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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iO Oct 19. 2022

정 주고 마음 주고 다 주지 마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한국을 떠나 외국에 오랜 시간 살다 보면 가장 힘든 부분들이 있다.

인연...


처음 10년 동안은 그랬다.

한국을 떠나 영국 시골에 살고 있으니 미친 듯이 영국에 오는 모든 '인연'들이 반가웠다.

밥을 주고 시간을 주고 그리고 정을 주었다. 그리고 집을 항상 오픈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집을 오픈하고 식사를 대접한다는 건 나의 마음이었다.  진심이었다.  기준은 적어도 그러했다.


유학생들은 유학생 나름대로 안쓰러웠다. 고국을 떠나 한 끼의 집밥, 특히 한식을 그리워했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했던 힘든 시절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재워주고 밥 주고 여기저기 픽업하고 태워주고 마지막 공항에 가는 날은 오지랖 넘치게 김치볶음밥이나 김밥 같은 도시락까지 챙겨주면서 헤어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1~2년씩 아이들 영어나 일 때문에 유학, 연수를 오는 가정들에게는 줄 수 있는 온갖 정보를 다 주었다. 애들 학교 입학을 위해 대신 전화도 걸어주고 중고차를 구하기 전까지 같이 알아봐 주고, 외국에서는 대중교통이 한국과는 달리 잘 되어 있지 않으니 내 차로 픽업해 가면서 장도 같이 봐주고, 내가 10년 동안 영국에 살면서 터득한 보석 같은 삶의 지혜와 아이디어들을 마구마구 알려 주었다. 내가 뭔가를 도와줄 수 있고 정보를 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외국에 오는 한국인들에게는 공통점들이 있다.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보통 인간관계에서 유효기간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고마워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친하게 지내는 시간들이 보통 딱 6개월이다. 6개월이 나면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지닌 더 도움이 되는 다른 한국인들을 찾아간다. 물론 탓할 수는 없다. 그들 또한 외국에서 더 잘 살아남아야 하니까.

단지 씁쓸한 건, 난 계산적이지 않게 마음과 시간과 정과 정보들을 주었는데 그들은 계산적으로 사람을 대하며 자신한테 더 고급진 정보를 주는 한인들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모든 정보를 얻고 나면 또 다가온다.  이상 정보 따위는 그럭저럭 필요치 않을 정도로 적응을 잘하였고 이제는 일상 속에서 약간의 편한 사람이 좋을 수도 있다. 그게 보통 한국에 돌아가기 전 한 두 달 전이다. 그때는 친구인가 했는데 딱히 그것도 아니었던 경우가 많다.(그 마음을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보통 마지막 1년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애매한 경우가 많이 생긴다. 집과 자동차를 처분하면 짧게는 며칠, 보통 1주일에서 2주일간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숙소를 부탁할 경우가 대부분이.  많은 이삿짐을 들고 너무 상황이 애매해서 막막해한다. 물론 부탁하기도 전에 상황들을 듣고 내가 먼저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럼 난 또 우리 집을 오픈해서 1~2주간 지내게 해 준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그들이 한국에서 정착할 계획들을 준비하는 동안  난 또 나머지 정을 줘 버린다. 그리고 공항까지 태워주고 나가서 아주고 보내고 또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하고 공항에서 돌아오는 하늘은 항상 회색빛이었다. 그렇게 보낸 가정들과 유학생들이 몇 명이었던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


그리고 나면 끝이다.

다시 한국 가면 연락 오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한국에 가면 다들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서 서로 만난다 해도 여기서처럼 집을 오픈하고 같이 놀고 수다를 밤새 떠는 건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들 바쁘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이해는 간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을 할 때 도움받았던 교회 사모님, 어른들에게 나도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걸 다른 이들에게 갚고 있다는 맘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몇 년은 그들에게는 휴가였고 추억이었지만 외국에 사는 나에게는 나의 일상과 삶을 한 부분 빼앗겨 버린 기분이 드는 건 나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별을 할 때는 남아있는 쪽이 떠나는 쪽보다 훨씬 아프다는 걸 매번 느껴야만 했다.

