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집중력이 부족하니?”
“책을 안 읽으니 문해력이 엉망이지”
“넌 항상 대충 대충해. 열정이 없어”
“이렇게 게을러서 나중에 뭐가 될래? 게으르면 절대 성공 못 해”
“시험만 치면 실수나 하고. 실수도 습관이야. 넌 도대체 누구 닮아서 덤벙대니?”
늑장 부리는 아이, 실수가 잦은 아이, 부모 기준에 뭔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에게 엄마는 무심코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에게 부정적 낙인을 찍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없을 거예요. 다만 이런 말들이 아이에게 부정적 낙인이 되는지를 몰랐을 뿐이죠. 아이의 성품, 기질, 생활 습관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단정하는 말은 아이 마음에 낙인으로 남습니다. 그 후 아이는 점점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죠. 여린 마음일수록 낙인은 더 깊이 찍혀버립니다.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서 많은 엄마가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피그말리온 효과’는 긍정적인 믿음과 신념으로 상대를 대하면 상대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말이죠. 피그말리온 효과의 반대말이 있습니다. 바로 ‘스티그마 효과’입니다. 상대를 부정적으로 대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 부정적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의미에요. “지금 네 모습은 완전 스마트폰 중독자야” 이 한마디로 아이는 점점 스마트폰 중독자의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게 ‘스티그마 효과’입니다. 다른 말로 ‘낙인효과’라고도 말하죠.
아이의 인품이나 생활 습관 등에 대한 부정적 표현은 당연히 ‘낙인’이라는 상처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낙인이라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아이 마음에 ‘낙인’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대표적인 2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사회가 믿어온 편견이 진리인 것처럼 아이에게 심어주는 겁니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공정성을 잃은 생각이에요. 가령, “수학 머리는 타고나는 거야” “아이큐가 높아야 공부를 잘해” 등의 말들이죠. 이런 편견은 아이 마음에 무의식적인 한계를 만들어서 더 이상의 노력을 못 하게 합니다. 편견은 아이의 열정을 꺾는 ‘낙인’이에요.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낸 낙인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편견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수학 머리는 타고나야 한다던데, 난 그런 수학 머리가 없는 것 같아”라고 할 때, 엄마는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어요.
“수학적 머리는 타고나야 한다는 건 근거 없는 말이야. 수학 머리는 없어. 단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니까 결국 잘하게 돼. 진심으로 수학을 잘하고 싶다면 수학을 좋아하는 게 먼저란다”
아이가 투정 부리듯 엄마에게 말합니다. “아이큐가 높아야 공부 잘한다는데, 난 안 돼. 내가 공부 못하는 건 엄마 탓이야. 아이큐도 유전이잖아” 자신이 공부 못하는 이유를 아이큐 탓, 유전인자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엿보이네요. 귀여운 아이 투정에 엄마는 이런 말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큐는 공부와 아무 상관이 없어. 이미 오래전에 밝혀진 사실이야. 잘못된 사회관념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해버려. 얼마나 안타깝니? 넌 뭐든 즐길 수 있는 아이야. 너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말해주는데.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돼. 넌 1등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니깐. 세상을 즐기고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태어난 거지”
우리가 잘 아는 격언도 때로는 아이 생각을 제한하는 편견이 될 수 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죠. 인내의 가치를 설명하고 싶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간절함이 담긴 문장입니다. 하지만 쓰디쓴 인내가 정말 아이 마음에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할까요? 쓰디쓴 인내가 모든 사람에게 달콤한 열매를 선사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지혜로운 방식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쓴 인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린 그만큼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달콤한 열매를 맺겠다고 다짐하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10시간 이상 앉아있기, 새벽 2시 전에 잠들지 않기, 수면시간 4시간 이하로 정하기 등의 공부 계획을 세우면서요. 이건 공부 계획이 아니라 자기 몸을 혹사하는 계획임을 아이들은 모릅니다. 아이 마음에는 ‘혹독한 공부=공부 성과’라는 잘못된 공식이 낙인처럼 박혀있기 때문이에요. 쓴 인내를 견디느라 몸 상태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넘쳐납니다. 이 때문에 몸 전체의 대사가 무너지고 파릇한 잎사귀가 시들어가듯 아이의 몸도 시들어 갈 수 있어요.
쓰디쓴 인내의 과정을 견디겠다며 이 악물고 공부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들려주세요.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서 오랜 시간 집중하는 건 멋진 일이야. 하지만 기말고사성적을 위해서 괴로움을 참고 공부하는 건 안 돼. 정신력으로 겨우 버틸 수는 있지만, 몸은 스트레스로 망가지니까. 현명한 사람은 참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란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면서 오직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애쓰는 아이에게 이 말을 해주세요.
