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5】 172/498 성인, 군자, 선인, 항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인(聖人)을 내가 직접 만날 수 없으면 군자라도 만난다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착한 사람을 내가 만나지 못하면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며, 비었으면서 가득한 척하며, 곤궁하면서 부유한 척하면,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라고 하셨다.
子曰 聖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君子者면 斯可矣니라
자왈 성인을 오부득이견지의어든 득견군자자면 사가의니라
子曰 善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有恒者면 斯可矣니라
자왈 선인을 오부득이견지의어든 득견유항자면 사가의니라
亡(無)而爲有하며 虛而爲盈하며 約而爲泰면 難乎有恒矣니라
망(무)이위유하며 허이위영하며 약이위태면 난호유항의니라
성인, 군자, 착한 사람, 한결같은 사람 모두 훌륭한 사람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학문과 덕성으로는 성인이 으뜸이고 군자가 버금이다. 사람의 품성으로 보면 착한 사람이 으뜸이고 한결같은 사람이 버금이다. 으뜸으로 사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버금이라도 살아가면 행복하다.
행복이란 마음이 평온한 상태이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는 불안한 마음이 없는 상태다. 떳떳하고 당당하며 초조하거나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척’ 하지 않아야 한다. 잘난 척, 있는 척, 부유한 척하는 마음이 없어야 당당하다. 남은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 없고, 언젠가는 드러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그대로 당당하면 된다. 성인이나 군자, 착한 사람, 한결같은 사람은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이 네 부류의 사람은 자신에게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다.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자.
이 책에서 필자는 평온의 핵심을 ‘나를 위한 삶’이라고 한다. 남들의 눈치를 보고 남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치고, 남들 하는 대로 다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많이 갖지 못하거나 누리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남들을 의식하는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고 한다. 자기 내면을 인식하고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을 헤아린 다음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여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항상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면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고 조금은 평온할 것이다.
공자께서 물고기를 낚시로는 잡지만 그물질은 하지 않았으며, 주살로 새를 잡기는 하지만 잠자는 새는 잡지 않으셨다.
子는 釣而不綱하시며 弋不射宿이러시다
자는 조이불강하시며 익불석숙이러시다
찰스 패터슨 『동물홀로코스트』 에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인권의 척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뭇 생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사람에게도 이어져야 한다. 천지 사이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지만 뭇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뭇 생명도 사랑하는 것이 어진 마음이다. 먹고살기 위해 낚시하는 것은 괜찮으나 취미로 재미 삼아 생명을 죽이거나 필요 이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상업 어업이나 목축업으로 생명을 앗은 것은 업보를 쌓는 것이다. 생명을 많이 죽이면 결국에는 나 아니면 우리의 자녀나 후손이 피해를 본다. 상업 어업의 문제점과 지구환경문제를 다른 씨스피라시나 목축업의 문제를 다룬 카우스피라시를 꼭 한 번 보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잠자는 새는 알을 품거나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을 수 있다. 새끼를 죽이는 것은 다음 세대를 멸절시키는 것이다. 어린이를 먼저 보호하는 것은 어린이가 미래이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새라도 잠자는 생명을 빼앗는 것은 새의 미래를 짓밟는 것이고 죄를 짓는 것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인(仁)의 실천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어진 마음이다. 에코페미니즘, 생태주의 등도 어진 마음이다. 반려 식물, 반려 동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자기 집에 있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진 마음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이 모든 생명이 사라진 『침묵의 봄』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어내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한 적이 없다. 많이 듣고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여 따르고, 많이 보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 깨닫는 사람이니, 지혜로운 것에 버금가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蓋有不知而作之者나 我無是也로라 多聞하여 擇其善者而從之하며
자왈개유부지이작지자나 아무시야로라 다문하여 택기선자이종지하며
多見而識之하니 知之次也니라
다견이지지하니 지지차야니라
【해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천재(天才)고, 조금만 배워도 잘 아는 사람은 수재(秀才)고 열심히 노력해서 깨닫는 사람은 인재(人才)다. 천재는 거의 없고 수재는 드물고, 열심히 노력해서 잘하는 사람은 인재 또는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인재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인재는 많이 듣고 많이 보고 지혜를 깨닫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못한다.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아야 한다. 현상이나 사실이 본질이나 진실은 아니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현상 이면에 있는 본질을 볼 수 있고, 사실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진실을 보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다. 진실이나 진리를 규명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진실과 진리를 규명하지 않고 선택한 것은 항상 후회하게 된다. 사고인지 사건인지도 진실을 규명해야 그다음 일을 선택할 수 있다. 과거사를 올바르게 밝히는 것도 첫째 임무가 진실규명이다. 세월도 사건도 진실규명을 그래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진실을 알아야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여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잘못한 사람을 찾아 처벌을 할 수 있다. 진실이 묻히면 원인 파악도 안 되고 엉뚱한 사람만 처벌하여 진짜 범인을 놓칠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그것은 진실이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과 추론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먼저 해야 할 것은 사실을 확인하는 사실 확인을 하고, 그다음은 진실규명이다. 여러 정보를 취합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을 골라 제대로 알고 그다음에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공자님의 말씀은 정보화 시대에 갖추어야 할 미디어 리터러시와 가깝다.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