...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유학생과 한국인 가정들 만나 10년이 넘게 맞이하고 보내다가 보면 많은 걸 깨닫게 된다. 영국 시골에서 몇 년간 살다가 독일에 간 언니 말이 생각난다. 독일 한인들은 거기랑 다르다고. 처음에 도착했을 때 아는 한인 가정들이 있었지만 절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언니보다 먼저 독일에서 정착을 했다. 그 정보라는 게 별 것도 아닌데 너무너무 서운했다고. 교민들이 많은 나라일수록 그렇다고 한다. 

"나도 힘들게 찾아낸 정보이니 너도 부딪히면서 스스로 찾아 내 봐!"


매정하지만 그들 또한 왔다 갔다 하는 수많은 한인들한테 얼마나 마음을 주고 되돌려 받지 못했으면 그럴까. 이해해 본다. 난 아직 그러질 못하고 아직 오지랖이 장난이 아닌 걸 보면 10년, 아니 지금은 20년이 넘었는데... 부족한가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별 후 가장 힘든 건 추억과 흔적이었다.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과의 이별뿐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에 맞닥뜨린다. 외국에 살기 시작한 지 초반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들이 왔다 갔다 하는 한국 사람들과의 이별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또래 아이들이 오면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난 여기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들은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영국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사람들이니 당연했다. 다들 얻을 것만 얻고 떠나가야 하는 건 아주 당연했다.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어린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오는 아이들과 1년에서 2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아주 친한 친구가 된다. 그런데 그러한 가정들을 하나 둘 보내다 보면 아이들이 묻는다.

"왜 내 친구는 영국을 떠나야 해?  이제 다시 안 와?"

....


그렇게 반복이 되면 어느덧 아이들도 익숙해진다.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은 언젠가는 다 떠난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놀다가 갈 때면 우리 아이들만 유독 쿨 했다. 이제 집에 가야 한대. 이제 다른 나라로 친구가 갈 거야.

"오케이" 단 한 마디. 돌아가는 친구는 우리 집에서 놀다가 떠날 때마다 울고불고 신발도 안 신으려 하지만 울 아이들은 빅 허그와 함께,  "잘 가,  good bye" 한 마디.

다른 어른들은 서운한 마음 감추고 "아이들이 어찌 이렇게 쿨 하고 멋져요?"  

가슴이 짠해 왔다.  외국에서 왔다 갔다 하는 친구들을 보내야 하는 마음들을 어린 나이부터 터득했다는 걸. 덜 상처받기 위한 나름의 보호 방어이란 걸. 그래야만 나처럼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니까. 

 

예전에 오빠의 조카들이 우리 집에서 1년간 영어공부를 위해 유학을 었다. 비록 친언니는 아니었지만 같이 1년간 매일 요리하고 쇼핑하고 같이 애들 케어하고... 그렇게 같이 살았던 1년이라는 시간들한국에서의 1년의 시간들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 시간들이었다.

1년이 지나고 조카들과 새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공항을 다녀오고 나니 저녁 8시였다.

난 새언니가 조카들과 지내던 방을 페인트 칠 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잠도 안 자고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까지.

그렇게라도 내 맘 속 깊은 허전함의 구멍을 페인트칠로라도 메꾸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사람에 대한 "정"이라는 건.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더 깊은 무엇인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날 밤 페인트 칠을 하고 방을 다시 꾸미다는 건 그동안의 추억과 흔적들을 맘 속 깊이 묻고 새로운 색으로 그 위를 덮으면서 나도 다시 또 이 낯선 땅에서 새로운 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고 낯선 땅에서 다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었다.


20년을 산 영국 땅.

아직도 난 이방인으로 살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부분이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힘든 부분에 대한 수용, 인정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단지 내가 힘든 건...

그놈의 제기랄...

밑바닥까지 깔려있는 "정" 이란 부분이다.


이방인으로 영국 땅에 사는 것.

한국인들 사이에 오가는 그  뼛속까지 스며든

""이라는 것 때문에

오늘 하루도

또 새로운 사람에게  맘 주고

또 빼앗기고

또 상처받고

할 거 같다.


이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 노래 가사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지만
이제는 남이 되어 떠나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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