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 287/498 사랑하면 상대방을 살리고자 한다.
자장이 덕을 높이고 미혹됨을 분별하는 방법을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최선을 다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살리고자 하고, 미워하면 상대방을 죽이고자 한다. 이미 살기를 바라면서 미워하면 이것이 바로 미혹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실로 부자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특이한 상황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張이 問崇德辨惑한대 子曰 主忠信하고 徙義가 崇德也니라 愛之란
자장이 문숭덕변혹한대 자왈 주충신하고 사의가 숭덕야니라 애지란
欲其生하고 惡之란 欲其死하나니 旣欲其生이요 又欲其死면 是惑也니라
욕기생하고 오지란 욕기사하나니 기욕기생이요 우욕기사면 시혹야니라
誠不以富라 亦祇以異니라
성불이부라 역지이이니라
덕을 높이고 미혹되는 것을 분별하는 방법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배우고 정직한 마음으로 믿음을 확장해야 한다.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정의를 실천하는 용기를 가지면 덕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면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죽기를 바란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진실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더 좋게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대방을 살리는 길이다. 미워하면 죽기를 바라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악행을 한다. 이 둘은 행위의 동기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혹되는 것이 없다.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대방이 살기를 바라면서 미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등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행위가 모순된 행위이다. 자기 가족을 다른 사람에게 험담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언론도 국가와 국민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부가 망하길 바라는 기사를 쓰는 경우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나라가 기자가 일본 편에 서서 기사를 쓰거나 미국 편에 서서 우리나라를 욕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잘되길 바란다면서 미워하는 행위이다.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문제가 나오면 일본 편을 들고 우리 정부를 욕하는 언론이 있다. 미국의 국방비 분담 문제를 미국 편에서 서서 우리 정부를 욕하는 언론이 있다. 언론이 정말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면 본질적인 문제를 보도하고 중요한 것을 먼저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상회담을 했다면 의제와 국가에 미칠 영향을 상세하게 해설해주어야 하는데 의상이 어떻고 의전이 어떻고 하면서 불필요한 내용으로 국민을 호도한다.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면서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언론의 작태를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지. 언론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제경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며,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며,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어찌 먹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齊景公이 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니이다 公曰善哉라
제경공이 문정어공자한대 공자대왈 군군신신부부자자니이다 공왈선재라
信如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면 雖有粟인들 吾得
신여군불군하며 신불신하며 부불부하며 자부자면 수유속인들 오득
而食諸아
이식저아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 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장이다. 정명(正名) 이름에 맞도록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름이란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에 맞도록 바르게 해야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즉 ‘답다’는 의미는 가장 잘 부합한다는 의미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제 위치와 역할에 맞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생긴다. 인류 최고의 문제는 ‘답지’ 못해서 비롯되는 것이다. 공자는 인간의 불완전한 존재를 인식하고 있고 불완전한 존재는 항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제 위치에 역할에 맞는 행동을 ‘답게’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말의 ‘답다’는 접미사로 쓰이는 데 마땅히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말한다. 즉, 가장 이상(理想)적인 상태를 말한다. ‘나라답다’ ‘임금답다’, ‘신하답다’, 아버지답다, 자식답다, 사람답다, 어른답다, 아이답다, 아름답다. 등 ‘답다’는 가장 이상적인 바람직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이상을 이데아라고 한다. 그래서 공자의 정명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같다고 한다. 플라톤도 4가지 주된 덕을 말하면서 사람은 지혜, 용기, 절제 등이 잘 조화를 이룬 상태가 정의라고 했다. 즉 사람의 머리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가슴에는 용기를 지녀야 하고 배는 절제를 해야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했다. 제 위치와 역할에 딱 맞으면 최고의 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답게’ ‘답다’는 동서양의 공통적인 소중한 가치이고 가장 좋은 덕목으로 여겼다. 하지만 답게를 수직적 질서와 상하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약간 변질된 부분도 있다. 지나치게 ‘분수’를 강조하거나 ‘계층의 고착’ 등으로 악용하여 생각이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는 것은 ‘답게’의 본래 뜻과 맞지도 않고 곤충의 먹이에 관한 이야기이지 사람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쪽 말만 듣고 송사를 판결할 사람은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자신이 승낙하는 것을 잠재워 지체하는 일이 없다.”라고 하셨다.
子曰片言에 可以折獄者는 其由也與인저 子路無宿諾이러라
자왈편언에 가이절옥자는 기유야여인저 자로무숙낙이러라
자로는 성격이 급하고 신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를 깨우치기 위해 이러한 말을 했다. 서로 대립하는 의견이 있을 때는 양쪽의 말을 듣고 적절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쪽 말만 듣고 일방적 견해를 전체의 견해로 판단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기고 원망을 산다. 소송과 관련된 것을 판단할 때 항상 검사와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 듣고 판단해야 한다. 검사는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아야 하고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변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쪽의 말을 다 들어 보고 판사가 판단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양쪽 말을 다 듣고 양시양비론에 빠지면 안 된다. 물론 정말 똑같이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잘못의 원인이나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 양시양비론을 펴면 양쪽 모두 억울하여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조선 선조 때 심의겸과 김효원이 싸울 때 이이가 양시양비론을 펴지 않았다면 붕당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자 심의겸이 비판을 했다. 심의겸이 김효원을 비판한 근거는 윤원형의 집에서 문객으로 있었기 때문에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심의겸의 비판은 공정한 근거가 아니다. 사람의 능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사사로운 감정으로 판단을 한 것이다. 이를 본 이이는 두 사람 모두 잘못이라 하여 김효원을 삼척부사로 보내고 심의겸을 개성류수로 보냈다. 그 이후 김효원은 한양의 동쪽인 동촌 연지동에 살았기 때문에 김효원을 따르는 이들을 ‘동인(東人)’이라 했고, 심의겸이 한양의 서쪽인 서촌 정동에 살았기 때문에 심의겸을 따르는 이들을 ‘서인(西人)’이라 했다. 그 이후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나누어졌고 서인인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져 붕당정치의 폐단을 후대에 남겼다. 양시양비론은 흔히 기회주의라 한다. 양쪽 모두에게 욕먹지 않으려는 것인데 판결은 항상 공사를 구분하여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