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247/498 사람이 먼저다.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면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나가시면 그다음에 나가셨다. 마을 사람들이 나례 굿을 하면 조복을 입으시고 동쪽 섬돌에 서 계셨다.
鄕人飮酒에 杖者出커시든 斯出矣러시다 鄕人儺어든 朝服而立於阼階러향인음주에 장자출커시든 사출의러시다 향인나어든 조복이립어조계러시다
시다
마음에서 향음주례를 할 때 노인을 공경하고 나례 굿은 역귀(疫鬼)를 물리치는 행사이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조복을 입고 참여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다른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으실 때는 두 번 절하고 보내셨다.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약을 보내오니 절하고 받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약의 성분을 아직 잘 몰라 감히 약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問人於他邦하실새 再拜而送之러시다 康子饋藥이어늘 拜而受之曰 丘
문인어타방하실새 재배이송지러시다 강자궤약이어늘 배이수지왈 구
未達이라 不敢嘗이라하시다
미달이라 불감상이라하시다
외국에 사람을 보내 문안을 할 때는 사자에게 존중의 의미를 담아 두 번 절을 한다. 이렇게 존중받은 사자는 더 신경 써서 일할 것이다.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잘한 예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심리를 잘 헤아려 보면 고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약을 받았을 때 보내준 사람에게 예의를 최대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약인지 모를 때는 먹어보고 인사해도 된다.
“丘 未達이라 不敢嘗”이라느 구절을 해석하는 것이 어렵다. 양 성분을 몰라서 알고 난 뒤 예의를 표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고, 약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먹을 수 없다고 거절할 수 있다.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나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다쳤느냐?”라고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廐焚이어늘 子退朝曰 傷人乎아 不問馬러시다
구분이어늘 자퇴조왈 상인호아 불문마러시다
이 구절의 문맥의 의미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동물보호론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 당시 전국시대에는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집안에 불이 났는데 사람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이 구절은 왜 말을 챙기지 않았느냐 비판하기보다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말을 한 것이라는 정도 이해하면 된다. 공자의 본뜻을 헤아리기 위해 굳이 문장이나 어휘를 바꾸어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구절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고, 서로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명나라 왕양명의 해석인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 왕양명은 공자님 같은 성인이 사람만 챙기고 동물은 전혀 돌보지 않았을 리 없다며 “傷人乎不問馬”를 “傷人乎否 然後及于馬”로 해석했다. 부(不)를 부(否)로 해석하여 “사람은 다치지 않았는가 물은 연후에 말을 물었다.”라고 하여 성인의 의도를 잘 헤아려 해석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유교 경전을 이해할 때, 주희(朱熹, 1130~1200)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을 사문난적이라 했다. 성리학적 명분론을 내세워 자신과 다른 당파의 사람을 공격하던 암울한 시대였다. 학문의 발전은 새로운 해석을 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닫힌 마음으로 비판을 허용하지 않던 시대에는 이러한 문장 해석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고 교조주의, 권위주의에 빠져 유학은 제자리를 잃어갔다. 유학(儒學)의 본질인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유(儒)는 사람(人)과 쓸모 있는 필수(需) 요소를 말한다.
경전 해석은 문서 자체를 중시하는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맥락을 중시하는 콘텍스트는 더 중요하다. 그리고 당대의 시대정신과 현실에 맞는 재해석을 하여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중시한 청동기 시대에 왕조 중심의 세계에 인식이 머물면 의미가 없다. 수평적 질서와 민주주의, 인공지능 정보화 시대에 맞는 해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