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 심지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화를 내는 사람도 생길 것 같다.
난 영국에서 바쁜 출근 아침시간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꽤나 놀란 에피소드가 있다.
유학생 때 수업을 듣기 위해 9시까지 학교에 가야 했었다. 집에서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에 맞추어서 기차를 탔고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기차가 멈추어 버렸다.
그때 내가 탄 기차 시간대가 정말 가장 바쁜 출근시간이어서 많은 직장인들이 함께 같이 타고 있었다. 방송에서 기차의 결함으로 체크를 하고 다시 출발하겠다고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기다리길 10분~20분.
다시 방송이 나온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다고 한다.
난
'뭐야,, 언제까지 걸리겠다, 아님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이 무작정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하고 속으로 불평을 하기 시작하는 찰나,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폰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본인이 가야 하는 회사나 사무실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충 이러이러해서 늦을 것 같다는 말들을 하고 다시 폰을 끄고 다들 태연하게 앉아있는다.
정말 내가 놀랐던 건기차 안 그 많은 사람들 중 무슨 일이냐며 불평하는 사람도, 투덜대는 사람도 그 누구도 한 명 없었다. 그리고 또 10분이 지났나… 방송이 다시 흘러나왔다. 황당했다.
“미안합니다만 오늘 기차는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을 거 같으니 다들 이번 역에서 내려 주셔야 하겠습니다”
난 솔직히 정말 화가 났다. 아직 서너 코스는 더 가야 학교에 도착을 하는데, 그리고 그럼 더 빨리 말을 해 주지, 여기서 어떡하라는 말이야. 정말 짜증이 났다.
이 즈음되면 다른 사람들도 완전 짜증 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깜짝 놀랄 광경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내리기 시작했고, 승무원은 사람들 내리는 상황을 정리해 주고 도와주고 계셨다. 난 승무원을 지나면서 표현을 못 하고 맘 속으로 씩씩거리면서 내리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한 마디씩 한다.
“Thank you!"
난 정말 머리에 뭔가로 한 대 맞은 듯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영국인들은 누군가를 내가 앞질러 지나가야 한다거나 버스나 기차를 타고 내릴 때 양해를 구하는 말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한다.(sorry, thank you)
지금의 Thank you는 영국인들이 잘하는 몸에 배여 버린 인사말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한마디 불평하는 사람 없이 어떻게 다들 고맙다는 말을 할 수가 있냐고.
난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국 사람들은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 쉽게 안달 내거나 초조해하거나 하는 부분들의 감정을 크게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회사나 사회분위기가 또 그런 상황들을 많이 이해해 주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도 그려려니 하는 느긋함이 생기는 것 같다. 또 내가 화를 내고 안달해도 그 상황들이 달라지는 것이 없기도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나 보다는 다들 훨씬 중요한 아침이었을 건데 말이다.
어쨌든 그때 그 일로 나도 많이 배운 점이 많다.
‘좀 더 침착하자,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이제는 좀‘Calm Down’ 하는 법을 배우자’
이번엔 영국은 아니지만 스페인에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 여름 놀이동산을 생각하면 얼마나 더운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 해 스페인도 정말 정말 더웠다.
하지만 인상 깊었던 점..
그때가 휴가철이라 놀이기구 하나에 한두 시간은 기다리는 게 보통인데 자리가 조금씩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어른들 아이들 할 것 없이 환호성과 으쌰 으쌰 노래를 같이 부르기 시작한다.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팀이 된 것처럼.
거기엔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지겹다고 짜증 내는 사람도 하나 없다. 벌겋게 얼굴이 익어 있었는데도 다들 너무너무나도 행복한 얼굴이다. 노랫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밝은 표정과 함께 그 해 스페인 여행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때부터 날씨도 좋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많은 스페인을 난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Salou. Spain
누구든 그 나라에서 살아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100프로 알 수 없다고 했던가.
한국이 얼마나 빠른지는 외국에 살아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조건 빠른 것도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너무 느린 것도 답답하다.
하지만 항상빨리빨리 시스템에서 감사와 여유란 걸 느낄 수 없는 삶도 문제인 것 같다.
때로는 기다림에서 더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을 때는.. 그리고 어차피 기다려야 한다면..
그냥 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조용히 기다려보자..
이럴 때 기다림이 익숙하고 그 속에서 안달 내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고 차라리 여유를 즐기는 이들을 보면 참 멋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