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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Feb 12. 2024

#17. 국영수를 중심으로 공부해라?

#17. 국영수를 중심으로 공부해라?  

        

   지금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채용을 할 때 적성검사, 심층면접(AI 포함) 등 다양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반드시 국영수가 시험과목에 포함되었습니다. 국영수는 다른 어떤 과목보다 고등학교에서도 상당히 깊이 있게 교육하며 시험문제의 난이도 또한 높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학 능력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상위권에 랭킹 됩니다. 물론 본고사, 학력고사 시대와 수능 체제는 문제 유형이 많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국영수의 기본체제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무원 시험에 적용하는 공직적성검사(PSAT,  Public Service Aptitude Test)는 지능검사와 유사하면서도 국어와 수학 능력을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적성(aptitude)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고 공직적성검사가 적성을 정확히 판단하는 검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비난도 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기초 소양을 측정하는데 국영수 보다 적절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검사는 통상적으로 언어논리영역, 자료해석영역, 상황판단영역으로 구분되며 난이도는 국영수 시험에 비해 높지 않지만 짧은 시간에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적성을 시험공부로 향상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시험 보는 방식과 문제 유형이 수능과 유사한 측면도 있으니 자주 노출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언어논리영역은 언어이해력과 논리학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영역입니다. 언어이해력은 그동안 많이 했던 국어와 유사하고 논리는 형식논리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며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여하튼 기본적으로 읽고 쓰기에 대한 기본 능력이 필요하며 이 능력은 다른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료해석영역은 각종 자료에 대한 해석 능력을 측정하는 영역입니다. 굳이 수능에 비유하자면 사회문화의 표-그래프 분석유형과 유사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어지고 해석해야 하는 정보량이 비교도 안 되게 많으며 계산도 훨씬 복잡합니다. 공직 실무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되는 평가이지만 마찬가지로 시간이 함정인 문제가 다수 출제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처럼 삼각함수의 미적분의 지식은 필요 없지만 응용수학, 정치, 경제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해석력이 필요합니다.      


    상황판단은 여러 가지 능력을 한 번에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되며 최근에는 언어논리와 자료해석의 중간쯤 문항이 출제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도 난이도와 직종, 목적에 따라 다양한 시험방법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지금의 논술 시험과 형식적으로 유사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과거시험은 지금처럼 1차, 2차, 3차 등 단계적으로 치러졌으며 마지막 남은 사람들이 치르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출제관이 문제를 출제하고 왕에게 재가를 받는 형식이었지만 왕이 직접 문제를 출제한 사례도 더러 존재합니다.      


    이런 과거시험의 문제와 답안지는 시문이라는 묶음 형식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굳이 비교하자면 기출문제집입니다. 현대의 논술이나 프랑스의 대입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문제와 유사합니다. 다만 조선의 책문(策問)은 좀 더 시대를 반영합니다.      


    현대의 대입은 기본 소양에 대한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에 집중한다면 책문은 ‘시대의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해군 집권 시기, 임숙영은 책문에 대한 답으로 당시 실권자였던 이이첨 일파를 비롯한 왕실 친족의 폐정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임숙영의 필적

    광해군도 처음에는 분노해서 불합격시켰지만 몇 달간 심의 끝에 결국 급제합니다. 책문에 출제되는 주제를 살펴보면 크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인재, 군사로 크게 나뉘었습니다. 정치에서는 이상적인 왕도 국가 통치의 형태, 군신 관계에 대한 문제를, 사회는 혼례나 노비제도에 관한 내용을 물었으며 경제에서는 전제, 공물, 군역에 대한 논의를 주로 다뤘고 문화는 관혼상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인재는 주로 이상적인 인재상과 인재 선발 및 과거 폐단에 대한 논의를 다뤘고 당연하게도 복합문제도 출제되었습니다. 실제로 대책에 서술된 답변이 정책논의에 활용되거나, 장원으로 급제한 이가 관직에 올랐을 때 책문에서 제시한 시무와 관련된 직책을 직접 추진하기도 합니다.    

  

    세종대왕은 ‘공법(貢法)’ 시행에 대해 질문을 했고 장원 급제한 정인지(鄭麟趾, 1397~1478)는 급제한 후 공법 시행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정조의 ‘친시(親試)’에 대한 정약용의 ‘시권(試券)’도 재미있습니다. 주제는 ‘오객(五客)’이었으며 글의 형식은 ‘기(記)’였습니다. 중국의 오객이라는 그림을 이야기 형식으로 작성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정약용은 오객을 어느 집에 들어온 다섯 명의 손님으로 비유하며 인재 등용에 대한 정조의 고민에 나름의 답을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정약용은 이후 과거시험과 교육, 인재 등용에 대한 나름의 책략을 왕에게 지속해서 건의합니다.      


