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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Jan 28. 2024

#15. 국가 경쟁력은 결국 인간

교육 잡설(雜說)

#15. 국가 경쟁력은 결국 인간  

   

    왜 국가 간에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일종의 답을 많은 학자들이 내놨습니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책은 아마도 ‘총, 균, 쇄’ 정도일 겁니다. 이 차이는 어떤 때는 지리, 경제, 인종, 문화 등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되어 왔습니다.      


    저는 거장의 과점을 지적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책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세밀한 분석, 이를 통한 논리적 추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결론이 맞는지 이로운지에 대한 판단 이전에 그의 연구 방법론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그가 그토록 제외했던 사람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도 저는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문명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생명체와 차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당연히 문명 간의 구별도 사람의 차이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고대 문명이 발생하는 단계는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해도 일단 만들어진 문명은 여러 체계 안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유지됩니다.  

    

    그리고 이런 문명 상호 간에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이유로 다양한 경계면이 발생하고 충돌하며 상호 문명이 변화하게 됩니다. 일종의 헤겔이 주장한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 사관입니다. 이 주장은 문명 간의 차이가 존재함을 말하고 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들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두 국가의 인식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가 인식을 교류하고 교섭하기도 하지만 결국 각자의 입장에서 결론에 도달합니다. 둘의 이익이 서로 같을 경우에는 각자 역사가 발전하지만 상충하는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 역사적 정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또한 한 국가를 벗어나 하나의 문화권으로 존재하는 속성도 있습니다. 국가가 만들어지는 단계와 유사합니다. 안보, 경제 동맹체가 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협력을 선택했고 안심하게 됩니다. 물론 동맹이라는 일종의 서약이 영속적인 것은 아닙니다. 혈족을 떠난 누구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결국 힘의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연맹의 서약도 효력이 있습니다.      


    권위는 힘에 의해서 확립되며 혈족 내에서 국가로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그러나 합쳐지거나 나누어지기 어려운 한계 상태에 도달하면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충돌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익의 충돌로 벌어진 전쟁의 파괴 정도가 강하고 장기간이 될수록 회복 시간도 길어지며 각 국가의 소모된 에너지 충전 기간이 됩니다.      

   독자적인 지도 체제가 구축되면 군사, 외교, 경제, 문화 등에 대한 나름의 발전과 체제 정착이 뒤따르게 됩니다. 국내 정치와 주변국과의 관계정리도 포함합니다. 중국의 조공(朝貢) 정책, 유럽의 동맹, 막부의 참근교대(参勤交代, 산킨코타이) 등이 좋은 예입니다. 각 국가의 독립성은 유지하며 집단 안보, 경제 체제를 유지합니다. 친한 국가끼리는 체제를 교류하고 상호 발전시킬 수 있지만 경쟁 체제와는 반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 칙사 악둔(阿克敦)을 영은문에서 맞이하는 숙종과 신료들
참근교대(参勤交代, 산킨코타이)

    정체성이 사라지면 인간은 생존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오히려 개인이라는 개념은 정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생존 가치란 결국 국가, 문명, 혈족 단위를 이야기합니다. 조선은 명나라를 공동의 가치로 인정했습니다. 명나라의 생존이 조선의 존속과 직결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개인이라는 개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지만 현대 개념 논의의 출발점은 근대 시대입니다. 근대 시대에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에 대한 인식이 확산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은 타고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프랑스혁명 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고 프랑스혁명 선언문은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조선의 개화파는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근대는 국가와 개인의 개념이 동시에 가다듬어집니다. 근대 이전은 일반으로 평민 개인보다 왕, 종교인, 귀족만이 자기 결정권을 가진 개인이었으며 곧 국가였습니다. 국가 의지와 권한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국력을 측정하는 의미에서 개인은 집단의 숫자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숫자의 의미로서 개인은 노동력, 전투력 측정의 의미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이 시기 개인은 기술과 지식을 숙련하고 일상을 사는 데 있어 시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평균연령도 현대에 비해 낮았으며 높은 유아사망률은 일반인의 교육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일부의 특권이었습니다. 개인의 가치는 낮았고 노동력과 전투력으로 표시될 수 있는 성인 남성만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는 국가 체계가 잡히고 도시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였으며 과학혁명은 인간 개인의 가치가 높아지는 기회가 됩니다. 계몽주의는 인간 개인의 가치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 변화를 의미합니다.     


