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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Sep 25. 2023

제7장. 무임승차는 그만

학교에서 만난 빌런들

조별 과제(組別課題): Group Work 혹은 Team project2명 이상의 학생이 조를 짜서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미국, 유럽 등에서 발달한 팀 프로젝트형 수업방식으로 본래 교육적 목적은 학생 간 토론문화 정착 및 협동학습, 교육 수준 향상으로 학생 스스로 문제해결력을 키우도록 지도하는 프로그램이지요. 그러나 실제 조별 과제를 수행하게 되면, 점수를 잘 받고 싶은 학생만 열심히 참여하게 되고,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은 수동적이거나 때로는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무임승차를 하고 얌체같이 다른 조원들과 동일 점수를 받게 됩니다.   

       

조별 과제의 과정은 보통, 조를 편성하고, 주제 선정, 자료수집 및 분석, 발표 자료 제작, 발표 및 평가입니다.   

        

현군의 깊은 빡침     


이번에 오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큰 주제는 ‘지구를 살리자입니다. 학생들은 4인 1조가 되어 지구를 살리기 위한 소주제를 정하고, 이에 맞는 내용을 정해 PPT 자료를 만들고 한 명 이상의 학생이 발표하는 것입니다. 발표는 1주일 뒤, 이미 과제를 내준 지 1주일 흘렀습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면담을 요청합니다.           


 “그래, 우리 현군, 무슨 일이니?”     


현군은 조원 중 한 명, 마군에 대한 문제점을 얘기합니다. 마군은 성적이 매우 낮은 학생이었고, 조별 모임을 하자고 해도 시간이 없다며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현군은 어차피 마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에서 빼고 싶지만, 선생님이 정해준 조 구성이라 뺄 수도 없고, 마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자신들과 동일 점수를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현군아, 하기 싫어하는 마군에게 참여를 유도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의논하는 것도 조별 과제의 중요한 부분이야. 그런 노력을 해볼 수는 없을까?”          


점수를 잘 받고 싶은 욕심이 많은 현군은 다시 한번 더 전의를 불태웁니다.


“네, 선생님. 마군에게 한 번 더 설득하고 작은 역할이라도 하라고 해볼게요.”          

현군은 그날 방과 후 같은 조원인 마군, 김군, 성군에게 잠시만 의논하자고 합니다.      

“얘들아, 우리 조별 과제, 지금까지 정해진 걸 말해볼게. 자료조사는 나와 김군이 하기로 했고, 발표 자료 PPT 작성은 나랑 성군이 하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누가 할까? 마군 너는 아직 아무것도 안 정했으니까, 네가 하는 게 어때? 혼자 뻘쭘하면 나나 김군이나 성군이 너랑 같이 해주고.”     

마군은 현군의 말을 듣고 있다가 심드렁하게 말합니다.      

“아, 나 귀찮은데. 연습할 시간도 없어. 만날 시간도 없고.”     


현군, 김군, 성군은 마군의 말에 깊은 빡침을 느낍니다. 마군이 방과 후 PC방 가서 게임 하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거든요. 여기에 마군은 더욱 빡치는 말을 합니다.    

  

“야야, 대충 하자. 대충. 나는 점수 못 받아도 돼. 잘 받고 싶으면 너네나 열심히 해.”


현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선생님께 다시 한번 더 찾아갑니다.      


“선생님, 너무 화가 나요. 마군은 기회를 줘도 싫다고 하고, 저희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는 어제도 PC방 가버렸어요.”     


오선생님은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조별 과제에 대해 다시 안내합니다.     


“자, 여러분, 조별 과제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조별 과제 발표 PPT 마지막 장에 각자 역할을 쓰라고 했었죠? 역할이 없으면 ‘없음’이라고 쓰면 됩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가짜로 써줄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 역할도 안 했으면 당연히 점수는 없습니다. 작은 역할이라도 모두 소중합니다. 그런데, 이미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 무임승차를 한다면, 그 사람은 여러분 표현처럼 그야말로 ‘빌런’ 중에 ‘빌런’이 되는 것이겠죠?”  


오선생님은 앞쪽에 앉은 마군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봅니다. 마군은 살짝 찔리는 마음이 들었을까요? 수업이 끝나고 마군은 슬며시 현군에게 다가갑니다.     


“알았어. 언제 모이면 되는데? 자료조사나 PPT는 나한테 어려우니까, 발표는 내가 할게. 어떻게 하는 건지나 좀 알려줘.”     