    당시 선비들도 지금처럼 이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우수한 책문, 대책의 모음집을 참조하기도 하고 스터디 그룹 같은 ‘동접(同接)’을 결성해 함께 숙식하며 공부하고, 수시로 서로 질문하고 응답하거나, 자체적인 모의시험을 실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국가가 입시시험, 채용시험을 어떤 방식을 채택하는가는 국가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선은 모든 사고와 행동을 유학적 틀 안에 녹여야 했으며 당연히 공부와 시험도 유학 경전만 가능했고 답안도 경전의 내용만 허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답안지에 피해야 하는 사항도 있었습니다. 기불양화(祈佛禳禍) 등 이단의 풍속과 글, 노자·장자·순자의 글, 왕의 이름(御諱), 색목(色目) 발언, 패유(悖謬)한 글, 초서(草書) 사용, 낙서·오서(誤書) 등입니다.      

    이렇게 시험에 어떤 문제가 출제되는지와 좋은 답안지에 대한 가이드는 평상시의 교육과 연계되며 당시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와 연동됩니다.      


    조선의 선비가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유학 경전을 외워야 했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유학은 학문을 넘어서서 종교 수준인 유교로 승격되며, 후대로 갈수록 양반뿐만 아니라 일반 양인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의미로는 조선은 정교일치 국가였으며 그런 의미로 현대 이스라엘이나 이슬람 국가와 유사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중앙집권, 명과의 친교,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필요 등에 따라 유학은 긍정적이었지만 후대에는 북학 등 실학과 서구 근대화와 비교되는 진부한 체제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약용의 비판은 적절했으며 반대로 그의 실각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조선 저항의 역사로 남습니다.     

 

    과거에 인재상에 대한 논의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형 인재와 일반형 인재에 대한 논의가 2,000년을 전후해서 많았습니다. 지금의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논쟁과 유사했습니다. 이런 논의 중에 T형 인재와 H형 인재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T형 인재는 자기 분야는 깊게(I) 알고, 주변 분야의 지식도 넓게(-) 갖춘 인재를 말합니다. H형 인재는 자신의 차별화된 강점과 다른 사람의 차별화된 강점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능력을 지닌 인재입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진화 경쟁에서 생존한 이유 중 하나로 협력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런 논의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시대를 관통하는 인재상이 있는 것처럼 어떤 분야, 직업, 사회적 위치 등에 따르는 맞춤형 인재상도 필요합니다. 요즈음은 주역, 혈액형, 성격, 적성 등과 상호 연계한 인재상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조직에 필요한 인재상이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 핵심역량을 조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인재가 존재할 때 조직이든 국가든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조직이나 핵심역량을 설정하고 채용, 보직 등 다양한 인사관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199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는 핵심역량(核心力量, core competence)에 대해서 “기업은 사업부의 조합이 아니라 역량의 집합체이다”라고 했습니다. 핵심역량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내부 역량으로서 경쟁사와 차별될 뿐만 아니라 사업 성공의 핵심으로 작용하는 경쟁 우위의 원칙입니다. 본래 기업의 핵심역량은 기술, 자본의 영역이었지만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HRM, 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의 등장으로 사람도 기업 자원의 일환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국가의 핵심역량, 자원의 하나로 사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와 조직의 핵심자원은 과학기술, 천연자원, 정치형태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근대화 이후에 국가는 사람을 무한 공급되는 체제 일부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인권 의식, 존엄성 등 인본주의의 체계화로 개인에 대한 의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근대화 시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의미로만 사람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특성 차이보다 성적처럼 객관적인 지표로 줄을 세우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정당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국어, 영어, 수학은 매우 훌륭한 평가 지표였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은 근대화 이후의 많은 국가에서 인재 선발의 평가 도구로 각광받았습니다. 근대화 이후 민족주의, 세계화, 과학혁명 등의 진행에 따른 필연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너무나 효율적이고 공정하며 민주적이었습니다. 1, 2차 대전 이후 다수 국가가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거나 민족주의 강화로 분리 독립합니다.      

