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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iO Oct 14. 2022

생각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들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난 엄격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마시면 지옥에 갈 것만 같은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종교적 압박감, 사회적 굴레와 관습, 규칙 같은 것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다.

사실 살다 보면 그 관습들과 규칙들이 나름 세상의 전부인 줄 정답이었다고 알았던 부분도 다른 세상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부분들도 있다. 조금만 다른 시선, 관점으로 바라보면  틀린 것도 많은데 말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 어떤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게 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다.  


주일날 돈 쓰면 안 돼

예를 들어, 내가 어릴 때 아마 초등학교 때 즈음에는 교회에서 주일날 돈을 쓰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 근처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다가 지나가던 교회 권사님께 야단을 맞은 이후로는 주일날은 교회 바로 근처 슈퍼엔 가지도 않았다. 웃기는 건 몰래 사 먹으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주일날 먹으면 왠지 죄책감도 들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게 어디 있는가. 주일날 교회분들과 가지는 식사 모임은 아주 보통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 정답이라 생각했던 부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아니게 되는 것들이 있다.


또한, 한국과 외국에서의 인식이 다른 부분들도 있다.

앞에서 말한 술은 한국에서는 크리스천에게 아주 부정적이지만 외국에서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들이다. 한국에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확실히 '세상적인 방탕과 취함, 즐김과 죄'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아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술 마시면 죄?

영국에서 살면서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닫으면서 와인이 너무나도 많이 남게 되었다. 다시 되팔기는 그러했고 차라리 주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자 하면서 집에 다 들고 왔다. 한 번은 로컬 교회에서 꽤나 친했던 교회 사모님께서 집에 놀러 오셨는데 가실 때 혹시 와인이 필요하면 맘 껏 가지고 가시라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교회 사모님께 이런 선물을 드려도 될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사모님은 너무나도 고맙다면서 목사님께서 좋아하시는 와인이라 하셨다. 그때 느꼈다. 술에 대한 인식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그때 물어보니 목사님과 사모님도 종종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와인 한 잔씩 한다고 하셨다. 그때 '술'자체가 '죄'가 아니라 술을 마시고 취할 때 쉽게 죄를 지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걸 그때 다시 배웠다. 그렇다고 목사님께서 펍에서 술에 취하셔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부분은 물론 영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다.


요즈음은 한국에도 '술을 입에도 대지 말라=지옥행'까지는 아닌 듯하다.

언젠가 목사님이 된 친한 선배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우습게 소리이지만 한국에서도 술에 대한 나름 기준이 있다고 들었다. 교회 교역자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술을 입에 대고 안 대고에 대한 기준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 갔을 때 곁들여 나오는 와인 한 잔 정도는 음식으로 간주해 마셔도 된다고. 다 같은 술인데 와인한테는 좀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했다.


아기띠?

나라마다 인식이 다른 것 중 하나가 아기띠이다.

영국에서는 아기의 안전을 위해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에게 아기띠를 해 준다. 유모차에만 앉아 있던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할 나이에 손을 잡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잡으면 다른 물건도 못 잡고 또 아이가 엄마손을 뿌리치고 찻길로 뛰쳐 들어갈 위험도 있다. 그런데 아기띠를 해 보면 그런 위험에서 방지해 줄 뿐만 아니라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는 넘어지려 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살짝 들어 올려 주면서 몸의 균형을 잡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손으로 잡으면 엄마의 손과 아기의 손 높이가 다르니 불편한데 아기띠가 아기 입장에서도 훨씬 자유로워지는 이 좋은 물건은 나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첫째 아기가 두 돌이 되어 한참 돌아다닐 때 한국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당연히 영국에서 한참 잘 쓰던 아기띠를 가지고 가서 아기띠를 매고 한국 백화점에 들어갔다. 하필 머리부터 발 끝까지 동물 모양 점퍼를 입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들 귀엽다고 하면서 맘대로 사진도 찍어댔다. 속으로는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니 의아했지만 뭐 귀여워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왜 애기를 줄로 묶어서 다니냐고.. 한마디 하셨다. 알고 보니 안 그래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아기를 데리고 다니기 힘드니 노끈으로 매고 다니는 시골 할머니 얘기가 다뤄진 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요즈음은 인터넷에 보면 아기띠를 한국에서 많이 팔기도 하니 그때와는 인식이 다를 것이다. 손으로 아기를 잡는 것보다 아기도 자유롭고 엄마도 편하고 훨씬 아기를 위해 안전한 방법이 아기띠인데 어떻게 이렇게 사고가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한국에서 몇 년간 살았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었다. 한국사회는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에는 맞지 않다고.  딱 사기꾼이 사기 치기 좋은 성격이라고. 외국에 오래 살아서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그래서 수시로 나를 세뇌시켰다.

"무조건 세상에는 흑백만 존재한다고 기억해. 교도소 있는 놈은 다 나쁜 놈. 다단계 하는 놈, 중고차 파는 놈은 다 사기꾼.

거기에 그래도 이 사람은 아니겠지, 억울하게 어쩌다 보니 이 상황이겠지 이해를 하다 보면 넌 말려.

그냥 안전하게 널 보호하려면 이 흑백논리만 기억하고 살면 적어도 세상이 널 등쳐먹지는 않아."


물론 혹시나 한국에 지내면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극단적으로 나를 위해 한 말인걸 안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씁쓸했다.


그런데 그건 정답이 아니다. 

관점만 다르게 보면 다른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흑백논리로만 보면 놓치는 보석들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술 마시면=지옥행' 논리처럼 외골수로 살 수도 있다.


얼마 전  딸이 그런다.

이제부터는 친구들의 장점들만 봐주려고 노력한다고. 그러니 사람에 대한 기대는 줄어드는데 마음은 훨씬 더 행복하고 상처도 덜 받는다고.


세상은 흑백만 존재하지 않고 관점과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물론 나 스스로 더 단단하게 내공을 갖추고
나 자신을 먼저 보호하자.  
이제는 흑백으로만 세상을 보지 말고
세상에는 많은 색깔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답고 더 여유롭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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