점점 커집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타인 시선에 마음을 빼앗기면, 엄마는 아이 마음속 재능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이 마음에 멋진 재능이 잔뜩 들어있음을 믿어주세요. 그 재능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주세요. 아이 재능은 엄마가 내려주는 ‘사랑비’를 맞고 싹이 틉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존중받았을 때, 아이 재능은 수많은 꽃과 열매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