    당연히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자국어 교육이 강화됩니다. 자신들의 말로 읽고 쓰고 듣는 것은 그 어떤 교육보다 강렬하고 오래가며 오래갑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능력에 따라 신분, 계급, 부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정교일치 사회에서 그 차이는 더욱 극대화되며 정체성의 통일을 어렵게 하고 심지어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학은 모든 대학, 과에서 글 쓰기와 수학이 입시, 대학교육의 기본 요구 과목입니다. 세종대왕이 왜 그토록 한글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라 문자 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는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해례본이 없었다면 창제 원리 추측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에서 언어 창제 원리를 정리한 거의 유일한 글입니다. 해석은 아직도 이견이 있지만 한자와 병기되어 있어서 유추할 수 있으며 당시 한자 사용과 단어의 사용례까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세종은 이미 중국말 교육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말이 문제가 있거나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과 글이 달라서 야기되는 문제가 근본적인 정체성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세종은 고려말, 조선초 무너진 여러 가지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법, 철학, 학문, 문화예술, 제례, 천문의 기초 연구를 시행하고 정립했습니다. 한편으로 왜 충분히 발전했던 고려, 원의 체제가 무너지고 전해지지 않으며 인간의 문명이 후퇴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당연히 이 모든 연구 결과는 책과 문서로 남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종은 정확한 전달의 의미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시(詩), 악(樂)을 한자로 후대에 전하는 것은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후대가 될수록 본래의 의지와 정확한 뜻이 전해질 가능성은 희소해집니다.      


    더불어 한자를 한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 일부의 의견만 전달되거나 한자는 알지만 비전문가의 의견만이 왜곡되거나 축소, 과장되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의 언어, 글은 헤게모니(Hegemony, 霸權)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한글이 지식층이었던 양반의 언어로 받아들여졌다면, 최소한 병기(竝記)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서재필, 주시경 등의 노력으로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獨立新聞, 1896)이 창간되었으며 띄어쓰기를 시행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어가 학교 교육과 필수 입시 과목인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입시시험으로서의 국어는 평가의 효율성, 변별력 등의 문제로 문법 위주의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부담 속에서도 당시에는 한글 교육의 급속한 전파와 한글 지식의 폭발적 증가를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 방법이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주요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주요하기도 했습니다. 선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글 표준화와 보급에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한글은 일반 대중의 언어인 일본의 히라가나(ひらがな) 정도의 역할만을 기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본의 의도가 일각에서는 한글을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탈바꿈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수능, 논술 등으로 변화되었고 최근에는 킬(kill) 문제가 국어, 비문학에서 출제되며 논란도 있었지만 번역, 논술 등 다양한 글쓰기 교육으로 조정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험과는 별도로 교육 연구가 지속적으로 연구발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영어 공용화도 중요하고 수학도 중요하지만 한글은 한민족, 대한민국의 정체성입니다. 더불어 사투리 보존도 중요합니다. 풍성하고 다양한 언어는 단순하고 통일된 말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세종대왕의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K-POP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한글은 우리말이니 익히기도 쉽고 한 번 익히면 자전거처럼 활용성도 높습니다. 아무리 문법 중심의 입시 주입식 교육이어도 익히고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는 식민지 시절의 주입식 교육이 현재까지 지속되며 교육 효율성이 낮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조선 후기에는 한어와 만주어를 모르면 과거에 급제하기도, 공직 생활을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컸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는 영어를 못해도 공직 생활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해방 후 얼마 기간 동안은 ‘알아야 면장도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공문서가 한자로 작성되었으며 지적도와 호적 등 각종 서류도 한자였습니다. 그것도 손으로 쓰고 직접 읽어야 했습니다. 옥편과 한글 사전이 필수였던 시기입니다.      


    해방 후에도 이랬으니 조선의 백성은 양반이라도 읽고 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만주어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만주어가 오랑캐의 말이니 한어보다는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국익과 사익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의 쇄국정책은 주변국과 달리 철저한 고립정책이었습니다. 경직된 주자 성리학적 관점으로 오랑캐의 말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했습니다. 더욱이 정조 사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천주교 탄압은 사람, 사상, 지식의 유입을 철저하게 차단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미양요 후 조미 통상 수호 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통역이 조선에는 없었습니다. 고종이 1886년 설립한 육영공원((育英公院)은 최초의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이면서 영어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육영공원이 양반 자제들만 입학이 가능한 귀족 교육기관이었다면 배재학당(培材學堂)과 이화학당(梨花學堂)은 신분과 성별의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육영공원

    교육방법은 대체로 회화 중심이었고 당시 한글은 영어 발음을 유사하게 쓰고 읽을 수 있어 학습효과가 높았습니다. 또한 육영공원은 영어로 근대학문을 교육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역 없이도 수업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에 있었던 많은 외국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선인이 동양인 중에 가장 영어를 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지석영(池錫永, 1855~1935) 선생이 편찬한 영어교재인 <아학편(兒學編, 1908)>을 보면 한자를 중심으로 한글, 영어, 중국어, 일어 발음이 표기되어 있는데 특히 우리말 발음을 소리 나는 데로 표기했습니다.      

