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남편과 나는 복잡한 서로의 국적 차이로 어쩌다 보니 영국과 한국 그리고 홍콩에서까지 세 번의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20대 중반, 철없었던 나는 이곳저곳 여행하는 휴가 같은 그 자체가 재미있었고 드레스 주인공 놀이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다. 거의 반년 간의 결혼식 후, 영국에 돌아온 우리는 꿈에 부풀어 새로 짓고 있는 단지에 멋진 단독 주택을 계약을 했고(그때는 벽돌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집을 다 지었다는데 보니 정말 벽돌로 거의 집 외곽만 지어놓은 것에 깜짝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편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난 정말 어린 맘에 충격이었다.
한국처럼 완벽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기본 인테리어까지 된 집을 꿈꾸었었다.
적어도 가구만 들려놓으면 되는 정도?
여기 사람들은 집을 스스로 꾸미길 좋아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했었다.
벽난로, 부엌과 싱크대까지는 선택을 해서 주문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방문 하나하나, 문고리 하나하나, 전등 하나하나, 전기 콘센트 하나하나가 다 선택과 옵션이었다. 집을 짓고 있는 아저씨와 함께 수시로 얘기를 하면서 그 순서에 맞게 이것저것 organize를 해야 한다. 영국의 그 많은 문들(집 구조 자체가 정말 문이 많다)과 손잡이까지 우리가 다 돌아다니며 주문을 해야 했다.
물론 요즘은 집을 지을 때 한국처럼 기본적으로 바닥과 벽 페인트, 부엌 수납장, 싱크대, 욕조, 방 문 정도는 다 갖추어 놓은-turnkey house - 하우스를 짓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엔 거의 다 외곽만 지어진 집에 나 스스로 거기에 맞는 욕조, 목욕탕과 키친의 싱크대와 탑, 샤워부스, 키친 인테리어, 벽난로, 타일, 카펫, 마루를 까는 부분과 그 종류들, 블라인드, 문들과 그 고리들, 온 집안 페인트칠까지 다 알아서 발품을 팔고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은 직접 하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집을 짓기 시작할 때 집을 계약한 후이면 기본 구조에서 어느 정도 변형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키친에 보통 창문 2개가 들어가는데 창문을 3개 넣는 구조로 바꿀 수도 있고 콘센트 위치 같은 부분들도 어느 정도 조정할 수가 있다. 이런 부분들을 준비하고 꾸미는 데에 하나하나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도 막막했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집을 사서 그 집에 들어가서 살기까지는 키친 일을 하시는 분, 바닥을 인테리어 하시는 분, 보일러 담당, 욕조 담당, 페인트 담당 등 모든 부분들을 일일이 찾아서 주문하고 시키고 기다리고 꾸미고 해야 한다. 그 당시엔 또 가구를 주문하면 몇 개월 기다려야 하는 가구도 많았고 또 가구에 따라 직접 만들어야 했던 가구가 대부분이었으며, 그래서 보통 집 데코가 완성되는 데까지는 수개월 아님 몇 년은 걸려야 했다.
그나마 성격이 급한 한국인 성격인 내가 남편을 많이 부추겨서 일 년 안에 끝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하나하나 스스로 꾸미고 준비하는데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영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 당시엔 정말 모든 부분들이 느리고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남편이 그때 나에게 가장 자주 하던 말이 항상
‘Calm Down’이었으니깐…
누구든 새 집으로 이사하면 꿈에 부풀려 있었을 텐데 난 영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 그 DIY 시스템에 정말 치를 떨게 되었다.
오늘도 낮에 냉장고 고치러 온 아저씨는 거의 새것이었던 여기서 산 삼성 아메리카 형 냉장고(양쪽으로 열도록 된 모양을 여기선 아메리카 형이라 부른다. 한국이 더 잘 만드는데...)를 망쳐 버렸다. 냉장 온도가 유난히 낮아서 부른 것인데 멀쩡 하던 냉동고까지 고장 내어 버리셨다. 전원을 넘 자주 껐다 켰다 하는 것이 좀 거슬렸는데 다시 켜니 아예 되던 작동도 멈춘 걸 계속 건드리 시는 걸 보고 나름대로 예의 바르게 아저씨 자존심 안 건드리려고 적당히 말 돌리면서
“어떤 냉장고 주의 사항을 보니 껐다가 켤 때에서 최소한 몇 분 기다렸다 켜야 한다고 적혀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라고 했더니.. 아저씨 대답이 가관이었다.
“May be”
헉…
결론은 그냥 가셨다.
그리고 난 다른 냉장고 전문가를 찾고 있다.
물론 Sorry라는 한 마디는 절대 안 한다.(앞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이 뿐 아니라 세탁기가 고장 나서 온 아저씨.. 전기 고치러 온 아저씨.. 보일러 고치러 오는 아저씨들??
