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의 사치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by 윤슬이오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로 시작하는 소설 '단순한 열정'은 끔찍할 정도로 솔직하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고, 담백한 문체로 독자를 파고든다. 그녀의 단순한 열정은 사랑 앞에서 얼마나 무지해지는지를, 사랑이 얼마나 한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자전적 소설인 '단순한 열정'은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남자를 기다린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맹목적으로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에 대한 단순한 열정은 그녀를 파괴해 나간다.


그녀는 남자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자신의 모든 취향을 남자한테 맞춰가고, 그녀 자신을 잃어간다. 글을 읽는 내내 그녀가 이해되면서도 고통스럽다. 그런 수동적인 사랑에 화도 난다. 사랑은 열정이 아닌 고통이 될 수 있음을 다시 뼈저리게 느낀다.


그녀의 사랑은 사랑일까? 중독일까?

그녀는 왜 자기 파괴적 사랑을 하게 되었을까?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에게 온다 해도 그녀의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았을까?


금기된 사랑의 중독성은 헤로인에 버금간다.

중독되기 전에 놓아야 한다.


나는 풋풋한 첫사랑도, 헤로인에 중독되는 것 같은 지독한 사랑도 해봤다. 나는 이제 전자를 사랑이라고, 후자를 중독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사랑은 나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두 번째 사랑은 나를 고통으로 몰고 갔기에 아무것도 정의할 수 없었다.

너무 사랑해서? 아니 그에게 중독되었던 것 같다. 왜 나는 그에게 중독되었을까? 불안정한 직업에 엄마가 탐탁지 않아 했던 그와의 비밀 연애,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그는 보수적이고 안정됨을 추구한 나에게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움을 선물했다. 나와 생각과 삶의 방식이 전혀 달랐던 그는 나를 빠져들게 만들 수 있었고, 나는 그의 이기적임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늪처럼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그의 사랑은 나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고 나를 잃어가게 만들었다. 그와의 진정한 소통은 빠져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다시 찾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 힘들었던 순간들이 다시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


단순한 열정의 마지막 페이지,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 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단지 그 삶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명품을 사는 사치가 행복이 아닌 것처럼, 단순한 열정의 사치도 행복이 아닐 수 있다.

난 그런 사치가 아닌, 단순한 열정이 아닌, 오래 지속되고 평화로운 감정을 원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더 많이 읽고, 공부하고, 경험해 나갈 것이다.

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나를 드러내고, 나를 찾아간다. ''라는 존재가 고통이 아닌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과 소통하되, 나를 잃지 않는다.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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