아학편

    예를 들어 love를 ‘을러브’, ruler를 ‘으룰러’로 표기해서 실제 발음과 일체 시켰습니다. 그러나 특히 듣고 말하기 중심이었던 조선의 영어교육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문법과 번역 위주의 일본식 영어교육으로 바뀌고 맙니다.      


    일본은 듣고 말하기보다 쓰고 읽기가 더 중요했고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이 공부의 목적이었습니다. 당연히 평가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그나마 선생님들이 조선인이었으며 <아학편> 같은 한글 영어교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식 영어 교육을 받은 선생님들이 교단에 편입되며 평가 중심의 교육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결국 영어 일반 학교의 영어교육은 폐지됩니다. 해방 후 미 군정(美軍政)과 6·25로 많은 영어 소통 가능자가 있었지만 문법과 단어 중심의 교육은 변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본식 영어 교육은 사실 입시 중심의 교육방법이었습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누구나 시험을 통해 대학을 갈 수 있고 관료가 될 수 있는 근대국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빠르게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집단 교육과 시험을 통한 인재 선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다양성보다는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시험은 이런 필요를 한 번에 해결해 주는 명약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전남여고 영어수업(1932년)

   이렇게 영어는 단번에 한어, 일본어, 만주어에 버금가는 신분, 계급, 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는 더 빨랐습니다. 당연히 일본어가 가장 중요한 외국어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내선일체까지 강화되며 아예 일본인이 되는 것이 더 편리했습니다. 항간에서 일본이 한글화를 오히려 도와주었다고 하지만 일본에게 한글은 조선인 평민의 언어였고 식민통치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에서도 식민지 언어는 일반적으로 장려되고 발전되었습니다. 식민지의 지식 엘리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어가 더욱 필요했으며 한글 장려는 반동 작업일 뿐이었습니다. 영어교육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에게 조선 지식인이 적국인 미국의 언어인 영어를 일본인보다 잘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 만주, 러시아에 이르는 전선에서 군사 정보를 포함한 여러 정보가 누설될 것을 걱정했으며 실제로 미군과의 연합 작전도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1940년대가 되면 일반 학교에서의 영어 교육과 한글 사용을 금지합니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도 대한민국의 일반 백성은 오늘날까지도 말과 글이 달라 겪었던 조선 백성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원인을 한글의 단순화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글 자음, 모음의 단순화는 일본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세계화 시대에 한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대부분 언어를 지금보다 쉽게 배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한글은 지금보다는 조금 어렵게 배웠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자연어 처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생산형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통번역을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언어를 의사소통만으로 바라본다면 이제 영어 공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국 근대화 시기의 영어를 체험하고 성실성의 한 잣대로 영어 시험 성적이 필요한 조직이 남아있을 수도 있는 만큼 절대 손에서 영어책을 떠나보내면 안 됩니다.      


    영어의 위상은 과거와도 또 다릅니다. 근대 이후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한 영어는 대부분 주요 논문을 점령했습니다. 최소한 복수로 발간됩니다. 대다수의 인문학적 글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대부분의 과학 관련 글이 영어로 작성됩니다.      


    사실 오래전 영어는 변두리 언어였고 심지어 영어가 어떻게 만들어 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왔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영국에서조차 영어는 왕과 귀족은 사용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수도승을 포함한 종교인과 왕, 귀족 등의 지식 권력자들은 라틴어를 공부했고 지혜가 사유화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역동은 성경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며 확장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어는 셰익스피어 시대를 거치며 풍성해지고 다양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과학혁명과 근대를 거치며 영어의 과학과가 진행됩니다. 영어로 코딩하는 이유도 이러한 여정의 결과입니다.      