현군은 마군이 제대로 발표를 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지만, 목소리가 크고 당당한 마군의 평소 모습을 보면 또 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실, 조별 과제를 진행할 때는 부작용이 늘 있습니다.  현군처럼 너무 점수에 연연해서 친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마군처럼 아무 생각 없는 학생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임승차를 하기도 합니다. 현군과 같은 학생은 마군과 같은 무임승차 학생을 혐오하고, 조별 과제를 내준 오선생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말 안 듣는 조원들을 잘 설득하고 협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데, 사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점수에 관심이 없는 학생을 무슨 수로 끌어온단 말입니까.           


박군 조의 안타까움     


게다가 무임승차를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생깁니다. 어제  박군은 몹시 상심한 표정으로 집에 왔습니다. 박군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 거실로 나와 어머니께 속상함을 토로하며 눈물까지 흘립니다.      


“아니, 점수가, 별로 잘하지도 못한 조와 점수가 같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고요. 우리 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선생님이 조원들의 얼굴이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있는 강군의 사진을 톡으로 받아서 그거라도 넣었는데. 어떻게 그걸 감점할 수 있어요?”   


박군의 과학 선생님은 구름의 생성과정에 관한 내용을 UCC로 만들라는 조별 과제를 내줍니다. 조원 구성은 다행히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입니다. 박군은 친한 친구들 김군과 배군에게 같이 하자고 했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김군이 집에 가다가 넘어지더니 그 길로 병원행이 되어버립니다. 간단하게 목발 짚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검사하다가 갑자기 무슨 병이 발견되어 수술한답니다.    

  

결국 김군은 1주일을 결석하게 되고, 박군의 수행평가는 배군과 둘이 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평소에도 친했고, 뜻이 잘 맞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다만, 과학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조원 모두의 얼굴이 UCC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병원에서 휴식하고 있는 김군에게 연락해 김군의 사진 한 장을 얻었지요. 그리고는 UCC 마지막 장면에 셋이 함께 들어간 사진을 편집해서 넣었습니다.     

과학 시간에 다른 조들의 UCC 박군 조의 UCC를 모두 함께 감상했습니다. 박군 조의 UCC가 나오자 반 친구들이 잘했다며 손뼉을 칩니다. 선생님도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박군은 잠시나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공개된 과학 UCC 프로젝트의 최종 점수는 처참했습니다. 박군 조의 점수는 평범해 보였던 다른 조와 점수가 비슷했고, 이것은 박군이 기대한 점수가 절대 아닙니다. 박군은 너무 화가 나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배군과 함께 선생님께 이의 제기를 하고 싶었지만, 하필 배군은 이런 중요한 날 가족 체험학습을 가버렸습니다.    


박군의 어머니는 조용히 아들의 어깨를 토닥입니다.      

“네가 밤새 열심히 준비하는 걸 엄마가 봐서 잘 알지, 네 마음을. 김군이 아파서 같이 못했는데도 배군이랑 잘했는데. 생각했던 점수가 안 나와서 속상했겠다.”     


“네,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런데 선생님께서 정하신 기준이 있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네가 가만히 속상해만 하고 있으라는 뜻은 아니야.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선생님께 여쭤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던 점수보다 너무 낮아서 속상하기도 하고, 왜 그 점수를 받았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그리고, 너희 조의 사정도 말씀드려 보렴. 김군이 아파서 병원 입원을 해서 도저히 같이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조원 얼굴을 사진으로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선생님께서 그 점수라고 하시면 어쩔 수 없이 그건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다음날 박군은 과학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박군과 배군의 점수는 5점이 올랐습니다. 안타깝지만, 참여를 전혀 하지 못한 김군의 점수는 기본 점수로 내려갔습니다. 박군은 생각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처음부터 바로 선생님을 찾아가 의논해 볼걸. 그래도 다행이다. 선생님께서 상황을 잘 이해해주셔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별 과제. 조별 과제를 할 때마다 조원들의 요구 사항이 다르고 그에 따른 참여 정도도 달라서 항상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일을 수행하는 능력도 모두 다르지요. 사실, 모두가 협력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습니다.  

    

조별 과제를 하다 보면 진짜 멋진 품성의 학생도 나타나고, 진정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학생도 있습니다.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배움의 과정이지요. 조원들 각자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맡아서 하고, 다른 조원들을 응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얄밉게 무임승차를 하려는 학생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 못하는 때도 있지만, 그때는 그에 맞는 점수를 받고 책임을 지면 됩니다. 따라서 무임승차를 필터링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팀 프로젝트를 제출할 때 자신의 구체적인 역할을 작성해야 합니다.     


얘들아, 무임승차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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