    다른 의미로 이 시기는 왕정, 귀족정, 민주정 등에 대한 국가 정치 체제에 대한 공론화와 실험이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Πολύβιος, BC 203년~BC 120년)가 이미 그의 저작 <히스토리아>에서 정치 제도의 특성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 위키미디어 

    그는 그리스가 로마에 멸망하고 로마의 위대한 장군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BC 235~BC 183)의 장남 소(小) 스키피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소 스키피오는 3차 포에니 전쟁을 끝으로 카르타고를 멸망시켰습니다. 폴리비오스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소유한 그리스가 어떻게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로마에 멸망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원인을 정치 제도에서 찾았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자바전투

    히스토리아의 권력 분립 사상과 정체(政體) 론 등 정치적 균형과 순환에 대한 이론은 후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미국 헌법 초안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정체론은 왕정 (Monarchy), 권좌제 (Kingship to Aristocracy), 민주제(Democracy)등의 원인과 결과를 주장하며 각 정치제제의 부패는 다음 단계의 정치체제의 원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민주제의 부패는 집단의 폭도화로 이어지는 형태인 중우정치(Ochlocracy)로 변하며 결국 중우정치의 부패는 다시 왕정으로 필연적으로 회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의 주장은 후대에 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그리스 패망의 로마 패권의 원인을 정치 체제에서 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로마제국의 미래를 예측했을지도 모릅니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 1766~1834)는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1798)에서 인구의 자연적 증가는 기하(등비) 급수적이지만 식량은 산술(등차) 급수적으로 밖에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은 필연적이며, 그로 인해 빈곤과 죄악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맬서스와 인구와 식량 그래프

    해결책으로는 산아제한, 결혼연기, 독신 등을 통해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조치와 기근, 질병, 전쟁 등을 통해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인 억제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그는 정말 다양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과학 발전(비료 개발 등)에 따른 생산량의 증가와 경제 규모의 확대 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너무 일반화하는 바람에 변수를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다른 많은 요인을 놓쳤습니다. 

     

    또한 영국 제국주의 식민전쟁 등에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구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환기시켰고 경제학, 통계학, 정치학, 심리학, 진화론 등 수많은 학문과 정책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현대는 맬서스를 크게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단순화 논리보다 훨씬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한 동안 그의 이론은 단지 여러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인구통계학적인 관점에서도 점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강제적 인구억제 정책은 위험하고 단순히 인구가 증가한다고 갈등이 격화되지 않으며 출산율 저하 현상으로 등비 증가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식량 생산량의 급속한 증가는 그의 그래프의 결함을 밝힙니다. 


     결정적으로 한계 인구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인문학적 분석에 자연과학을 억지로 개입시켜 비합리적 결과에 도달하는 전형적인 예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인과관계도 애매합니다. 인구가 많아져서 전쟁이 발생한 건지 전쟁이 나서 인구가 감소하는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최근에 그의 이론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맬서스의 논리가 지금 조명받는 것은 그의 세부적인 이론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개념(concept)입니다. 오히려 2차 대전 이후 많은 선진국의 출산율이 다시 감소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추세대로라면 향후 국가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인구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맬서스의 시대는 인구가 곧 국력이었습니다.

      

