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에 깨달음을 전하는 엄마의 질책, 두 가지
"아이를 질책해야 한다면, 행동보다 마음의 의도를 먼저 물어봐 주세요"
따뜻한 태양 빛이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긴 밤 어둠이 지나고 새 하루가 시작될 때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시작될 때, 태양은 가장 따뜻하고 고마운 존재가 되죠. 어둠과 차가움은 삶에서 고통을 줄 수 있지만, 그 덕에 태양은 더 밝고 따뜻하게 빛납니다. 엄마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를 향한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지만, 그 사랑이 아이 삶에 생명이 되려면 아픈 질책을 아끼면 안 돼요.
질책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규칙이 있습니다. 아이를 향한 질책 속에 비난이 아닌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사랑이 담긴 질책은 마음에 희망의 불꽃을 피웁니다. 반면, 비난이 담긴 질책은 잿빛으로 타버린 절망의 재를 아이의 작은 가슴에 남깁니다. “질책은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길을 보여주는 지혜여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에요. 엄한 질책을 한다는 명목하에 엄마의 감정이 섞이면 안 됩니다. 어떤 따끔한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선 ‘너에게 옳은 길을 알려주고 싶어. 널 사랑하니까’ 이 말을 품고 있어야 해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게으르고 꾸준하지 못한 면이 부모에겐 걱정거리였습니다. 소년은 운동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한 농구는 새로운 꿈을 품게 했죠. 하지만 소년을 절망케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교 농구대표팀 선발에 키가 작다는 이유로 탈락한 거죠. 소년은 이 일로 심한 충격을 받았고 좌절과 실망은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소년이 행동한 반항과 폭력은 그에게 이유 있는 분노였어요.
‘학교대표팀 탈락’은 소년이 처음 경험한 거절이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첫 거절’로 소년이 느낀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거예요. 부모로서 안타깝고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말로 소년을 위로했을까요? “분노를 폭력으로 푸는 건 약자가 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야. 분노를 연습으로 풀어서 자신을 증명해 보렴. 그게 강자의 행동이니” 따끔하지만, 진리를 담은 아버지 말은 소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소년은 정말로 가슴에서 분노가 솟구칠 때마다 폭력 대신 연습을 강행했으니까요.
위에 소개된 일화는 농구계 황제로 알려진 마이클 조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마이클 조던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해요. 평범한 흑인 소년이었고, 농구를 좋아했지만, 그 열정과 끈기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어린 인생 최대의 ‘첫 거절’과 아버지의 ‘따끔한 질책’이 소년에게 다른 마음을 품게 했습니다. 내면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오직 연습으로 불태우면서 소년은 정말로 농구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탄생한 전설의 농구 스타가 지금 우리가 아는 마이클 조던입니다.
엄마가 질책하는 이유는 아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은 강제나 명령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마음에 깨달음은 주는 질책은 삶에 꼭 필요한 본질적 내용을 전하는 겁니다. 잘못된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질책할 때,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스스로 수긍해야 합니다. 자기 행동과 마음가짐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여지도 줘야 해요. 일방적인 훈계로 끝나지 않고 생각할 여지를 남긴 질책은 아이에게 생각 확장이라는 귀한 선물을 남겨줍니다.
