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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Oct 12. 2024

[그냥 11 한강의 시 편지]

그냥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한강의 시 편지와 신문기사 

여름을 건너며 행복한 가을 맞이했습니다. 

10월 10일,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 덕분에

따뜻한 가을 저녁을 보냈습니다. 


딸이 보여준 한강이 대학시절 쓴 <편지>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신문기사와 연세대 총장의 축하 글도 함께 올립니다. 


참 기분좋은 기쁜 소식입니다. 



<편지>     

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 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 ···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 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뒹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1992년 11월 23일 연세춘추에 실린 한강의 시 <편지>



신문기사를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강의실에서 신들린 느낌 받았다”…국문과 2학년 한강을 마주했던 교수의 회고


“굿판의 무당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연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1992년 11월 23일 연세춘추에 실린 한강의 시 ‘편지’를 심사했던 정현종 시인에게 한강의 글은 ‘무당의 춤사위’와 같았다. 

당시 연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이었던 한강의 시는 정 시인의 눈에는 ‘열정의 덩어리’이며 ‘풍부한 에너지’였다. 그에게 한강은 능란한 문장력으로 잠재력을 꽃피울 날을 기다리는 꽃망울이었다.

정 시인이 기대한 한강의 잠재력은 32년 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이름으로 만개했다. 학생이자 시인, 소설가로 곁에서 지켜본 ‘멘토’이자 ‘동료’로서 한강을 지켜봐온 정 시인은 한강에게 여전히 ‘무당같은 기질’이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한강이 학부 2학년일 때 각자 써온 작품을 읽고 낭독하면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강의 시를 읽고는 신들린 느낌을 받았다는 기억은 선명합니다.”  




11일 정 시인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학생 시절 한강이 쓴 시를 평가하면서 느꼈던 경외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정 시인은 “원래 한강이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 평가를 듣고도 차분했다”며 “지금은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그의 시작은 시였고 시에서도 특출났다는 점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졸업 이후에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의한다고 했다. 정 시인은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잘 읽은 작품으로 꼽았다. 정 시인은 “나는 소설은 잘 모르지만 한강이 보내주는 책은 다 읽는다”며 “문장이 매우 개성적이고 형식이 독특했던 두 책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2012년 한강의 연세대 석사 과정 논문을 심사했던 정과리 문학평론가도 한강을 ‘조용하게 강의를 듣고 가던 학생’으로 회상했다. 당시 한강은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을 온전하기 이해하기 위해 문학과 미술을 동시에 접근하는 흔치 않은 논문을 써냈다. 정 평론가는 “이상은 건축학도로서 그림도 잘 그렸기에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접근도 필요했다”며 “이상의 그림과 문학을 동시에 분석한 논문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지만 한강이 그런 연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한강의 작품이 인간 내면의 탐구를 시작으로 사회적 현상까지 이어지는 확산성을 가진 점도 호평했다. 정 평론가는 “초창기 한강 작가는 주로 개인의 내면 탐구에 대한 작품을 썼지만 후기에는 초창기의 내면 탐구에 역사적 사건을 종합해 성찰을 이끌어 내는 작품을 썼다”며 “가장 잘 읽은 작품은 식물성과 탐미주의가 부딪히는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


한강과 같은 학번으로 연세대를 다녔던 조강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졸업 후 평론가로 한강과 마주하며 30년 넘는 인연을 이어왔다. 조 교수는 “한강이 등단하고 첫 장편소설을 썼을 때 평론가들이 ‘젊은 마에스트로의 탄생’이라고 칭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한강의 글에 대해선 “신인들이 보여주는 경쾌함과 가능성을 넘어 처음부터 자기의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를 잘 보여주곤 했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한강은 고유의 집중력으로 질문을 끝까지 집요하게 밀고 가는 작가”라며 “문학을 통해 우리 시대와 사회의 증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데 능하고, 그것을 시적인 문장으로 잘 써나가는 작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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