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자로 보는 세상 49]

by 백승호


짐승 중에 으뜸은 호랑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자(獅子)가 짐승 중에

으뜸이라 스승 사(師)와 선생 자(子)가 들어가 있고,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다고 칭찬합니다.

하지만 우리 겨레는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습니다.


뫼가 많아 호랑이가 많았던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호랑이에 물려 죽은 이도 많아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눈에 보일 때는 ‘무서운’ 존재로 여겼고,

산신령, 산신이라 하여 금기의 대상으로 여기며

보이지 않아도 호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렵게' 여겼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호랑이를 우리 겨레는 민화를 그려 친근하게 우리 삶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신재현이 그린 ‘까치호랑이’ 그림은 호랑이와 까치가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입니다.

그림 위쪽 가운데에는 “호랑이가 남산에서 부르니

까치들이 모두 모여드네” (호소남산虎嘯南山, 군작도회群鵲都會)라고 하여

밝고 친근한 호랑이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뜻이고

까치는 기쁨을 알려주는 보희(報喜)의 뜻이라고 합니다.

신재현 까치호랑이


호랑이 이야기의 최고봉은

연암 박지원의 <호랑이 꾸짖음(호질虎叱)>입니다.

예전에 선비들은 연암의 이 소설을 단순히 위선적인 유학자를 꾸짖는 것으로만 읽지 않고

주체적인 학문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설로 읽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의 학문을 숭상하여

조선의 학문을 펼치지 못하고 생각과 글이 틀에 박혀 새로운 것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때 연암은 호랑이의 입을 통해 거짓 배움에 대해 꾸짖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아부와 아첨을 하고, 입으로는 성(性)과 리(理)의 고상한 말을 하지만

저희들끼리 잡아먹고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이고 무기를 만들어 댄다고 비판합니다.

연암은 중국의 문장을 숭상하기보다 우리의 삶을 연암의 문장으로 담으려 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중국을 부러워하며 조선을 업신여기고

은나라 사람 기자(箕子)가 조선에 와서 임금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며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몹쓸 병이 생겼습니다.

선조 때 이이가 <기자실기>를 지었고, 숙종 때 허목이 <기자세가>를 지어

중국을 받들면서 주체성을 잃습니다.


중국 송나라의 주희 설보다는 자신의 시각으로 학문을 한 사람은 인조 때 장유(張維)입니다.

장유는 <계곡만필>에서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철 벌레는 얼음을 의심한다.

보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면서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선에는 유식 무식을 막론하고 모두 정(程) 주(朱)의 학문을 외울 뿐, 다른 학문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라고 하며 중국 송나라 정이 정호, 주희의 학설만 중시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 이후 정조대왕 때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같은 분은 중국의 아류로 살기보다

우리 겨레의 주체성을 지켜며 살려고 했습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간직해야 주체성이 있는 것입니다.

논어를 읽으며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 충서 등 보편적 윤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되는데 주희의 해석을 받들면서 숭상하는 것은 경전의 의미를 잘못 아는 것입니다.

맹자를 읽으며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 성선설을 배워 인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하며

맹자의 장점인 말을 잘 아는 것과 호연지기를 배우고

임금이 임금 답지 못하면 내칠 수 있다는 혁명정신과

로크의 사회계약설, 탄핵소추 등을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어야 고전을 제대로 읽은 것입니다.


공부를 하려면 핵심을 꿰뚫는 '보편적 가치'와 '당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고전의 뜻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해석하여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암은 옛것을 법으로 삼고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중시합니다.

호랑이의 꾸짖음은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주체성을 가져라는 뜻입니다.


삼국지를 보면서 한족(漢族) 유비를 좋게 여기고 중국을 숭상하며 조선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족이 아닌 다른 겨레를 오랑캐라 부르며 낮추어 보는 중국사람의 시각을 우리가

따라 하면 우리 역사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고구려 겨레의 하나였던 거란이 요나라를 세웠고, 발해를 세웠던 여진 겨레가 금나라를 세우고

금나라는 청나라로 이어져 북녘의 조선 역사를 써 갔습니다.

삼국지를 읽으며 한족의 편에서 역사를 보면 청나라를 오랑캐 ‘호(胡)’라고 부르는데

굳이 중국 한족의 관점에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선 후기 명창 이날치(이경숙1820~1892) 이름을 딴 이날치 밴드가 수궁가의 한 대목 ‘범 내려온다’를 새롭게 부른 노래에 살아있습니다.

수궁가에서 호랑이는 잘못 부름을 듣고 내려온 것을 분명히 아는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짐승이었는데

요즘은 호랑이도 아니면서 자신이 호랑이인줄 착각하는 사람이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이가 있습니다.

검찰과 언론이 생사람을 잡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호랑이의 탈을 쓴 여우가 권력의 칼자루를 함부로 휘둘러 좋은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시 우음(偶吟)을 옮겨 봅니다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아끼는 것이

호랑이 가죽 좋아하는 것과 같구나

살아 있을때는 죽이고자 안달 하더니

죽은 후에는 아름답다고 칭찬하는구나


호랑이의 꾸짖음을 생각하여 제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빛나게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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