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2】 121/498 안회의 사람됨 -호학과 불천노 불이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염옹은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을 할 능력이 있다”라고 하셨다. 중궁(염옹의 자)이 “자상백자는 어떻습니까?”하고 여쭈어보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쓸만한 사람이지만 너무 간략하고 소탈한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중궁이 말하기를, “공경스러운 몸가짐을 가지면서 소탈하게 백성을 대하면 또한 괜찮지 않겠습니까? 소탈한데 너무 소탈하게 백성을 대하면 지나치게 소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옹의 말이 옳다.”라고 하셨다.
子曰雍也는 可使南面이로다 仲弓問子桑伯子한대 子曰可也니 簡이니라
자왈옹야는 가사남면이로다 중궁문자상백자한대 자왈가야니 간이니라
仲弓曰 居敬而行簡하여 以臨其民이면 不亦可乎아 居簡而行簡이면
중궁왈 거경이행간하여 이림기민이면 불역가호아 거간이행간이면
無乃大(太)簡乎잇가 子曰 雍之言 然하다
무내대(태)간호잇가 자왈 옹지언 연하다
옹의 성은 염이고 이름은 옹이다. 중궁은 그의 자이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덕행이 뛰어났다. 공자는 중궁을 중요한 인물이 될 만한 덕(德)이 있다고 칭찬한다. 중궁은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었고 마음이 넓었다. 공자는 중궁의 이러한 덕을 칭찬하자 중궁은 평소에 자신이 존경하는 자상백자에 대하여 스승 공자에게 여쭈어본다. 공자는 자상백자에 대하여 평가를 한다. 자상백자는 성격이 대범하여 포용력도 있었으나 세밀하거나 꼼꼼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나치게 소탈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했다. 중궁과 공자는 자상백자라는 사람이 소탈한 것은 좋은데 지나치게 소탈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고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 지나치게 소탈한 것을 경계한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 너무 큰 것만 보고, 작은 것을 헤아리지 못하면 안 된다. 포용력이 있고 너그러우면서도 자상하게 상대방을 배려해야 진정한 리더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나 윤동주 시인처럼 넓고 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좋다.
한국 분석심리학자인 이부영은 ‘심혼’이라 불리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혼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에서 ‘그림자’ 다음으로 만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인격으로서 무의식에 존재하는 ‘내적 인격’이다. 내적 인격은 자아와 내면세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이며, 나와 무의식의 더 깊은 층을 이어주는 매개자다. 주로 아니마는 ‘남성 속의 여성’, 아니무스는 ‘여성 속의 남성’으로 표현된다. 자아를 페르조나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도 모르게 페르조나와 심혼까지 동일시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이성에게 자신의 심혼을 투사해 강렬한 사랑이나 증오에 빠지게 된다. 상대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관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심혼의 다양성을 통찰하는 작업은 나와 내 자신,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융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이론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 융의 제자였던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엠마 융, 토니 볼프의 이론까지 다룬다. 무엇보다 한국인 피분석자의 꿈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나타난 아니마와 아니무스상을 분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논어』와 『도덕경』 등 동양의 전통 사상에 담긴 여성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통해 동서양 심리학의 가교 역할을 한다.
아니마 : 남성 속에서 여성의 성향을 가지는 것으로 남성이 섬세하고 치밀한 것을 말한다. 을지문덕, 이순신, 윤동주
아니무스 : 여성이 남성의 성향을 가지는 것으로 여성이 씩씩하고 용감한 것을 말한다.
애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안회라는 제자가 있어서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안회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죽었습니다. 그 뒤로는 안회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셨다.
哀公이 問弟子孰爲好學이닛가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하여 不遷怒하며
애공이 문제자숙위호학이닛가 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하여 불천노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하니 未聞好學者也니이다
불이과하더니 불행단명사의라 금야즉망하니 미문호학자야케라
안회는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다. 인품도 좋았고 행동도 반듯했다. 늘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감정조절을 잘하여 화나는 것을 남에게 옮기지 않았다. 누구나 화를 낼 권리는 있지만 남에게 화를 옮기거나 모욕을 줄 권리는 없다. 화를 옮기는 것은 나와 남에게 독약을 뿌리는 것과 같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며 선을 지키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자기 가치관과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다. 또한 타인을 잘 배려하는 성품이고 건강한 자아를 가진 훌륭한 사람이다. 그리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정도로 성찰적 자아가 대단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반복하기도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현명하다. 실수를 반복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실력이 된다. 안회는 두 번 실수를 않기 위해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 사람이다.