엄마 질책은 아이에게 귀한 깨달음을 전합니다. 깨달음을 전하는 질책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첫째,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행동이 미칠 영향력까지 살피도록 전하는 겁니다.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때는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까지 고려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 행동이 ‘왜 옳은 행동인지, 그른 행동인지’를 천천히 생각하게 해 주세요. 자기 행동이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밤새 스마트 폰을 보고 컴퓨터 게임 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질책을 해야 할까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행동이 미칠 영향력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질책은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밤새 컴퓨터 게임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혼내고 싶지 않아. 그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바르게 판단해야 네가 억울하지 않을 테니. 옳다는 건 행동이 윤리나 도덕에 합당한 걸 말해. 또한, 행동이 주는 영향도 선한 영향력이어야 하고. 둘 다 충족해야 옳은 행동이라 말할 수 있어”
“네가 밤새 컴퓨터 게임 하는 건 어때? 행동 자체가 틀린 건 아니야. 대신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 볼까? 잠을 안 자면 너의 소중한 뇌가 다쳐. 장시간 게임 역시 뇌를 망가뜨리고. 하루는 괜찮아. 하지만 이런 날이 쌓이면 더 빨리 뇌가 손상되겠지”
“즐기려던 행동이 네게 소중한 걸 공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널 공격하는 사람이 자신이 되면 안 되잖아. 밤샘 게임으로 네가 받을 영향은 널 다치게 하는 거니까 옳지 않은 거야. 엄마는 널 지키고 싶어. 게임을 하더라도 널 지키면서 지혜롭게 하자. 넌 소중한 아이니까”
만약 아이가 잠 안 자고 공부하는 거라면 어떨까요? 질책이 필요한 순간이 맞을까요? 24시간 잠을 안 자면 혈중알코올농도 0.1%와 비슷한 상태라는 전문가 소견이 있습니다. 참고로 0.2%가 만취 상태예요. 행동에 대한 영향력이 아이를 해친다면 질책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넌 밤새도록 노는 건 나쁘고, 공부하는 건 옳다고 믿겠지. 하지만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 모두 나쁜 행동이 아니야. 잠을 자지 않는 게 문제지. 잠 부족으로 겪게 될 영향력 때문이야. 잠 부족은 뇌세포와 기능에 문제를 일으켜서 사고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게 만들어”
“한참 감정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잠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우울증, 스트레스, 분노 같은 감정적 문제가 생겨서 널 괴롭힐 거야. 엄마는 널 지키고 싶어. 학교, 사회, 세상의 목소리는 너한테 공부와 성공을 강요할지 몰라도, 엄마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어”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땐 행동으로 인한 영향력까지 생각해야 해. 행동이 주는 영향력이 자신을 해친다면 옳다고 할 수 없어. 행동이 주는 영향력까지 고려해서 바른 판단을 하는 게 분별력이야. 분별력은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생각능력이야”
잠을 자지 않는 건 위험합니다. 1964년 기네스북에 랜디 가드너라는 17세 학생이 ‘잠 안 자기’에 도전했습니다. 기네스 기록은 세웠지만, 랜디는 ‘환각 현상’, ‘인지장애’, ‘단기 기억장애’, ‘근육 마비’ 같은 심각한 증상을 경험했어요. 그 후 ‘잠 안 자기’는 기네스에서 폐지 되었습니다. 생명을 위협한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죠. 위험성이 있으면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엄마 질책은 아이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방향타입니다.
‘이걸 해도 될까? 하지 말까?’, ‘사람들은 왜 이 행동을 옳다고 하지?’, ‘행동이 미칠 영향력은 뭘까?’ 이 질문은 아이를 깊은 사고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자기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은 물론, 행동이 주는 영향력까지 깊이 생각하게 이끌면서요. 행동을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통찰력도 생깁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능력이 바로 분별력입니다. 질책의 최종목표는 눈앞에 있는 아이 행동만 바꾸는 게 아니에요. 삶에서 필요한 분별력까지 키워내는 게 질책의 역할임을 기억해 주세요.
깨달음을 주는 질책, 둘째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마음속 의도를 살피게 하는 겁니다. 겉보기에 바른 행동처럼 보여도 마음에서 의도한 게 자기 욕심, 이익, 타인을 해하는 거라면 옳은 게 아닙니다. 심지어 남을 도와주는 자선조차 자신을 드러내서 칭송받는 게 목적이라면 옳지 않은 행동이죠. 이런 행동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아이에게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을 땐, 마음속 의도가 선한지 악한지 스스로 살피도록 전하면 좋습니다.
마음속 선악은 아이가 살아갈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기쁨과 평안이 있는 인생이 될지, 후회와 자책이 가득한 인생이 될지는 어떤 마음을 더 많이 품느냐로 결정되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볼까요.
“우리 마음엔 두 마리 늑대가 살아. 한 마리는 거짓, 위선, 탐욕 등 악한 것들로 가득하고 다른 한 마리는 평화, 사랑, 정직 등 선한 것들로 가득해. 두 마리는 늘 싸워. 결국, 누가 이길까? 먹이를 더 많이 주는 쪽이야. 어떤 마음을 자주 품느냐에 따라 마음속 늑대의 승부는 결정되는 거야”
“넌 어떤 삶을 살고 싶니? 불운한 일들로 가득한 인생? 아니면, 행복한 일들로 가득한 인생? 어떤 마음 크기를 키우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져.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그 행동을 한 의도가 악한 걸 안다면 하면 안 되는 거야.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서 네 삶이 되는 거니까”
“세상엔 겉모습은 선하고 친절해 보여도 속이 악한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알아보는 눈은 어떻게 생길까? 네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생각을 품는지, 어떤 가치를 좇는지 늘 생각한 경험이 타인 마음을 알아보게 하는 안목을 줘. 자신을 먼저 알아야 남을 알 수 있어”
아이는 여러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작은 거짓말을 합니다. 성적이 엉망일 때, 잘못이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엄마를 속여야 놀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등이죠. 이럴 때 엄마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거짓말은 가장 나빠. 서로의 믿음을 깨니까. 두 번 다시 엄마한테 거짓말하면 안 돼. 알았지?” 이렇게 질책하면, 아이는 정말 거짓말하지 않을까요? 아이는 작은 거짓말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작은 거짓이 얼마나 흉한 모습으로 성장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짓을 담은 마음은 어떤 모습인지 아이에게 들려주세요.
