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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Feb 27. 2024

[왜 37. 영화 '파묘'는 왜 살풀이인가?]

"젖은 나무는 쇠보다 강하다"

영화 파묘는 왜 살풀이인가?      

영화 ‘파묘’는 살풀이다. 

‘살’이란 사람의 목숨을 해치거나 

남을 해롭게 하는 독하고 모진 기운을 말한다. 

‘살’ 풀이는 무당이 굿을 하여 이러한 못된 기운을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하늘을 중시했고

하느님을 받들며 살았다. 

그리고 무속신앙에 하느님의 심부름을 맡은 사람을 ‘서낭’이라 했고

서낭을 모신 곳을 ‘서낭당’이라 했으며 

‘당나무’는 서낭과 하늘을 이어주는 사다리 노릇을 했다. 

서낭당과 당나무가 있는 산을 ‘당산’이라 했다. 

서낭은 실체가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하늘이 서낭을 시켜 마을과 나라를 지키게도 했고

가정과 사람의 목숨을 돌보게 했다고 믿으며 살아갔다. 

이러한 서낭의 모습 보고 서낭과 이야기 나누며

억울한 사람의 한을 풀어주고 살을 풀어주는 이가 무당이다. 

무당은 한풀이와 살풀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늘을 믿은 우리 겨레가 하늘의 실체를 확인하며 

우리 삶에 녹여 옳고 바르게 살아가고자 했다. 

오늘날 무당이나 굿, 점성술 등은 반이성적이라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억울하고 답답하고 갑갑할 때 초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에 호소를 하기도 한다.      



일제는 총칼로 위협하고

같은 동포끼리 사상과 이념을 내세워 위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몸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삼키며 

숨죽이며 살아온 비통한 세월이 많았다.      

우리 민족은 한이 많은 삶을 살아왔다.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혼령이 너무나 많다. 

일제강점과 6·25는 우리 민족에게 참담한 비극이었다. 

이승만의 양민학살, 전두환의 광주시민 학살 

세월호,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의 죽음.

생목숨을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과 친지의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면

현재와 미래에도 불의와 고통은 지속된다. 

과거사 진실규명은 잘못된 과거를 조금이라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다. 

파묘는 이러한 노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 파묘를 피해자 중심의 공포영화가 아니라

전문가가 미스터리 한 문제를 해결하는 영화라고 했다. 

“과거의 아픈 상처와 트라우마, 두려움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라는 말이 와닿는다.     



청산하지 못한, 청산되지 않은, 

오히려 은폐하거나 합리화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 공포로 가득하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악귀와 같은 짐승보다 못한 짐승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기 위해

이 땅의 곳곳에 박은 저주의 쇠말뚝은

아직도 뽑히지 않고 있다.      


파묘는 이러한 억울한 이의 한을 풀고

모진 기운의 살을 풀어내는 

살풀이 영화다.            

불의로 승리한 자의 얼치기 엉터리 역사가 아니라

바르고 옳은 전문가의 역사가 될 때

현재와 미래는 조금 더 살만한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젖은 나무는 쇠보다 강하다”

오행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목(木) 일본은 금(金)이다. 

나무는 쇠보다 약하지만 젖은 나무는 쇠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부드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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