“유능한 나무꾼은 많은 시간 동안 도끼날을 먼저 다듬어. 그래야 나무를 빠르게 잘 벨 수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유능한 학생은 자기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사용해. 쉬고, 운동하고, 즐거운 것들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먼저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고통을 참아가며 하는 공부가 아이를 행복의 길로 이끌지 않습니다. 참아야 할 고통과 그렇지않은 고통을 바르게 구분하는 지혜가 아이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열쇠이니까요. 고대 유명한 철학자의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건 진리가 아닙니다. 이치에 맞는 해석을 할 수 있는 바른 기준이 먼저 필요해요.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생각의 기준이 아이가 갖춰야 할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엄마는 다양한 생각을 아이에게 전해야 해요. 생각을 제한하는 편견의 틀에서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 낙인, 둘째는 ‘엄마 걱정’이 아이를 감싸는 부정적 인식이 되는 경우입니다. 아이를 감싸고 있는 부정적 인식은 아이 발전을 무너뜨리는 낙인이에요. “우리 애는 후각이 예민해서 김치를 못 먹어요” “우리 애는 주의집중력이 떨어져서 큰일이에요” “우리 애는 산만하고 충동적이어서 늘 조마조마합니다” 걱정을 담은 엄마의 말 한마디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아이 성향이 결정되어 버리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이를 향한 부정적 인식 중에서 최근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한 가지가 있어요. 바로 과잉행동 장애(ADHD)입니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받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엄마들이 있을 겁니다. “수업시간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잠시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선생님 말씀에 엄마는 온갖 걱정으로 머리가 아득해져요. 아이가 평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이라 느꼈는데, 친구들과 다툼까지 생겼다니 걱정이 앞서는 거죠. 아이가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과장된 행동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으면 엄마가 이런 걱정을 합니다. ‘혹시 우리 애가 ADHD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죠. 중요한 사실은 엄마의 믿음과 같은 방향으로 아이는 변해간다는 거예요.
엄마의 걱정과 전문가의 가운을 입은 어른들의 섣부른 판단이 아이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만듭니다. ‘난 ADHD구나. 난 충동적이고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이구나’ 이 한 줄의 낙인이 아이를 더욱 그런 사람이 되게 하니까요. 선생님 혹은 전문기관 등에 의해서 아이 성향이 산만하고 충동적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엄마는 섣불리 걱정하면 안 돼요.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은 엄마입니다. 남들이 해주는 조언 몇 마디에 소중한 아이에게 부정적 낙인을 남기지 말아 주세요.
아이가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더라도, 엄마의 걱정은 잠시만 내려놓고 아이 마음에만 집중해주세요. 포근한 마음으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됩니다. 아이의 기질과 성품 등이 부정적으로 보이더라도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오늘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던데, 엄마는 너의 마음이 듣고 싶어. 네가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거라 믿거든. 엄마에게 네 솔직한 마음을 들려줄 수 있겠니? 아~그런 마음이었구나. 친구들과 선생님은 너의 숨은 마음을 모르고 널 오해했구나. 엄마는 널 믿어”
“넌 친구들과 잘 지내길 원하는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다만 갑자기 화나거나 흥분될 때 너의 그 예쁜 마음이 숨어버리는 거지. 상대방은 네 숨은 마음을 알 수 없어. 겉으로 네가 표현한 마음을 보고 사람들은 널 판단해. 이제 다른 사람이 오해하지 않게 조금만 참아볼까?”
“충동적인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어른들도 화날 때 버럭 화내잖아.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해서 영원히 자기감정이 멋대로 굴도록 놔두면 안 돼. 멋진 어른이 되려면 충동적인 마음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하거든. 엄마와 함께 조금씩 연습해보자”
움츠린 어깨 사이로 조심스레 떨고 있는 아이 마음에 엄마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자세히 듣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고 아이를 향한 존중이니까요. 때론 자기감정조차 정확히 모르는 아이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아이가 품고 있는지를 엄마가 먼저 알려 줄 수도 있습니다. 과장된 행동을 친구들에게 보인 진짜 이유가 자신 없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혹은 약한 자신을 보이기 싫어서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엄마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의 자기편입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그 사람이 엄마이길 아이는 바랄 거예요. 또한, 아이의 산만함과 충동성을 줄여주고 싶다면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 됩니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에게 좋은 말을 많이 들려주는 게 아이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최고의 약이 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어른들 세상에서 진리라고 믿는 이론으로 아이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 진리가 아이에게는 ‘편견’일 수 있어요. “문제가 있네요. 아이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됩니다”라는 말은 아이 생각과 성장을 가로막는 ‘걱정거리’를 엄마에게 안겨 줄 뿐이에요. 아이에게 부족함이 있고 바꿨으면 하는 태도가 있다면, 엄마와 나누는 진실의 대화로 충분히 좋아질 수 있어요. 아이 삶이 세상의 향기가 되길 원하면,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불안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합니다.
성공, 부, 실력, 명예 등을 중시하는 사회적 편견은 아이가 마음대로 쉴 수 없게 만듭니다. 인맥, 스팩, 환경, 유전 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편견은 아이가 원하는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어요. 이 사회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걸 엄마도 똑같이 아이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외침들이 아이 마음에 한 글자씩 박히는 동안, 마음이 쓰라리고 아플 테니까요. 쓰라린 상처가 흉터가 되고,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면 삶의 방향을 자유롭게 설계하는 것조차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세상이 외치는 소리는 그저 참고만 해도 됩니다.
가슴에 박혀있던 아픈 낙인을 지워내는 건 엄마의 새로운 말들입니다. 따뜻한 사랑의 말,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신뢰의 말,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의 말처럼, 새로운 말들을 마음껏 들려주세요. 낙인이 새겨졌던 마음에 새로운 말이 덧발라지면, 어느새 부정적인 말은 모두 지워지고 새로운 말들이 곱게 다시 새겨집니다. “넌 엄마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아이야. 너의 예쁜 마음속에 좋은 말, 긍정의 말들로 가득 채우면 좋겠구나”라는 엄마의 진심은 좋은 말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날개를 아이 마음에 달아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