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4】14/498호학 【01-15】 15/498절차탁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먹는 것을 배불리 먹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를 꼭 편안한 것을 바라지 않으며, 일하는데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여 도덕이 높은 사람에게 나아가 자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는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요 就有道
자왈 군자는 식무구포하며 거무구안하며 민어사이신어언이요 취유도
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라
이정언이면 가위호학야이라
군자는 배우는 기쁨과 아는 것을 나누는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군자는 본능보다 본성에 충실한 사람이다. 쾌락에 충실한 것이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요즘은 먹고, 입고,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시대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다. 오늘날 먹는 방송과 요리 방송이 넘쳐나고 끊임없이 먹는 본능을 자극한다. 본능에 집착하면 본질을 놓친다. 먹고 마시고 편안하고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본능에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만족하며 공동체를 위하며 본성을 추구하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군자이다.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먹고, 너무 편안하려고만 하지 말고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현대인은 존재보다 소유에 집착한다. 필요 이상 가지려 하거나 필요 이상 먹는 것은 심리적 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허전하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고픈 심리적 허기.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고 늘 미래에 대해 불안하기 때문에 소유에 집착한다. 명품을 가져도 심리적으로 충족되지 않고 좋은 차를 타더라도 심리적으로 허전한 것은 마음이 허허롭기 때문이다. 배부름과 편안함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평온하고 온화한 것이 더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배려하고 나누어 주는 마음. 맑기 향기로운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행복하다.
생각과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민첩하게 실수가 적고 신뢰를 받는다. 말이란 꼭 필요할 때 해야 하고 행동은 빠릿빠릿하게 해야 한다. 사람으로서 바른 도리를 다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해야 낡지 않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어도 생각이나 마음은 낡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 먹는 방송이 넘쳐나고 맛집 찾아 줄을 서는 것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자.
다큐멘터리 ‘씨스프라시’, ‘카우스피라시’ 등을 보면서 생선을 먹는 것과 육식을 먹는 것을 자제하고 냉장고에 음식 재료를 줄이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씨스프라시는 상업 어업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고, 카우스피라시는 육식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우리 식습관이 지구 자원을 파괴할 수 있다. 먹는 방송과 맛집에 관한 생각과 식습관, 생활 습관을 바꾸자. 이제 자연을 생각하면서 공생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 사람과 사람의 공생을 생각하는 ‘호모심비우스’가 되어야 한다. 더 성숙한 사람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보호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공존의 의미이고 대동의 가치이다.
현대 심리학으로 본 논어 읽기인데 ‘욕망’을 다스려 군자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논어를 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주제별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논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자공이 여쭙기를, “가난해도 부자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해도 가난한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정도는 괜찮지만 가난해도 삶을 즐기고, 부유해도 예의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했다. 자공이 여쭙기를, “ ‘『시경』에 이르되 칼로 자른 듯이 하고 줄로 쓸 듯이 하고 정으로 쪼은 듯이 하고 쇠로 갈아 다듬듯 한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말로 비로소 시를 함께 말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일을 말하면 닥쳐오는 일도 아는구나!”라고 하셨다.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
자공왈 빈이무첨하며 부이무교면 하여하나잇고 자왈 가야나 미약빈이
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라하니 其斯락하며 부이호례자야니라 자공왈 시운 여절여차여탁여마라하니 기사
之謂與인저 子曰 賜也 始可與 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지위여인저 자왈 사야 시가여 언시이의로다 고저왕이지래자온여
논어에는 말에 관한 이야기, 말을 잘하는 방법을 많이 서술하고 있다. 말을 하면서 배우고 가르치며, 말을 하면서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논어는 말공부의 지침이 될만한 것이 아주 많다. 말을 할 때 비교를 하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하나를 깎아내리고 하나를 추켜세우는 ‘~보다 ~가 좋다’는 비교 화법은 듣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다. ‘~도 좋지만 ~는 더 좋다.’는 화법을 쓰면 비교하지 않고 훨씬 더 나은 방향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비교에 머물지 않고 더 노력하여 최고 최상을 추구할 수 있다.
‘논어’가 왜 논어인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논어(論語)는 말을 논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화법을 구사하는 공자님의 참모습이 잘 드러난다. 가난하면서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가난하면 쪼들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비굴하거나 아첨하기 쉽다. 가난하더라도 삶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긍정적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떳떳하게 살았다면 그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비난해서는 안 된다. 떳떳한 삶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된 사회이다. 우리 사회에는 부끄러운 부자도 많다. 떳떳하지 않게 부를 형성하고 갑질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질과 부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며 남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남을 무시하거나 깔보기 쉽다. 부유한 사람들의 갑질 횡포에 많은 사람이 상처 받는 예가 많다. 신분이나 직위, 직급 등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언행이나 폭행 등을 말한다. 이러한 갑질은 우리 사회에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부자에 대한 동경과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졸부 근성과 속물주의는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는 타인의 인격을 짓밟고 갑질의 형태로 드러난다.
자공은 가난했지만, 재테크를 잘해서 여유가 생겼다. 그렇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교만해지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것도 시경의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인용하여 더 갈고닦아 증진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기특한 제자에게 시를 함께 논할 수 있겠다는 극찬을 했다. 잘하는 제자가 더 열심히 해서 더욱 잘하도록 하겠다는 겸손한 태도를 공자는 칭찬하여 더욱 제자를 높은 경지로 이끌어 주고 있다. 부끄러운 부자와 떳떳한 빈자를 잘 헤아려보는 것을 제자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나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남의 인격과 재능을 알지 못할까 걱정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요 患不知人也니라
자왈 불환인지불기지요 환부지인야니라
한결같이 살아가는 일관성 있는 삶은 안정감을 준다. 학이편 첫 장에서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 하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로 시작하여 마지막 장에서 군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기보다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할까를 두려워한다는 구절로 마무리하고 있다. 처음과 끝이 서로 연관이 있는 수미상관이다. 이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강조하여 말하기 위한 것이다.
남을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 취미를 조금 안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속마음 깊을 곳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남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그 사람을 정말 아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올린다. 자기만족과 마케팅의 목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활동한다. ‘인플루언서(유명인)’나 ‘핵인싸(많은 영향력을 끼는 사람)’가 되려는 사람이 많다.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제대로 알아주는 것도 더 중요하다.
이 장의 처음은 학이시습이고 뒷부분은 절차탁마, 마지막은 남을 알기 위한 공부이다. 공부의 즐거움은 끝이 없다. 때때로 익히고 갈고닦으며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과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이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