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Human acts) - 한강
제목 "소년이 온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소년’은 이 소설의 주인공 동호를 의미하는 동시에 순수성, 열정,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과거이자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아픈 역사를 마주하고,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 나간다는 작가의 꿈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픔을 간직한 책인 동시에 희망을 품게 되는 책인 것 같다.
‘소년이 온다’의 영문판 제목은 ‘Human acts’이다. 나는 본 제목도 좋지만, ‘인간의 행위’라는 뜻을 가진 이 제목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아마 나를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 다음의 문단 때문일 것이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p95)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아니면 선해지는가? 악해지는가? 끝없이 악으로 치닫는 인간의 행위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왜 그렇게 되는가? 인간 행위에 대한 고찰을 책을 읽는 내내 끝없이 하게 된다.
똑같이 교육받고 훈련받은 군인들 중에 그래도 총구를 사람이 아닌 하늘 위로 겨눈 이들이 있다. 두 인간 부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갖는 인간 본성의 차이인 것일까?
나는 이를 생각하는 자와 생각하지 않는 자,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이유를 고민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으며, 그 인격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짐승과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이나 소중함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생명체들의 소중함은 똑같다. 내가 타인을 혹은 동물들과 같은 생명체에 함부로 해를 끼치는 행동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세상의 이치에 따라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즉, 나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먹이를 잡아먹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내가 남을 해하면 남도 나를 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살만한 세상은 다 같이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도파민 중독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전쟁의 승리에서 오는 쾌감, 권력과 돈에서 오는 쾌감을 위해 살아간다. 도파민 중독의 무력한 노예들인 것이다. 길고 지속되는 행복함이 아닌 단순 쾌락을 쫓아가는 사람들, 그들 때문에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무참히 짓밟는 행위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는 없음을 왜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그럼 우리는 존엄성을 지켜나가고 지켜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독서와 토론 문화로 우리의 전두엽을 발달시키고, 자기중심적이 사고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줄 수 있는 인성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점점 SNS와 숏츠, 게임, 마약 중독 등으로 생각, 즉 사유를 멈춰가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고, 사회적 합의를 함께 이끌어나가면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써본다. 그러다 보면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마지막 장 ‘꽃 핀 쪽으로’에서 소년 동호를 잃은 엄마의 넋두리가 가슴을 후빈다.
‘어쩌끄나, 내가 서른 살에 막둥이 너를 낳았는디,
...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어쩌끄나, 젖을 뗄 적에 너는 손톱이 종이맨이로 얇아질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는디,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고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암것도 아닌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모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지금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 감사하다. 이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소년들과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영혼들이 하늘에서라도 아픔을 잊고 옅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원소들이 어느 별에서 왔듯이, 긴 세월이 지나 언젠가 그들의 살덩어리는 흙이 되어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우리는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꽃이 핀 쪽'으로 '햇빛이 있는' 밝은 세상으로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