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내가 살던 한국은 지금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느렸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 느려서 볼일을 볼 때마다 참 적응하기 힘들었다 모든 부분에서의 일 처리가 느려도 너무나 느렸다.
특히 인터넷!!!
한국은 1999년 즈음 ADSL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는 인터넷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이를 기점으로 케이블 인터넷이 정액제 요금제도와 함께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전화망용 모뎀과 PC통신을 넘어선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나는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을 접하자마자 나의 그 소중한 새 데스크톱을 한국에 두고 영국행을 결정했다.
내가 영국에 온 건 2000년 가을...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때 영국의 일반 집에서는 전화망을 이용한 인터넷을 대부분 사용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메일을 하나 보내는 것도 정말 느렸다.
집에서 인터넷 사용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 주로 대학도서관을 가서 사용했었는데 거기서도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한국어로 이메일을 하나 보내는데 한참이 걸렸고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스마트 폰으로 영어 한국어 등 모든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무료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언제든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는 생각도 못했으리라. 그때 국제전화카드로 얼마나 많을 돈을 썼었던지...
하지만 이제 여기도 인터넷은 꽤나 좋아졌다.
한국만큼 빠른 인터넷은 아니지만 이제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졌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느린 부분이 있다. 비로 관공서 일처리나 서비스 부분이다. 아주 단순한 서류,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예약 없이 당장 가도 10분 만에 떼어 볼 수 있는 서류들을 여기서는 전화로 예약을 하고 며칠 혹은 몇주 뒤에 예약을 잡고 그리고 그 서류를 신청을 하고 내 손에 쥐어지는 데까지 또 며칠, 몇 주가 걸리는 일이 태반 사이다.
앞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특히 은행 업무는 정말 비교가 된다. 한국에서 은행 계좌를열고 싶으면 그냥 은행 가서 열면 된다. 물론 한국도 요즈음에는 계좌 여는 것도 꽤 까다로워졌다고 들었다. 영국에서는 계좌를 아무한테나 잘 열어주지 않는다. 확실한 직업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내 이름으로 매달 집으로 오는 Bill을 증거 자료로 추가할 수도 있다. 그만큼 내가 이 나라의 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건 나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보장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그 절차가 한국만큼 쉽고 간단하지는 않다.
안경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안경을 맞추기 위해 그냥 안경점에 가서 시력을 재고 안경을 맞추어서 오면 된다. 몇 년 전 이마트에 가서 남편 안경을 맞추는데 그 자리에서 시력을 재고 이마트 장을 보고 한 두어 시간 후에 오면 안경을 찾을 수 있다고 한 말에 남편이 놀라움과 감동을 함께 받았었다. 보통은 그날 못 받으면 늦어도 다음날에는 찾을 수 있다.
영국에 오래 살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시스템이 너무 이상하고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여긴 절차가 복잡하다.
우선 은행과 마찬가지로 안경을 새롭게 맞추고 싶으면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한다. 보통 며칠에서 수 주가 걸린다. 그럼 그 예약 날짜와 시간에 도착을 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시력을 검사한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다른 방으로 가서 전문적인 선생님과 함께 또 세부적인 시력검사를 한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간단하게 한국에서 안경을 맞추었을 때보다는 좀 더 꼼꼼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그렇게 꽤 긴 시간 동안 검사를 하면 그 결과와 함께 안경을 고르기 시작한다. 안경을 고를 때는 또 다른 전문가분이 오셔서 조언을 해 주신다. 어쨌든 그 모든 절차를 거쳐서 맘에 드는 안경테를 고르면 거기에 맞는 안경알을 고르는데 옵션이 또 꽤 복잡하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안경을 주문하고 나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당장 안경을 내 손에 쥐어질 수 있나. 또 그건 아니다. 그 안경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때도 안경은 직접 써 보고 잘 맞는지 체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방문을 해야 한다. 주문을 하고 안경을 다시 찾으러 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1주일 정도였다.
그러면 내가 안경을 새로이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손에 안경이 쥐어지는 순간은 적어도 빠르면 열흘에서 늦어지면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사실 은행과 안경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내를 가지고 살다가 보니 처음에는 답답하다가 점점 익숙해져 가면 그리 안달 내지 않고 또 잘 적응하게 된다. 그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해서 계획을 잡다가 보면 딱히 예전처럼 안달 감도 안 생긴다. 저절로 ‘기다림의 미학’ 이 생기는 거 같다.