하지만 안회가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은 아쉽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인품도 훌륭했던 안회!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 우리 곁을 빨리 떠나는 것은 늘 아쉽고 안타깝다.
심리 치료 전문가인 저자는 개인의 감정 조절을 이야기한다. 물론 감정 조절을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정신적 의지 이전에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일제 강점, 6 25 전쟁, 군부 독재 등을 거치며 개인과 국가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끊이지 않았고, 각 개인이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분투한 결과가 다시 다른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며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이렇듯 불안정한 사회는 감정 조절에 취약한 개인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고, 개인이 소화하지 못한 역사적/집단적 트라우마와 사회적 불안은 끊임없이 대물림되며 우리 사회를 더더욱 인간답게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는 현재 우리가 보다시피 많은 우울증 환자와 높은 자살률, 각종 묻지 마 범죄와 안전사고, 끊임없는 인권 문제며 계급 갈등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건강한 개인과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면, 결국 우리는 ‘감정 조절’과 ‘안전’이라는 두 가지 화두에 주목해야만 한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감정 조절에 취약한 개인을 만들어 왔듯이, 반대로 감정 조절 능력을 갖춘 건강한 개인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개개인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그 속에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며 감정 조절을 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 준다.
(예의를 잘 아는) 자화(공서화)가 공자의 명령으로 제나라에 심부름하러 갔다. 공자의 재정을 담당했던 염자(염구)가 (홀로 남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하여 곡식 주기를 청하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한 부(6말 4되)를 주라”하니 자화가 더 청하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한 유(16말)를 주라.”하시니 염자가 곡식을 다섯 병(16섬)을 주었더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적(공서화)이 제나라에 갈 때 말을 타고 가벼운 갓옷을 입었으니 내가 듣기에는 군자는 부족한 이를 도와주고 궁핍한 이를 도와주지만 부유한 이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원사(원헌)가 공자의 가신으로 일할 때 곡식 구백 말을 주시니 공자 말씀하시기를, “사양하지 말라, (남으면) 너의 이웃과 마을에 나눠줘라.”라고 하셨다.
子華使於齊어늘 冉子爲其母請粟한대 子曰與之釜하라 請益한대 曰與之
자화시어제어늘 염자위기모청속한대 자왈여지부하라 청익한대 왈여지
庾하라 冉子與之粟五秉한대子曰 赤之適齊也에 乘肥馬하며 衣輕裘하니
유하라 염자여지속오병한대자왈 적지적제야에 승비마하며 의경구하니
吾聞之也호니 君子는 周急이요 不繼富라하니라 原思爲之宰라 與之粟
오문지야호니 군자는 주급이요 불계부라하니라 원사위지재라 여지속
九百한대 辭어늘 子曰毋하여 以與爾鄰里鄕黨乎인저
구백한대 사어늘 자왈무하여 이여이인리향당호인저
자하의 성은 공이고 이름은 서적이다. 공자의 제자이다. 집안의 형편이 좋았고 예법에도 밝았다. 공서적이 공자의 심부름을 하러 갔다. 스승의 심부름하러 가는 것은 제자의 도리이다. 하지만 그가 없는 사이에 제자의 부모님을 헤아리는 것은 공자의 도리이다. 공자는 공서적의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공서적의 어머니에게 곡식을 많이 주지 않았다. 공자의 재정을 담당했던 염구가 조금 더 주자고 건의하자 공자는 조금 더 주었다.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고 궁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유한 이를 보태주지 않는 것도 타당하다. 오늘날에도 선별적 복지, 보편적 복지라는 말을 하는데 가난한 사람을 더 도와주고 넉넉한 사람은 덜 도와주는 것이 이치에 맞다.
원사는 사적인 심부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재정을 담당하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급료를 넉넉하게 지급했다. 급료를 주는 사람은 정당한 원칙에 따라 주어야 하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사용하는 것은 자유이다.
돈을 주고받고 하는 것도 상식에 맞고 도리에 맞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끼리라도 돈거래는 분명하게 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끼리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 가까운 사람이 기쁘면 먼 사람도 기쁘다.
이 책은 물질주의 행복론에 경도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또한 소확행, 마음챙김, 힐링, 워라밸, 욜로 등 가짜 행복론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저자는 개인의 행복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보다는 사회제도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여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실직자 생계지원, 재취업 국가지원, 기본소득 등을 보장하는 사회보장 제도를 갖추어야 진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생존을 국가가 책임지는 평등한 사회 구조가 마련되어야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