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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이 없는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융통성이 없는 나라 영국의 장점과 단점

by ziniO

융통성이 없는 나라 영국


영국에 살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들 중 하나가 융통성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센스가 없다는 부분과도 연결되면서 지혜롭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는 것 같은데 영국은 다르다.

보통 공무원들은 규칙과 정해 놓은 매뉴얼대로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공무원은 당연하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융통성이 너무 없어서 좀 답답할 때가 많다.

정말 별 것 아닌데 이렇게 해 줘도 아무도 손해 볼 사람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더 편리하고 빠르게 일이 해결될 것 같은 부분도 절대 안 해 준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들이 답답해서 짜증도 났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조직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조직 내에서 빨리 적응을 하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융통성으로 샛길을 지름길로 만드는 기술? 도 어느 정도 있어야 인정을 받는다. 원리와 규칙을 눈치껏 적당히 왔다 갔다 하면서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에이, 좋은 게 좋은 거잖아

하지만 이러한 융통성의 단점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눈치껏 적당히 규칙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융통성 있게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은 '현명하며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열심히 일하며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매뉴얼대로 하는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는 데도 결과적으로는 '뒤처지고 뭔가 지혜롭지 못한 답답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조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조금 무능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함이 있지만 영국에서는 한국과는 그 인식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한국 식당에 술에 꽤 취한 진상 손님이 있다고 치자. 그 진상 손님은 술안주로 나온 골뱅이에 본인의 잘못으로 술을 쏟아부었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을 불러서 다짜고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모욕적인 말도 하고 욕도 하면서 당장 새로운 골뱅이 안주를 내어 오라고 야단을 친다. 아르바이트생은 당황하면서 "손님 죄송하지만 안주가 잘못 나간 것도 아니고 이런 경우에 새로운 안주를 다시 만들어 드릴 수는 없다"라고 정중히 사과를 한다. 계속 손님이 소리를 지르고 막무가내로 새로운 안주를 내어 오라고 하자 결국 아르바이트생은 사장님께 물어보겠다고 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장님은 융통성 없게 그냥 드리면 되지 그게 뭐라고 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나무란다. 며칠 전 같은 진상 손님이 왔을 때 비슷한 경우 새롭게 바꿔 주었다고 사장님께 꾸중을 들었던 아르바이트생은 너무 이해가 안 되었는데 거기서 사장님이 한마디를 하신다.

" 이 손님이 우리 가게에 얼마나 많은 매상을 올려주시는 단골손님인데, 눈치없이!?"

이유는 그거였다. 그냥 돈을 많이 쓰는 손님. 그런데 융통성 없게 손님을 더 화나게 했다고 혼이 났다.


이런 경우 한국적인 마인드로 이해가 가는가? 아르바이트생은 혼이 나서 억울하지만 어느 정도 상황에 따른 융통성의 필요에 대한 부분이 이해 가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좀 현명하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좀 융통성 있게 대해야지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영국이라면 어떨까?

펍 바깥에 있는 신체 건강한 보디가드(bouncer)들? 한테 그냥 끌려갈 것이다. 경찰도 올 것이다. 상식적인 규칙을 그대로 따라한 아르바이트생이 혼이 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아들이 와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대신 영국은 대놓고 모두가 인정하는? 특권층에게만 주는 불공평한 특혜들은 있다. 귀족사회라 그런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융통성과는 또 다르다)


물론 한국의 적당한 융통성은 참 편리한 때도 많다.

위의 예와는 조금 다르지만 한국에서 은행을 갔었을 때 무슨 서류 하나를 빼먹고 가져오지 않았었다. 원본을 들고 와서 복사를 은행에서 해야 하는데 빼먹고 안 가져오는 바람에 집에 다시 가야 하나 생각을 하는 찰나 핸드폰에 찍어 놓은 사진이 생각났다. 그랬더니 직원은 내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고 그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고 그걸 프린트하는 것으로 집에까지 다시 가서 가져와야만 하는 수고를 덜어 주었다. 사실 직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나를 알기 때문에 편의를 봐줄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원본을 주면 복사를 해서 다시 원본을 돌려주는 식이니 이렇게 해도 서류를 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건 맞았다. 하지만 매뉴얼이 그렇다고 무조건 가져오라고 안된다고 해도 될 것을 나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고 최대한 그 상황을 순조롭게 해결해 준 은행 직원이 너무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영국이라면 어떨까?

절대 안 된다. 매뉴얼에서 벗어났고 규칙을 어기는 일은 절대로 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했을 때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손해 볼 짓은 절대로 안 해 준다.

책임을 질까 봐 회사를 대신해 Sorry란 말도 절대 안 하는 영국인이 그렇게 해 줄리가 없다.

그리고 영국인들 또한 그런 부분들은 기대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영국에 살면 정말 별 것도 아닌데 좀 해 주지 하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아주 큰 장점이 있다.

이런 융통성이 아예 안 통해서 조금은 답답하지만 대신 억울한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뒷돈으로 해결하려는 안 좋은 문화도 거의 없을 것이다.



뭐가 맞을까.

영국과 한국의 좋은 융통성 부분만 반반 섞어 놓았으면 좋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융통성은 어느 정도 아쉬울 때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책임감과 부끄러움이 없는 잘못된 조직과 사회에서의 융통성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냥 살면서 융통성이 너무 없는 건 딱 꼬집어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그냥 한마디로 이렇다.


억울하지는 않은데 뭔가 개운치 않다

요즈음처럼 변화가 무상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어느 정도 예상치 못한 변화에 융통성 있게 잘 대처하는 건강한 융통성이야 말로 건강한 사회가 되는 지름길인 것 같다.


Oxford Island. Northern Ir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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