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국제학교 입학

#영국에서 두 아이 키우기/국제학교 입학

by ziniO

국제학교 입학



2년을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아이들도 훌쩍 커 버렸고 이제는 사투리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 정말 네이티브 한국 아이들이 되어 버렸다. 한국 도착한 첫날, 처음에 다소곳이 영어로 이모한테 인사하며 뒷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도 구수한 사투리를 찰지게 또래 친구들과 잘도 나누고 장난치는 장난꾸러기가 되었다. 오빠와 동생 둘이서는 영어를 줄곧 썼는데 이제는 한국말을 쓰는 게 더 편한지 둘이서 대화도 한국어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국에서 계속 지낼 수는 없고 우리도 모든 걸 영국에 잠시 두고 온 상태라 이젠 정말 결정을 해야 했다.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야 하고 둘째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했다. 첫째 아이는 목표했던 한국말 익히기는 물론 한국어 수업도 아이들과 뒤처지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그리고 둘째 딸은 유치원 2년 과정 동안 스트레스 없이 한국말을 잘 익힌 것도 모자라 너무나도 토종 한국 어린이가 되어 아주 재미있게 한국 생활에 잘 적응을 했다. 한국 유치원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한글 떼기까지 해 주신 덕분에 둘째 아이는 내가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유치원에서 일기나 부모님께 쓰는 편지를 한국말로 곧잘 잘 써서 나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다 일어났다.

2년 전 영국 Nursery 과정을 다닐 때 영국 유치원에서 받은 그림 편지들이 기억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또박또박 쓴 손글씨. 그리고 요 나이 때 애들이 똑같이 짜고 그린 듯 세계 공통적으로 비슷한 외계인 가분수 머리에 머리카락 몇 가닥과 손가락 개수만 열심히 다섯 줄로 채워 손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신기한 가족 그림을 받으며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듯 너무나도 행복했다.

"I Love you mummy"

또박또박 영어로 쓴 글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내 아이가 나중에 한국어로도 이렇게 편지를 써 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그런데 이젠 한국어로 된 그림카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만 7세 반 유치원에서는 고맙게도 엄마 아빠에게 쓴 편지 숙제들을 참 많이도 시켜주신다. 그 한가득 그림과 편지, 그리고 작품? 들을 폴더에 정리하면서 너무나도 난 흐뭇했다.


정말 나의 바램대로 한국에 와서 다 이루었다.

아이들의 한국어는 완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처럼 발음도 자연스러웠다.



2년이 지날 즈음 남편과 진지하게 얘기했다.

큰 아이의 영국 중학교 입학시험(11+)은 외국에서 올 경우 transform exam으로 학교 입학시험을 대처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중요한 GCSE(고등학교 입학) 시험 2-3년 전에는 늦어도 영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고 한국 학교를 계속 다닐 수는 없었다. 난 나의 고국이라 무엇보다 한국이 편하고 하고 있는 일도 있어서 좀 더 있는 편이 좋았지만 아이들은 미래에 어차피 영국에서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영국에서 살아가야 할 건데 아이들이 점점 영어를 까먹고 있었다. 큰 아이는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만 5세에 왔던 둘째 아이는 한국 유치원에서 너무너무 적응을 잘해 주어 감사했던 반면 영어를 거의 까먹어버렸다. 그나마 아빠와의 대화는 영어로 완벽하게 구사를 했는데 거의 2년을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영어는 거의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둘째 아이는 한국으로 오기 전 영국 학교에서도 파닉스 읽기를 채 끝내지 않고 온 터라 읽기 쓰기가 다 잘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너무 욕심을 가지지 말자라는 생각. 감사하게도 이젠 두 아이 다 한국말도 잘하니 영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니던 외국인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혼혈 아이를 둔 부부와 우연히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분들은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 그분들은 한국에 계속 거주를 할 거니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겠다 생각했고 우리가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온 터라 그 비싼 학비를 내면서까지 한국어를 쓰지 않고 영어를 쓰는 국제학교를 보내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그때 여러 가지 상황들로 남편도 한국에서 시작하던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고 아이들도 나도 한국에 좀 더 있기를 바라고 있는 찰나였다.


그리고 결론은 국제학교 입학이 가능하면 더 있고 입학이 안 되면 영국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때 국제 학교는 개교를 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시 외국인 아이들 유치가 필요했고 입학이 가능한지 서치를 하면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절차를 밟고 입학시험과 교장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 이후 2년의 시간을 한국에서 영국 학교도 아닌 미국 국제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한국학교 생활로 아이들은 쓰기 읽기 말하기의 한국어도 더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또한 완벽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학교에서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안에서 또 다른 미국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한 국제학교 안에서의 생활과 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또 쑥쑥 자랐다.

국제학교에는 다양한 인종이 다 있었고 특히 외국인 자녀들과 한국인 자녀들과의 문화와 사고 차이 등에서 나름 보고 느끼면서 본인만의 긍정적인 사고 방향을 확립시키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아주 중요한 기회와 시간들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는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정말 많은 부분들을 아이들이 많이 경험하고 배우게 되었고 그 모든 부분들이 지금 아이들에겐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와 삶의 보약이 되어서 차곡차곡 아이들 속에 쌓여 있는 것 같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때 두 아이의 나이가 너무 어리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였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와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해 준 것 같다.


이렇게 아이들은 한국에서 4년을 살면서 감사하게도 한국어 습득뿐만 아니라
그렇게 한국에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와 삼촌 그리고 사촌들까지 함께 만나면서 살았던 4년의 시간들은
아이들의 사고와 문화, 언어,
심지어 입맛 까지(매운 음식, 다양한 음식의 식감과 맛, 그리고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아이들과 같이 제대로 공감하고 즐기는 것도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그 입맛을 좌우하는 나이도 이때인 것 같다)

이 모든 경험이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한 국제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들로 키울 수 있게 되는 멋진 기회와 시간들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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