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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iO Dec 11. 2022

마음 덜어내기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K친구를 만나고 들어온 날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쉬었다.

"충전된 에너지를 다 쓰고 온 기분이야"

그때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내가 보기엔 그 이모랑 엄마는 성격도 성향도 너무 다른 것 같아"

어느덧 훌쩍 커 버린 딸은 어느덧 나랑은 친구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외국에 살면 직장과 학교에 가는 시간을 빼면 가족끼리 거의 집에 붙어있으니 서로 24시간의 스케줄과 생각들, 보고 있는 티브이 프로그램, 심지어 서로의 친구관계까지 너무 서로 잘 알게 된다.

둘이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다 보니 딸한테 이런 말까지 듣는 게 조금 웃기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난 인간관계에 있어서 맺고 끊음을 잘하지 못한다. 누군가와 적을 만드는 것도 싫다. 그래서 '정말 이 사람은 아니다'라고 생각되면 그냥 피하고 거리를 두려고 노력할 뿐이다. 물론 상대방이 눈치를 채지 못 도록. 그리고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가능하면 사람을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첫 만남부터 싸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지나고 나면 그 느낌과 그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정확했다. 그런데도 나한테 당장 해를 끼치거나 잘못을 하는 게 아니니 매번 그런 태도를 이해부터 하려고 들었다.


외국에 살다 보면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더 약해지는 부분들이 생긴다. 20년이 넘는 시간들을 한국에서 한국 정서를 가진 한국인으로 살다가 외국에 살면 20대와 30대 초반에는 그 나라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영어 악센트도 따라 해 보고 제스처도 따라 했다. 20대 중반 어학연수 시절에는 그래도 나름 주변이 또래들이니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등 여러 인터내셔널 친구들과 어울려서 나이트도 가고 펍도 가고 한국 대학시절에도 못 해 본 뒤늦은 유흥을 결혼을 하고서 다 누려보았다.(난 한국에서 엄격한 부모님과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라 한창 놀아볼 나이를 그냥 흘려보낸 부분에 나름 아쉬움이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을 때부터는 영국 로컬 엄마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했다. 홈 컵케잌을 만들어 티타임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그들 안에 들기 위해서 참 바둥바둥 애를 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 모든 것이 그다지 필요 없게 되었고 그냥 편한 게 좋아졌다. 그리고 아무리 바둥거려도 난 이방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린 것 같다. 사실 딱히 불만도 없다. 그냥 난 이들과 정서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 '나 그대로의 나' 일 뿐이다.


그리 어릴 때는 외국에서 같은 한국인들을 만나는 게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도 딱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덜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느 정도 외국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며 일상생활도 불편함 없이 무난하게 하게 되면 영어의 간절함이 덜하게 된다. 그리고 한인들과의 교류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시점이 있다. 같이 먹고 싶었던 한식을 해 먹고 찐으로 기뻐할 수 있고, 수다를 떨면 같은 문화와 사고들를 가진 이들과의 공감들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김치찌개에 익숙해져 버린 입맛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그런데 해외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과 조금 다르다. 여기에 모이는 한인들 또한 한국에서 다들 나름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사고가 남다른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유학생, 선교사, 국제결혼, 사업가, 이민 혹은 주재원과 그 가족들 등등.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부딪히는 일들도 더 많지만 또 외국이라는 좁은 한인사회라는 이유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더더욱 조심을 하고 신중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스무 해 이상을 외국에 살다 보니 나름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친구에게 마음 덜 주기 방법'을 약간 터득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친구들이라면 마음을 다 주지 말자.


-너와 함께 있으면 왠지 초라해져.

딱히 콕 찍어서 말하라면 그다지 나쁜 것도 없다. 그런데 집에 오면서 기분이 좋지가 않고 뭔가 찝찝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할 때 살짝 자존심도 상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라 할까?

친구가 해외여행 얘기들을 하다가 이런저런 나라들을 얘기하길래 나도 아는 척을 좀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넌 비행기도 한 번 안 타 본 애가 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니?"

"야.. 나도 제주도는 가 봤거든?"

아... 이렇게 굳이 설명을 하는 내가 더 초라해진다. 그 나라에 직접 안 가 봐도 여러 방송들을 통해 보았을 수도 있고 가 본 지인들을 통해 전해 들은 정보일 수도 있다. 굳이 그 시점에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친하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할 수도 있지.. 하고 합리화시켜 버린다.

그런데 집에 오면서 기분이 좋지가 않고 뭔가 찝찝해 온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나의 자존감이 낮아진다. 그런데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건 사실 이번 한 번만이 아니고 종종 있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나만 상관없는 얘기

주식 얘기, 부동산 얘기, 골프 얘기 등.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가 되고 있지는 하지만 나의 배려는 전혀 안 하거나 못? 하고 내가 불편한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친구들이다.

예를 들어 집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얘기들을 할 때 나만 그중 전세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집을 사서 다행이니, 집을 안 샀으면 지금 즈음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등등.

내가 듣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불편한 진실들을 계속 나누고 있다. 내가 전세에 살고 있고 난 집을 살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얼마나 안타까워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친구들은 마음을 덜 주거나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성이 부족하거나 나에 대한 애정이 아예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화시키지 말고 변명하지 마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친구들이 있다면 합리화시키지 말자. '그래도 좀 철이 없어서 그렇지 착한 애잖아. 적어도 Cheeky하지는 않잖아'.

뭔가 마음이 싸하다는 걸 느꼈다면 절대 무시하지 말자. 당장 나에게 해를 주지 않아도 미래 언젠가는 그 친구 때문에 힘들어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마음을 다 주지 말고 기대지 말고 거리를 유지함으로 나 자신을 보호해주자.

자존감이 떨어지면 그 떨어진 자존감은 그냥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 나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다시 해야 하고 거기에는 또 시간이 한참 걸리게 된다.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을 멀리하자

이건 어릴 때부터 수없이 많이 들은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꽤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남에 대한 가십을 진짜 쉽게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도 사람을 만나고 그 사고가 나랑 너무 안 맞거나 이해가 안 갈 때 그리고 서운할 때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옮기지 않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친언니 같은 언니 딱 한 명이다. 때로는 남편 욕, 주변 사람 욕을 전혀 필터를 거치지 않고 하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지나고 나면 그 당시에 서운했을 뿐 딱히 욕이라 할 수도 없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은 다르다. 꼭 믿을 수 있는 관계에서 서로만 하는 게 아니라 남의 험담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첫 만남에서부터 나도 잘 모르는 가족들에 대한 험담을 너무나도 심하게 하길래 나도 몰래 그 가족에 대해 안 좋은 선입관이 생긴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그 가족과 몇 번 만나다 보니 너무나도 좋은 가족이었던 적도 있다. 본인과는 교육관이나 사고가 조금 안 맞다는 이유로 나뿐만 아니라 주변 많은 지인들에게 험담을 아주 쉽게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게 사회적인 위치와 나이와는 정말 상관이 없다는 걸 느꼈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고 지켜줘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행동과 말을 하거나
내 마음을 본인들의 감정 쓰레기통인마냥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는 좀 마음을 덜 주고
덜어내는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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