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9】 193/498 백성도 가르쳐야 한다.
증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야 한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무겁고 앞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니 소중하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이 또한 앞길이 멀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니 任重而道遠이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증자왈 사불가이불홍의니 임중이도원이라 인이위기임이니 불역중호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사이후이니 불역원호아
‘죽을 때까지!’라는 말은 가볍게 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무거운 말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한 번 결심한 것을 평생 실천하고 살아가겠다는 한결같은 마음이 멋지다. 어진 것을 실천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평생 실천하는 것이 멋있는 것이다.
주변에도 어진 마음으로 따뜻한 품격을 갖춘 사람을 보면 선비답다는 생각이 든다.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분이 어른이다. 어른 다운 사람이 선비이다. 광복 지사 심산 김창숙 선생,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그리운 날이 있다. 돌아가실 때까지 바른 삶을 몸소 실천하여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았으며 돌아가시니 슬픔과 명복을 빌고 빌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에서 정서를 (풍부하게 하여) 일으키고, 예의를 배워 자기 뜻을 바로 세우고, 음악을 배워 품격을 갖춰 인생을 완성한다”라고 하셨다.
子曰 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
자왈 흥어시하며 입어례하며 성어악이니라
정서적으로 풍부한 사람, 매너로 자신을 잘 가다듬은 사람, 음악적 감성도 풍부한 사람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완벽한 사람이다. 정서적으로 풍부한 사람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일단 호감이 가는 사람은 신뢰감을 준다. 그리고 품격 있고 절제하는 예의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은 더더욱 정이 간다. 뒷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문을 잡아주는 사람, 남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사람이 좋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여유를 갖는 것도 정서에 도움이 된다. 시, 예, 악은 사람을 더 넉넉하고 너그럽게 하며 어른 다운 성숙한 삶을 살게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은 따르게는 할 수 있지만 모든 백성마다 원리를 알게 할 수는 없다.”라고 하셨다.
子曰民可使由之어니와 不可使知之니라
자왈민가사유지어니와 불가사지지니라
이 구절은 짧은 글이지만 해석이 쉽지 않다. 공자님의 큰 뜻을 헤아리고 문맥의 의미를 보는 것과 그냥 문맥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먼저, 이 구절을 문맥대로 보면 알게 하는 것과 깨닫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알게 하려는 설명하여 이해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깨닫는 것은 본인이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백성에게 원리를 알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은 청동기 시대에는 그렇지만 정보화 문명 시대에는 알게 하기는 쉽다. 다만 깨닫게 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그래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으로 비유하여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다음으로 공자의 뜻과 사상을 고려하여 헤아려 보면 해석은 다르다. 이러한 해석은 이재호 선생의 『논의정의』를 참고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子曰民可使는由之요 不可使는 知之니라
자왈민가사는유지요 불가사는 지지니라
『논의정의』 해석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에게 지시하여 사람을 부릴 만한 일은 지령을 따르게 하고 지시하여 부릴 수 없으면 가르쳐서 알도록 해야 한다.
이재호 선생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 이재호 선생은 이에 대한 해석 근거로 헌문편 14-44에서 ”“위에서 예절을 좋아하면 백성들을 지시하여 일을 부리기 쉽다.”라는 것과 자로편13-9에서 “많은 백성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든 후에는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한 것과 자로편 13-29에서 “착한 사람이 백성을 가르친 지 칠 년이면 또한 전쟁터에도 나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구절, 자로편13-30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고 싸우게 하면 이것은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한 구절을 근거로 제시하여 볼 때 백성을 가르쳐서 알게 한 후 따르게 한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지시만 하거나 일을 부린다면 백성을 근본으로 여기는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공자님의 교육철학과 정치이념으로 보아도 백성을 가르쳐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 백성은 몰라도 좋으니 잘 따라만 오게 한다면 우매한 군중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한글을 만들어 가르치려고 한 것도 백성들이 제 뜻을 잘 펴서 위정자에게 부림만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맹자가 말한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맹자의 민본주의 근원은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던 공자의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