    이후 연구에 따르면 인구가 1억 명은 돼야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엄밀한 연구는 아니지만 1억 명이 넘으면 한 국가의 군사, 경제, 문화 등이 자급이 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고 급변 사태에도 대응이 가능하며 단독으로 장기간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국가의 총인구수도 중요하지만 인구밀도가 더 중요합니다. 맬서스의 인구론 측면에서도 결국 모든 일의 발단은 과밀, 과잉에서 출발합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사회기반시설과 의식주 등이 충족되지 않으며 생산물과 부의 재분배가 편중되고 갈등이 폭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 내부의 도시 간의 격차가 켜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정치, 경제 수도에 인구가 집중되고 과밀되면 더불어 사회기반 시설도 포화 상태를 보입니다. 현대 국가에서 이런 도시는 과밀임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위해서 다른 도시의 인구를 흡수합니다. 그런데 국가 전체적으로 출산율은 감소합니다. 따라서 한 국가 안에서 일부 도시만 인구가 증가하고 총인구 증가가 둔화할 경우에 다른 도시의 인구 감소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높은 집값은 새로운 인구 유입을 차단하는 진입장벽 역할을 합니다. 인구가 많은 대표적인 두 나라는 중국과 인도입니다. 정확한 인구통계를 발표한다는 말 자체가 곧 거짓말인 두 나라는 3위 미국을 11억 차이로 가볍게 제치고 14억 2,000만 정도를 자랑합니다. 특히 인도는 본래 한 나라였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를 합치면 18억이 넘는 정말 인구 대제국입니다. 심지어 인도의 출산율은 여전히 높습니다. 중국은 인구 감소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도 14억입니다.    

  

    억 단위의 거대한 숫자에서 개인을 나타내는 숫자 1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그렇지만 현대 인간 문명은 인구가 많고 적음이나 과밀이냐에 의하지 않고 모든 개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민주주의는 어떤 사람이든 정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식사회만 관리하던 시대에서 근대의 개념은 국민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인구가 많은 국가는 국가대로 적은 국가는 국가대로 인구 증감에 대한 나름의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정책적 대안을 펼칩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군대도 인구증가/감소와 관련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상비군의 유무, 규모, 편성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고 현재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인구 감소와 연동해서 과학화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는 80억을 돌파했습니다. 16세기에 4억, 18세기 10억으로 추정되니 맬서스의 결과를 제외한 예측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인구입니다. 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중심에 인구를 두는 것은 과잉 반응이 아닙니다.      


    인구 증가와 맞물려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의료산업입니다. 근대 이전 과학혁명 이전의 의료는 고대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유아사망률, 기형아 출생률이 높았고 전염병이 인구의 순증을 억제했습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전쟁보다 전염병이 인구 감소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14세기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는 추정치가 있을 정도입니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처럼 관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관문이 전염병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이후에도 자연재해와 전염병은 전쟁과 더불어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를 억제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는 도시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였고 당시 기술력으로 생산력이 극대화되던 시기였습니다. 맬서스의 주장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습니다. 여하튼 그 시대보다 현대는 의료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많은 질병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당연하게도 평균연령이 늘어났습니다.     


    국가는 국민 한 명에게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경제적인 투자를 하는 이유는 국민 개개인의 가치가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개인의 가치는 수치로 환산할 수도 없고 시대마다 존엄이 달라질 수도 없습니다.      


    다만 국가가 개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근대 국가는 국민이 필요했고 노동력과 전투력의 핵심 요소였고 정치적으로 참정권을 통해 정치세력화됩니다. 당연히 국민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교육을 확대하게 됩니다.      


    계몽(교화)의 대상이 진정으로 백성이 된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는 아예 정치, 경제 권력도 백성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시민의 성장을 두려워한 우민화 정책을 시행했고 그들의 질적 성장을 방해하며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방해했고 국가 경쟁력도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즉, 국민의 양도 중요하지만 질적 향상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어쩌면 인류는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걸지도 모릅니다. 개인이 국가가 되고 다시 분절되어 개인이 되기까지 수천 년이 필요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의지는 저절로 만들어지고 깨닫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개인이 다시 국가가 되는 상황이 올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개개인의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국민이 곧 국가이며 당연히 국가 경쟁력은 국민 개개인의 경쟁력의 총합입니다. 근대 국가는 나폴레옹(Napoleone di Buonaparte, 1769~1821)에 의해 본격적인 막을 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위해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바탕으로 시민권을 확산시켰습니다. 그는 프랑스 국민에게 평등, 자유, 박애의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근대법의 근간인 나폴레옹법전(Code Napoléon)을 제정해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했습니다. 법 앞에서 만민 평등을 주장했고 이를 통해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통일성을 확립했습니다. 결국 프랑스 전역에 행정, 사법, 군사 제도를 통일했습니다. 나폴레옹의 근대 국가는 이후 전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나폴레옹과 법전