정말 한 번 오는데도 전화하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와서도 시원스럽게 내가 감탄할 정도로 고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심지어 못 고쳐도 그 비싼 출장비도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 답답한 나머지 이런 기술들 내가 다 배워볼까나 하는 생각까지 해 봤으니 뭐…
그래서 영국인들이 본인이 이 집의 가장이라면 웬만한 공구 기계들 정도는 창고에 꽉 진열해 놓고 사는 이유를 잘 알 것만 같다. 그리고 웬만한 건 뚝딱뚝딱 잘 고치시기도 하신다.
본인 스스로 기술자가 되지 못하면 이 나라에서는 시간낭비 돈 낭비.. 도저히 살 수가 없다.
페인트, 마루 깔기, 타일 붙이기는 정도는 웬만하면 집에서 DIY로 할 수 있다.
DIY의 대표 -가구 만들기-
모든 가구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새로운 가구는 주문을 하면 다 플랫 상태(배달될 때 납작하게 포장이 되어서 온다. 책상이든, 식탁이든, 장롱이든.. 알아서 다 만들어야 한다.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딱 맞게 자른 나무판자에 못 자국만 뚫려 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케아 매장 같은 곳도 있고 DIY 가구도 많이 팔고 많이 만든다고 들었다. 하지만 거의 20년 전의 나에게는 정말 너무나 생소했고 짜증 났고 답답했다. 한국처럼 가게에서 아저씨가 딜리버리까지 해 주시고 방이나 거실까지 딱 쓸 수 있도록 배치해 주시고 가는 부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영국에 산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집을 둘러보면 이제 내가 만들어본 가구도 이제 꽤 많다. 설명서를 대강 봐도 망치로 때리고 드라이버를 돌리면서 이제 책장 같은 건 누워서 떡 먹기다..ㅋㅋ
그리고 가격 면에서도 DIY 제품이라면 한국은 좀 저렴한 맛이라도 있지, 여기서 Assembled 해 놓은 가구를 사면 정말 가격에 입이 딱 벌어진다. 그리고 재료비도 인건비도 너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은 DIY로 스스로 해결하는 문화가 잘 자리 잡은 것 같다.
기술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
영국에서 살면서 제일 아쉬운 건 집에 문제가 있을 때 필요한 기술자 분들이다.
실력 있는 좋은 기술자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뿐더러 가격도 만만치 않다. 기술자들의 보수도 영국에서는 꽤 높은 편이다.
몇 년 전 한 6월 말에 물 내려가는 파이프가 고장 나서 수리공을 불렀더니 지금 주문받은 것도 많이 밀려있고 자기 헐러 데이도 있고 해서 8월까지는 시간이 안 난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동네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개랑 여유롭게 산책은 즐기시고 계셨다. 한국적인 일 마인드로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본인의 기준에서 하루에 일을 하는 시간에 대한 기준을 세우시고 여름휴가를 즐기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 당연히 그 분만의 생활방식이고 스케줄이고 이해는 갔다. 하지만 주문이 넘 많이 밀려있어서 바쁘다고 하셨는데 그건 조금만 시간을 내시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울 집 파이프가 새어서 정원에서 더러운 물이 그냥 다 흘러나오는 걸 생각하면 아저씨를 당장 불러서 5분 거리에 있는 울 집 좀 가셔서 조금만 손대면 되는 수도꼭지 좀 고쳐주시지… 두 달을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냐고. 나에겐 그 여유마저 바쁘게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람들의 인식과 비교하면 참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가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 수리공 아저씨들이 너무 그립다.
엄마가 전화만 하면 바쁘신데도 달려오셔서 구슬땀 흘리시며 집 안 구석구석을 봐주셨던 아저씨가 당연하게 보였는데 내가 직접 영국에 살아보니 정말 너무 그립다.
여기 오면 그분들 정말 최고의 기술자이실 것이다.
여기는 기술이 있는 기술자들도 너무 없고 또 부족하다. 아마 영국 시골 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 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서 이렇게 와 보니 한국처럼 편리하고 빠르고 전문적인 기술자가 많은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나라 한국,
돈이 있어도 안 되는 게 많은 나라 영국.
이 부분에서는 분명히 장점과 단점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나라기에 난 단점보다 장점 쪽에 포커스를 두고 살기로 결심했다.
영국에 와서 살아보니 미용기술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머리를 진짜 못 자른다. 아니 못 자른다기보다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머리카락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울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산후조리 때문에 여기에 두 번을 오셨는데 가장 힘들어하신 것 중의 하나가 미용실이었다.
아버지 표현으로는 머리카락이 잔디 깎아 놓은 것 같다고 하시고, 울 어머니 표현으로는 펌을 하면 꼭 라면처럼 만든다고 하셨다. 그냥 그리 외모에 유별나시지 않으신 보통 어르신들인데 펌을 하신 후 어머니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외에도 집 인테리어, 정원 가꾸는 일, 기본적인 기술 정도는 스스로 할 줄 알아야 스트레스 덜 받고 살아남을? 것 같다.
영국의 DIY 문화 얘기는 하루 밤을 꼬박 새워도 못 끝낼 것 같다.
그래도 난 돈만 주면 뭐든 시원시원하게 그리고 빨리빨리 해 주는 한국의 시스템을 너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