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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논어읽기 148]

【16-13】 432/498 공자가 아들에게 중시한 것

by 백승호

【16-13】 432/498 공자가 아들에게 중시한 것

진항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묻기를, “그대는 아버지에게 남과 다른 특별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특별한 것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일찍이 아버지께서 혼자 계실 때 제가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고 있는데 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웠느냐’. 고 하시니 제가 답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니 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할 수 없다.’라고 하시기에 저는 물러가서 시를 배웠습니다. 다른 날에 또 혼자 서 계시기에 제가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를 배웠느냐.’고 하셔서 대답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니 말씀하시기를,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다.’라고 하셔서 저는 물러가서 예를 배웠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들었을 뿐입니다.”라고 하니 진항이 물러가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하나를 물어서 세 가지를 들었으니 시에 관해 듣고 예에 관해 들었으며 또 군자가 그 아들을 총애(특별히 아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노라.”라고 하셨다.


陳亢 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아 對曰 未也로라 嘗獨立이어늘 鯉趨而

진항 문어백어왈 자역유이문호아 대왈 미야로라 상독립이어늘 리추이

過庭이러니 曰 學詩乎아 對曰 未也로이다 不學詩면 無以言이라하여늘

과정이러니 왈 학시호아 대왈 미야로이다 불학시면 무이언이라하여늘

鯉退而學詩하고 他日 又獨立이어늘 鯉趨而過庭이러니 曰 學禮乎아 對

리퇴이학시하고 타일 우독립이어늘 리추이과정이러니 왈 학례호아 대

曰 未也로이다 不學禮면 無以立이라하여늘 鯉退而學禮호라 聞斯二者

왈 미야로이다 불학례면 무이립이라하여늘 이퇴이학례호라 문사이자

로라 陳亢退而喜曰問一得三하니 聞詩聞禮요 又聞君子之遠其子也

로라 진항퇴이희왈문일득삼하니 문시문례요 우문군자지원기자야라


【해설】

공자께서는 시 삼백 수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사무사思無邪)’라고 말했다. 시를 읽으면 아름다운 마음이 생기고 아름다운 마음이 생기면 거칠고 사나운 마음, 더럽고 나쁜 마음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공자는 아들에게 시를 읽게 했다.

시는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하게 한다. 감정표현이 풍부할수록 여유롭고 행복하다. 시경의 시도 우리의 감정을 잘 표현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도 짧은 시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나태주 「풀꽃」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구절은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고은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도 마찬가지다. 시는 우리 마음에 켠 따뜻한 등불 같다. 함민복의 「가을」에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는 구절도 따듯하고 예쁜 마음이 느껴진다.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마음 표현을 배우는데 시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상대방에게 건네면 때로는 그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

예의는 사람의 품격을 빛나게 한다. 예의는 나무처럼 사람과 사람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위하며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게 한다. 나무가 부딪쳐 서로 상처를 주면 함께 살아갈 수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인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예(禮)이다.

공자는 아들을 아주 많이 아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표현하지 않았다. 시를 공부하게 하고 예를 공부하게 하여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요즘 부모 중에 일부는 자식한테 “알아서 해라”는 말을 한다. 자율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 말은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말이다. 스물이 넘고 자기 판단을 할 수 있어도 부모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알아서 하라는 것은 아이를 어둠으로 내모는 것이다. 자립성도 어느 정도 걸어갈 수 있고 뛰기도 할 때 길러주어야 한다. 무턱대고 알아서 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선택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다.



【16-14】 433/498 호칭은 맞게 해야!

나라 임금의 아내를 임금이 일컬어 말하기를, “부인이라.”하고, 부인이 스스로 일컬어 말하기를, “소동”이라고 하며, 나라 사람이 일컬어 말하기를 “군부인”이라 하고 나라 사람에게 말할 때는 “과소군”이라 하고 다른 나라 사람이 일컬어 또한 말하기를 “군부인”이라고 한다.

邦君之妻 君稱之曰夫人이요 夫人自稱曰小童이요 邦人稱之曰君夫人이

방군지처 군칭지왈부인이요 부인자칭왈소동이요 방인칭지왈군부인이

요 稱諸異邦曰寡小君이요 異邦人 稱之亦曰君夫人이라

요 칭저이방왈과소군이요 이방인 칭지역왈군부인이라


【해설】

이 글은 당시의 호칭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호칭이란 그 사회의 문화적 거울이다. 사람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반영이다. 수직적 사회 구조 속에서 호칭은 경어체를 사용하여 상하관계를 분명하게 했다. 하지만 수평적 사회 구조 속에서는 상·하의 질서보다 공동체의 어울림을 더 중시한다. 함께 어울려 서로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호칭이 좋은 호칭이다. 하지만 지나친 호칭을 남발하는 것은 그 가치를 더 떨어뜨린다. 사장, 회장, 대표가 흔하고 선생도 너무 흔하다. 이모 삼촌은 너무 많다. 제 이름값에 맞게 불러야 ‘답게’ 되는데 호칭도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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