그러다가 한국에 가면 너무 빠른 서비스와 시스템에 감동을 받는다.
"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객님"( 영국에 오래 살면 이 말이 난 너무 좋다. 영혼이 없는 말이라도 괜찮다. 참 듣기 좋고 고맙다. 바로 앞 글에서 말했듯이 영국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니 미안하다는 말을 참 안 한다)
이 말에 황송하기까지 하다 못해 자꾸만 난
"아니요, 천천히 하세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연달아 내뱉게 된다.
이제는 영국이 정상으로 느껴지고 한국 시스템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처리를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작은 일반 안경가게에서 공장에 주문을 넣지 않고 안경이란 걸 금방 만들 수가 있을까, 그것도 아저씨 혼자서 주문도 받고 시력도 검사해주시고 상담도 하시고 안경알도 깎으신다.
또 어떻게 은행에 카드 기계까지 있어서 카드를 그 자리에서 금방 만들어 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어느 나라가 정상인지까지 헷갈리게 되지만
난 그래도...
빠른 시스템의 한국이 확실히 좋다.
요즘은 큰 아들이 대학을 앞두고 방학 동안 운전시험을 준비 중이다.
난 아들이게
"한 달 정도 열심히 연습해서 대학 가기 전에 따 버리자."
라고 함께 얘기를 하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참... 내가 까먹었지. 나도 17년 전에 여기서 땄었는데.
우선 영국에서 운전면허 따기 절차.
먼저 우체국 같은 데 가서 면허신청 form을 가져다가 L(provisional driving licence )운전면허, 즉 learner's licence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신청서에 자세한 디테일을 다 적고 보내면 몇 주 후에 운전면허증(provisional driving licence)이 도착한다.
그럼 이제 이론 시험과 실기 시험을 신청할 수 있다.
차에 큰 L 스티커를 붙이고 경력 있는 운전자가 동승을 하면 운전도 연습할 수 있다.
한국처럼 운전면허학원 같은 건 없고 보통은 전문 운전 선생님을 고용해서 운전을 배우면 된다. 그리고 필기시험을 예약해서 필시 시험을 치고 실기 시험을 예약해서 치면 된다.
한 달을 잡았던 합격의 길은 멀다.
그래서 이번 여름 한 달 만에 따는 건 포기했다.절대 못한다.
몇 주 전에 우편으로 신청했던 provisional driving licence도 아직 도착을 안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코로나 시기 때문인가 해서전화를 해 보니 보통 2-3주가 걸린다고 하니 기다리고 있다.
운전면허신청서
Provisional driving licence d 와 모든걸 합격한 후 받게 되는 운전먼허증
아이들 한국어 때문에 몇 년간 온 가족이 한국에서 산 적이 있다. 남편은 영국 운전면허증을 한국 면허증으로 교환할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운전하는 거니 면허증을 제대로 시험 쳐서 가지고 싶다고 해서 신청을 하게 되었다.
운전은 잘할 수 있으니 운전 연수는 필요 없고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면허장을 갔다. 아침 일찍 영어로 된 필기시험을 치고 곧바로 점수가 나오고 점심때 신체검사 시력검사 등을 면허장에서 받고 장내 실기시험에 이어서 도로 실기시험까지 오후에 다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30분 정도 기다리니 그 자리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손에 쥘 수 있었다. 딱 하루가 걸렸다.
말도 안 된다며 한국의 빠른 시스템에 남편은 감동을 했다.
오늘도 이것저것 신청한 서류들과 간단한 일처리를 위해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 나니 오전 시간이 그냥 없어져 버렸다.
아직도 느긋하게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답답해서 못 하나 보다. 이럴 때마다 안 해도 되는 일에 너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국과 비교해 한국은 갈 때마다 느끼지만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처리가 너무 많아서 항상 속이 다 시원해진다.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 속에 설렘을 느끼냐 기다림 속에 불편함과 짜증을 느끼냐는 모두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기대감과 즐거움을 느낄 때 그 결과물은 당연한 게 아니라 더 귀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