    특히 그는 국민 개병제를 실시합니다. 나폴레옹의 국민개병제는 모든 국민에게 병역 의무 부과하며 귀족과 부유층만 병역 의무를 졌던 그리스 이후의 군대를 획기적으로 개혁합니다. 또한 군 입대 장병에게 보편적인 훈련을 실시하며 국가 교육의 근간이었던 교육을 개선합니다. 과거에는 귀족과 부유층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권리를 얻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

    당연히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은 군사 전문 교유뿐 아니라 근대 국가 시민으로서의 기본 교육을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습니다. 물론 이후 여러 보완적 제도가 추진되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개개인의 전투력이 국가 군사력의 총체인 사실은 오히려 강화되었습니다.     


    이런 근대 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는 오히려 프랑스와 전쟁을 하는 프로이센이었습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재건하기 위해 적대국인 프랑스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독일 근대화를 이룹니다. 비스마르크는 국민개병제를 시행하고 군사 교육을 개혁하며 군대를 강화합니다. 또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고등 교육을 확대하며 교육을 통일시켜 독일 통일을 가속화합니다. 

     

프로이센 군대

    이렇게 양산된 독일 국민은 노동력과 군사력의 상징이 됩니다. 또 한 국가는 가장 나중에 수립한 정부인 미국이었습니다. 미국도 내부 저항이 있었지만 기존 제국주의적 질서가 약했던 미국은 독립과 동시에 새로운 국가로 빠르게 변화합니다. 이후 인구 증가를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남부지역 농경을 위해 노예제도가 활성화되었고 다시 북부 도시 공업 노동력 확보를 위한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여성 노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 참정권을 승인하고 베트남전 수행을 위해 흑인의 평등권을 승인했습니다. 베트남전 이후 불법 이민 해소와 모병을 위해 이민자 영주권 정책 마련했고 트럼프 정부는 고용 해소 등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불법 이민 차단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는 다소 편향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인과나 선후가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유럽의 국가와 비교해 보면 미국의 정책들은 분명히 국가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의 국가들 다수는 이슬람 이민자들이 어떤 형태로 거주하고 얼마나 오랜 기간 살았는지 불문하고 자국 시민과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유사하면서도 다소 다른 이민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다른 상황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민자들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처럼 인구 감소는 국가 경쟁력의 두 축인 노동력과 군사력의 양적, 질적 저하를 낳고 있습니다. 각국은 인구 정책은 맬서스 이후 모든 국가의 핵심과제로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동시에 이제는 AI, 기계와 시민이 국가 핵심 경쟁력의 자리를 두고 다퉈야 합니다. 노동력과 군사력의 관점에만 본다면 이미 많은 부분을 AI와 로봇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양적, 질적 측면에서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AI와 기계의 발전 속도는 2023년 현재 눈부실 정도입니다. 언젠가 인간의 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회 전반에 차오르고 있습니다.      


    세금도 부과해야 한다는 논쟁부터 군에 적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발전 속도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AI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피의 대가로 인간 개개인의 존엄이 이제 겨우 상식이 되었지만, 아직 세계 곳곳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강력한 경쟁자에 의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핀란드는 국민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과 이념전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핀란드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교육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핀란드 사회는 평등한 교육 기회를 요구했습니다.      


    핀란드는 교육 개혁을 통해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1970년 단행된 대대적인 교육 개혁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핀란드 교육 개혁의 주요 내용은 무상 교육의 확대, 학생의 주도적인 학습과 창의력 계발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교사 양성 과정을 강화하여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했습니다. 핀란드 교육 개혁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가진 국가, 가장 경쟁력 있는 국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연히 2차 대전 이후 독립을 한 거의 대부분 국가는 이러한 희망차고 새로운 독립된 국가 건설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초기에 실패했던 국가도 있습니다. 미얀마(버마)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얀마는 아시아의 최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랑군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교육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는 영국식 교육 시스템이 완벽하게 도입 시행되어 아시아 지역의 각 국가에서 랭군 대학으로 많은 학생이 유학 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들어선 군사정권의 '우민화 정책'에 뿌리를 둔 영어 금지 정책, 대학교 와해 정책 등으로 교육 시스템은 기본토대까지 와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육의 붕괴는 고급 인력의 부재를 낳았고 결국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정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민화 정책을 이야기하면 빠질 수 없는 국가가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약소국도 아니었고 심지어 식민지를 관리하던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던 나라가 현재 유럽의 후진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자연환경, 인구, 종교, 문화 등 어떤 측면에서도 아쉬울 게 없는 국가였습니다. 포르투갈 경제 파탄에 가장 큰 책임은 정치에 있었습니다. 독재 정권인 ‘이스타도 노부(Estado Novo, 1933~1974)’는 국민을 유순하게 통치하겠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우민화 정책(3F, Futebol 축구 / Fatima 로마 가톨릭 / Fado 음악)을 실시했고 전체 국민의 40%를 문맹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앙골라와 모잠비크 등 독립하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들을 재정복 하겠다며 예산의 60%를 들여 식민지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 1932~1968)의 독재 정권을 뒤엎은 “카네이션 혁명(1974)”이 일어날 때쯤에는 포르투갈의 사회경제는 이미 낙후되었습니다.      

