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와 좋은 이웃]

봄밤에 읽은 시와 소설; 김명인 <그 나무> 김애란 <좋은 이웃>

by 백승호

꽃이 집니다.

벚꽃이 집니다.

벚꽃 곁의 대추나무는 아직 싹이 나지 않습니다.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도 이제 겨우 싹을 틔우려 합니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지만,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그 열매 속에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벚꽃 엔딩 노래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김명인 시인의 「그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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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를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를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는

시멘트 개울 한 구석에 비틀린 뿌리를 감춰 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이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이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을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이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를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김명인, 「그 나무」

소지: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태워서 공중에 올리는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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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벚꽃을 떠올립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흩날리는 벚꽃은 늘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옆에,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서 있는 나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김명인 시인의 「그 나무」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저는 한 가지 기억이 함께 떠오릅니다. 김명인 시인은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 속 ‘그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한 관찰을 넘어, 누군가를 향한 깊은 이해와 따뜻함으로 느껴집니다.

화자는 벚꽃이 만개한 길을 걷다가, 혼자만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를 발견합니다. 주변은 이미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는데, 그 나무는 여전히 ‘멈칫’ 한 상태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왜 저 나무만 늦을까?” “봄이 저 나무에게는 왜 이렇게 더딜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시의 핵심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화자는 그 나무를 단순히 ‘불쌍한 존재’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나무를 바라보다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남들보다 늦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아직 준비 중인 것 같고, 때로는 길을 잃은 듯 서성거리기도 합니다. 시 속의 ‘늦된 나무’는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의 분위기는 연민에서 ‘깨달음’으로 바뀝니다. 화자는 생각합니다.

“저 나무도 결국은 꽃을 피울 것이다.”

이 믿음은 곧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나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꽃불 성화’라는 표현입니다. 늦게 피는 꽃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타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늦게 찾아오는 깨달음과 성장의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빠른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늦더라도 자신의 시간으로 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화자의 시선은 더욱 깊어집니다. 단순히 꽃을 피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름의 무게를 견디고 가을에 이르러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지를 묻습니다. 이것은 결국 삶 전체를 견디고 완성해 가는 과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즉, 이 시는 “꽃을 피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끝까지 살아내느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시는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➊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➋ 그 나무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➌ 결국 늦더라도 피어날 삶과 깨달음을 믿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벚꽃처럼 화려한 순간의 아름다움보다, 늦더라도 끝내 피어나는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봄날 벚꽃을 보다가 문득 마음이 쓸쓸해질 때, 이 시를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지금 피지 않았다고 해서,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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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질문들에 김애란 작가가 출연했습니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좋은 이웃」이라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때 책을 읽으며 은행나무의 가을을 떠올렸고, 상실감의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우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리에는 노란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시우에게 좋은 일이잖아. 좀 더 나은 일. 그런데도 시우 어머니가 ‘새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느냐’ 물었을 때 왜 흔쾌히 대답 못한 걸까? 지금보다 십오 분 더 멀어져서? 정말 그것 때문에? 순간 손에 쥔 휴대전화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올 때 편의점에서 맥주 좀 사다 줘.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 정류장을 한참 지나 있었다. 내년 봄, 남편과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기서 얼마나 더 멀어지는 걸까? ‘옮기시는 곳이 어디든 4월까지는 과외를 하겠다’고 말해야 했던 게 아닐까? 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쪼들렸을 때조차 시우네만은 수업료를 안 올렸는데. 그때 그냥 오만 원 더 올려 받을걸…… 누가 누굴 걱정한 거지? 나는 발길을 돌려 정류장으로 돌아갈지, 이대로 그냥 좀 더 걸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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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두워진 현관 한쪽에서 종이상자를 가만 내려다봤다. 집 우宇, 집 주宙.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큰 집이라 여겼다지. 그런데 어떤 존재들은 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실은 돌아왔는데, 몇 번 돌아왔었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우리가 깜빡하고 닫아놓은 문만 한참 바라보다 떠난 건 아닐까?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 손에 쥔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

『안녕이라 그랬어』「좋은 이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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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과 소설 한 편을 다시 읽으며,

꽃을 즐기는 평화와 온전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2026년 4월의 봄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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