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

유토피아 - 토마스 모어

by 윤슬이오

Utopia는 고전 그리스어 '없는'(ou-)와 장소(toppos)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뜻하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게 되었다.

이상적인 사회를 꿈꿔온 나는 토마스 모어가 꿈꾸는 이상적인 나라는 어떤 사회일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다. 최소한 현실 불가능하더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일 것이라는 기대로.


하지만 나는 책을 읽을수록 모어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부조리로 가득한 디스토피아(고통에 찬 어두운 세계)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최대 다수의 행복을 지향하는 유토피아를 설계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 사회는 토마스 모어를 위한 이상향일 뿐 모두의 이상향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각자의 꿈과 개성은 무시된 곳, 또한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현실 불가능 한 유토피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면 어쩜 토마스 모어도 그가 써 내려간 유토피아가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 모어가 독자들에게 진짜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16세기 영국에서 모직물 산업이 발달하면서 양털 값이 폭등하자 지주들이 농민들을 내쫓기 위해 울타리를 쳐서 농경지를 목장으로 바꾸어 버리고, 농민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내몰린 '인클로저 운동'에 대해 모어가 표현한 말이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처럼 실제로 섬뜩한 일들이 벌어진다.

빈곤이 악화되고, 절도가 일어나고 범죄자를 사형시키지만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살인, 강간도 아닌 단순 절도에 사형이라니...


이에 모어는 배고픔에 절도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는 단순한 절도 범죄자들을 사형시키는 형벌의 부조리함 등을 비판한다.


또한 모어가 써 내려간 유토피아는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먹고, 똑같이 6시간 일을 하는 등 공산주의를 생각나게 하는 삶이다. 사람의 진짜 욕망은 배제한. 자유가 없는. 물질을 탐하지 않도록 금과 은은 노예 혹은 범죄자가 사용하게 한다. 심지어 가족 수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까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질의 욕망부터,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 등을 무시하고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어찌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한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도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토마스 모어가 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는 집단 지성을 키우고 끊임없이 토의 토론을 거쳐 더 나은 사회 제도를 만들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완벽한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없다면, 내가 나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내가 나의 행복한 유토피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따뜻한 봄햇살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식사와 차 한잔에서 행복을 느끼고, 내일의 변화된 나를 기대하면서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나의 글을 쓰는 이 시간도 나에게는 행복이다.

모두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곳, 유토피아'는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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