혁명 당시 총구에 카네이션을 꽃은 혁명군

    지금도 국가 차원에서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문제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등 교육에 대한 투자 부진으로 포르투갈 18세 이상 인구의 30% 이상이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으며 전체 인구로 봤을 때도 30% 정도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육의 질과 양의 저하는 질 낮은 노동자, 높은 비정규직의 비율, 낮은 임금, 높은 불평등의 문제를 양산합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는 6.25 직전에 토지분배를 단행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헐값에 토지가(지가증권) 거래로 인해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51년 조사에 따르면 35%에 불과했던 자작농이 96%까지 치솟게 됩니다. 이러한 농지개혁은 국민에게 사유재산, 자본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으켰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1950년 3월 지주들에게 발급된 지가증

    물론 농지 소유 규모의 차이가 많았습니다. 지주도 토지분배로 타격을 당했지만 소규모 농지를 보유한 국민도 자립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이 시기에 점차적으로 공업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형제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농촌의 생존 환경을 변화시켰고 필요한 노동력 확보와 부의 재분배라는 긍정적 요소에 힘입어 독립한 많은 다른 국가에 비해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집니다.      


    현재도 민주주의를 표방은 하지만 불안한 정부들은 다수가 토지분배를 하지 않았거나 북한처럼 결국 국가가 소유하면서 국민의 자립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자영농이 토지를 넓힌다거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새로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배움에 대한 열망이 높아집니다.      

    집안에서 최소한 한 명은 공부로 출세해야 한다는 조선시대의 관습대로 도시로 고등 교육을 위해 유학을 보냅니다. 다른 대부분 국가는 의무교육과 무상 교육 여건을 만들기도 전에 당면한 문제로 고등 교육이 제한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쌀과 토지와 소를 팔고 자식 농사를 하게 됩니다. 토지개혁만으로 현대의 한국 교육을 설명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일반 국민의 성공 신화, 근대화 운동, 의무교육, 교육열을 토지개혁으로 일부 성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랜 징병제는 군대교육, 체육, 교련 의무교육 등으로 근대화 교육체계가 구축되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가 목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야에서 부수 효과가 본래의 기획 의도를 넘어서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맬서스의 인구론 이후 그 진위와 결과에 대해 논박이 끊이지 않았지만 근본적 아이디어는 유효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인구가 곧 그 국가의 경쟁력이므로 내부에서 양적, 질적 순증을 담보하지 못하면 외부로 확보 노력을 돌리게 됩니다.     

 

    아마도 정히 내부적으로 어려우면 다른 방법이라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내부 인재 확보를 위한 정책과 병행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경제력, 군사력이 한없이 우위에 있던 제국도 내부의 인적 쇄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외부로만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 더욱 어려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최근 여러 국가에서 과거의 종교적 원리주의, 극우/극좌 정치로 체제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 전환되는 체제에는 항상 교육제도도 포함됩니다. 부국강병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고 성공과 실패가 있었지만 전 지구적인 방향은 인간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관리하는 국가가 옳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물러서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강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이나 힌두교의 바르나 제단주의, 불교의 윤회론처럼 그 사회를 주도하는 정치 체제나 계급이 순환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역행해서 성공하는 역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천천히 갈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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