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자로 보는세상53]

너(爾)

by 백승호

너(이爾)


‘너’는 ‘나’와 서로 맞장구치며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너’가 있기에 ‘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너와 나의 다름을 알기에 참 '나'를 있게 합니다.

너의 존재가 있기에 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김태웅의 연극 이(爾)는

연산군일기 60권 22장의 짧은 기록을 상상하여 만들었고'

이(爾)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왕의 남자>입니다.


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공길(孔吉)이 논어(論語)를 외워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너 '답지'못하고 나가 나 '답지'못하면 서로의 관계가 헝클어진다는 생각을

영화 속에 잘 담았습니다.


<왕의 남자>를 보며 너와 나의 ‘거리’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장생 :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냐?

공길 :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눈을 뜨고 있는 현실은 여기와 거기의 거리감으로 함께 할 수 없지만

눈을 감은 장님 놀이에서는 여기와 거리의 일체를 통한 거리의 소멸과 일체를 느낍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쥘부채를 던지고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은

죽음을 뛰어넘어 길이 살아 여기와 거기의 거리,

너와 나의 거리를 단숨에 사라지게 하여

이승에서 하나 되지 못한 슬픔이자 저승에서 이루는 행복하지만 안타까운 선택입니다.


장생의 선택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뜻과 비슷합니다.

시경에 "살아서 따로 살지언정 죽어서는 하나 되리라.

그대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저 하늘의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하리라."

곡즉이실(穀則異室),사즉동혈(死則同穴)。위여불신(謂予不信),유여교일(有如皦日)。

죽어서는 하나 되는 비극보다 살아서 멀리 보는 것이 좋겠지요


소월의 ‘저만치 혼자’의 거리와

정현종 ‘섬’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는

너와 나의 거리와 사이의 황금률입니다.

때로는 저만치 거리를 두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 사이의 섬에서

나무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좋은 사이로 살아가는 것이

너와 나입니다.


BB1fWSyp.jpg 수관기피현상-나무와 나무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너 중에 가까운 사람은 벗이고

너 중에 먼 사람은 남입니다.

지금 여기,

환하고 향기로운 마음을 ‘너’에게 전하면

가까운 ‘너’가 기뻐하고 먼 ‘너’도 기뻐하여

너는 나를 살리고, 나도 너를 살리며 함께 나무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유의 노래 '너의 의미'에 나오는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들으며 너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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