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나는 영국에 살면서 영국인이 일본인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같은 섬나라라서 그럴까.
일본 유학을 하면서 느꼈던 일본인들 특유의 친절 속에 진정한 친구가 되기에는 참 먼 기분이 드는 설명할 수 없는 해석까지 닮았다. 뭔가 오늘 만나서 70까지 친해졌는데 내일 만나면 다시 관계를 0부터 시작해야 하는 기분. 그 이유는 영국인 특유의 친절함에서 오는 매너를 친분이 쌓였다고 착각했던 걸까.
대학 졸업 논문으로도 다루었던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의 모습처럼.
그래도 난 예의 바른 사람들이 좋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친구가 될 수는 없으니, 나를 잠시스쳐 지나쳐 가는 사람에게도 미소와 친절함을 베푼다면 그 어떤 사람은 또 나로 인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영국인들이 그렇다.
하지만 가끔 그 "예의" 속에 거리감을 느낄 때도 많다.
영국인들은 sorry를 참 많이 한다.
조금만 나를 지나쳐 먼저 갈 때도 "sorry"
옆에 지나가도 "sorry"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이해 못 했을 때도 "sorry"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이 올 때까지 열고 기다려 줄 때도. " sorry" 아주 광범위하게 항상 쓴다.
서로 지나칠 때에도 먼저 지나가야 할 때도 "Excuse me" 대신 sorry를 많이 사용한다.
누구한테 말을 걸 때도 Excuse me보다는 sorry를 많이 쓴다. 이때 sorry는 정말 미안한 건 아닌데 매너로 많이 쓰는 것 같고 Excuse me를 쓸 때면 sorry보다 왠지 매너가 덜 느껴진다. 물론 Excuse me도 sorry도 말할 때의 톤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Sorry를 말할 때도 빈정대는 톤으로 말한다면 거기에서 느껴지는 예의는 물론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에 들어갈 때 뒷사람을 위해서 거의 99프로는 문을 잡고 항상 기다려 준다. 이건 배워야 할 정말 아주 좋은 배려의 문화인 거 같다. 그리고 뒤 따라가는 사람은 들어가면서 고맙다는 의미로 Thank you 또는 Sorry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인사일 뿐 진정한 미안함의 sorry와는 또 다른의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내가 어느 매장이나 회사에 소속되어서일을 하고 있을 경우, 내가 그 회사에 속해 있다는 주인의식을 가진다는 생각이 영국인보다는확실히 강하다. 그래서 고객이 서비스에 불만을 가지거나 그 회사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우선 그 매장이나 회사를 대표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한다. 물론 그 직원의 직접적인 실수가 아닌 경우도 그렇다. 왠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 대한 책임감과 소속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할까.
하지만 내가 살아 본 바 영국에서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영국인에게 진정한 sorry를 듣는 건 정말 어렵다.
고객이 컴플레인을 할 경우 내가 직접 한 일이 아니면 절대 sorry를 하지 않는다.
난 진정한 Sorry를 듣고 싶은데 그 대신
" It’s not my fault"라고만 한다.
가끔은 내 잘못은 아니자만 유감이다 정도의 sorry는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sorry에서 진정한 미안함은 절대 느껴지지 않는다.
영국 현지 친구 말로는
"난 일한 만큼 그 매장과 회사를 위해 대가를 지불받을 뿐 그 회사의 실수나 회사에 속한 다른 직원 대신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라고 한다. 회사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이런 경우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가 책임질 것인가 정말 의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