“산불이 나면 어떻게 돼? 산에 살던 소중한 생명은 물론 몇백 년 세월을 자란 나무들까지 한순간에 태워버려. 이런 큰 재앙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불씨였을 때 재빨리 끄는 거야. 거짓말도 이와 같아. 일상에서의 작은 거짓은 거대한 산불이 될 불씨를 태우는 거야”
“거짓은 타인을 속이는 마음이야. 하지만 거짓으로 가장 먼저 속는 건 자신이야. 마음에 거짓이 쌓이면 사람은 자기합리화를 하게 돼. 심지어 사람을 죽인 살인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먹이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니까. 거짓으로 만들어진 자기합리화는 정말 위험해”
“악을 키우는 건 거짓의 크기가 아니야. 거짓의 횟수가 더 큰 악을 만들어. 사소한 거짓이라도 자주 행하면, 결국 큰 악이 될 수밖에 없어. 넌 착하고 정직하게 태어난 아이야. 타고난 네 정직을 현명하게 지켰으면 좋겠구나. 넌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니까”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상대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누군가를 뒷담 하는 행동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타인 잘못이나 흠을 들추고 인터넷, SNS에 악성 댓글을 다는 것 모두 험담에 포함돼요. 아이가 작은 입술로 조잘대는 험담은 귀여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 에도 엄마는 아이에게 전해야 합니다. 자기가 한 말이 타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요. 시간이 흘러 그 치명적인 악은 반드시 자신을 향한다는 사실까지 아이는 알아야 합니다.
“옛날 한 신이 화살에 저주를 걸어서 세상을 향해 쏘았대. 저주의 화살은 세상 사람을 차례로 죽이고 난 후 마지막엔 신을 향해 날아왔어. 이유는 화살에 걸린 또 다른 저주 때문이야. 세상 사람이 모두 죽으면 활을 쏜 자를 향한다는 저주. 그 화살이 뭔지 아니? 바로, 험담이야”
“넌 알고 있는 진실을 전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용이 타인을 욕되게 하는 말이라면 멈춰야 해. 타인은 물론 너 또한 다치니까. 말이나 글을 쓰기 전에 그 감정을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자신의 뇌야. 부정적 감정을 뇌가 인식하면, 마음 역시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차게 돼”
“말을 할 때마다 항상 네 마음을 먼저 살펴볼래? 조금이라도 나쁜 의도가 보이면 멈추고, 타인에 대한 말을 할 땐 그들을 축복하는 말을 하는 거야. 남을 위한 축복이 네 마음에 쌓이면, 그 축복 또한 널 향한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구나”
유교 경전인 『대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나타나고, 말에 드러나며, 몸가짐에 배어난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걸 말로 표현하고 말이 행동이 되며 행동은 삶이 되죠. 이 때문에 마음이 변하면 얼굴도 함께 변합니다. 삶이 변하듯이요. 지금의 파릇하고 어여쁜 아이 얼굴이 먼 훗날에도 변치 않길 원한다면, 아이가 품었던 본래 착한 마음을 간직하게 해주세요. 착한 마음, 그릇된 마음을 구분케 하는 엄마의 지혜가 아이 마음을 지킬 수 있어요.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사상가인 존 로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고 선한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질책은 올바른 ‘행동 가짐’과 ‘마음가짐’을 전하는 엄마의 교육입니다. 아이를 질책할 때는 혼쭐을 내서 아이 영혼이 탈탈 털리게 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선한 양심이 깨어나게 하는 거예요. 아이는 몸이 자랄 때 마음도 함께 자랍니다. 아이를 감싼 따뜻한 사랑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질책이 아이 마음이 온전히 자라도록 도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