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헤어짐의 순간에/나와 아버지

오늘, 시로 다가온 청춘

by 해달

49 풀밭


그저 빈터가 너무 신이나

뛰어 보았던 거야

그러나 흥에 겨워

뒹굴어 보았던 거야

결국엔

햇살에 못 이겨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지


코끝을 적셔버린 푸른빛에

움직이는 고 작은 나비며 벌레들도

내 숨이 멈춰버린 줄 알았지


멀리서 그녀가 보아도

그녀에게 무관심한

풀밭으로 여겼을 테지


오래도록 어두워지도록

그리고 이슬이 내리도록 이제

나는 그녀를 벗어나

이곳에서 바람의 간지럼을 즐겼고

그녀, 여전히 무관심한 풀밭

허공만 노려보더라고.




50 헤어짐의 순간에


오랜 시간을 머무르겠습니다

당신 체취가 느껴지지 아니해도

상상 속에서 헤매이며

당신의 그것을 느끼겠습니다

하지만 약속합니다


실제 속에서

당신 체취가 살아 움직이는

그 순간에

나는 떠날 것을 약속합니다


아무런 미련 없이

그저 떠날 것을

당신이 돌아오는 그때에

그저 일어설 것을

다짐하고 말았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내 언어들을

뒤로한 채 그럴지라도

내 옷자락에 전율로 느껴진다 할지라도

서글픔의 메아리만을 남긴 채

그저 떨쳐버릴 것을

그저 그렇게 떠나갈 것을

정해놓고 말았습니다


그대, 그리운 이여

내가 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당신 체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그러니 부디

한순간일지언정 당신이 지금

걸어오기를 나는, 나는 기다립니다

이 가을 속의 고요함

어둠 속에서




51 나와 아버지


나는 일어나 걸어야 하니

나는 새로이 깨어나 이제

저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니

지금 나 이토록 힘에 겨워

끝없는 잠 속으로 헤매이나

내일은 깨어나리라

내일은 새벽을 맞이하리라.


아버지,

아들, 딸 버리고

떠나버린 모질디 모진 그는

마누라도 떠나고

젊은 날 방종하던 그는

이제 홀로 늙어 외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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