구텐베르크의 라틴어 성경

    영어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어도 지속해서 발전해야 합니다. 한어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던 시절에도 동남아시아는 각국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언어는 국가와 민족, 사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일본은 현재도 번역 분야 세계 1위입니다. 이스라엘은 2,000년의 디아스포라 이후 재건국 과정에서 분산되고 잃어버린 글과 발음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수학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국어, 영어에 비해 다소 애매합니다. 개항이 늦은 만큼 서구 과학기술 중에서도 특히 수학이 뒤늦게 들어왔으며 순수학문으로서의 수학의 중요성은 기술에 비해 저평가되었습니다.     

 

    조선에도 실무 수학을 담당하는 과거 시험이 있었습니다. 수학을 산학(算學)이라 불렀고 시험을 산학취재(算學取材)라 했으며 급제자들은 산학기술관이 되었습니다. 중인이었으며 종 9~6품 정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학취재는 고종 때까지 있었습니다. 

     

    숙종 때 홍정하(洪正夏, 1684∼미상)는 방정식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보이며 <구일집>이라는 수학책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수학 불모지에서 상당한 대수학적(방정식)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의 수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일집

    사실 동양의 고대 수학은 다른 학문처럼 서양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원대까지 세계 최고였던 동양 수학이 오늘날에는 서양 수학에 매몰돼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해답만 중시했을 뿐 논리를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동양 수학은 실무 관리의 실용 학문으로 고착되었으며 문제의 답을 얻는 방법에만 치중했을 뿐 답을 얻는 논증이나 체계를 외면했습니다. 자연 현상과 인간에 대한 논증이나 논리는 유학이 전담하게 됩니다. 모든 논증을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던 동양의 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리학적 정치철학이 완성된 송을 기점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매몰된 중세처럼 정지합니다.     


    그러니 공리를 기초로 한 연역적 추론과 수학적 증명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왜'라는 의문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서양도 대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기하학적 증명을 하지만 동양은 그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르네상스를 거쳐 지식혁명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도 없고 지배권력만 교체되던 동양의 한계였습니다.     


    동양과 함께 동서양의 연결고리를 했으며 사업의 발달과 더불어 그리스 철학의 계승자였던 중동도 고대 엄청난 수준의 수학적 지식을 가졌지만 이슬람교의 부흥과 오스만제국의 설립으로 더 이상의 수학, 과학적 담론이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조선은 개항과 함께 다른 학문과 동일하게, 수학적 사유가 체계화되고 체화되기 이전에 한 번에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는 수학과 다른 학문이 동시에 연계성보다는 독립적으로 도입되고 발전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서양 문물을 빠르고 광범위하게 습득하기 위해서는 모든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유가 없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지식인들은 나라의 힘을 키우고 독립을 위해서는 과학을 배우고(계몽)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 의식까지 있었습니다. 수학과 과학이 철학적 사유의 결과임을 알면서도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1925년 과학세계 잡지 창간호를 예고한 광고. [사진 과천과학관]

    수학교육의 목표는 과거나 지금이나 실제적인 활용성 외에도 논리성과 창의력의 증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학과 물리를 동시에 배우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이 두 학문이 별개 것으로 인식합니다. 모든 과목이 연계성이 무시된 채 독립적으로 교육하고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암기식 교육이 진행됩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선택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교육부에서는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수능 ‘심화수학’ 영역 신설 방안도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심화수학은 ‘미적분Ⅱ’, ‘기하’를 절대평가 하는 방안입니다.  

    

    원론적으로 저는 찬성하지만 심화수학 이수를 선택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기 때문에 어떤 대학이 필수로 선정할지에 정책 성공의 열쇠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과거 통계학 대학원 다닐 때 입시에서 행렬, 미적분, 확률통계를 선택으로 했던 시기였습니다.   

   

    대학 학부생들에게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며 동시에 대학 과정을 수업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수학적 개념을 교육하기 이전에 만유인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개념 설명이 필요합니다. 고등학교 보다 대학이 수업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부생들은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고등학교 인강이나 과외를 거꾸로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개념을 교육할 때 어려운 것은 수학적 지식이 단순히 부족해서 발생하는 일이 아닙니다. 수학을 사유화 과정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서입니다. 수학도 결국 수학적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체계입니다. 수학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 정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문을 배울 때 글은 한글로 적혀있지만 기본적으로 세네 가지 언어를 함께 습득해야 합니다.     


    먼저 한글은 당연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글로 적혀있는 전공 단어가 한자로 적혀있습니다. 이렇게 한자화되어있는 단어가 개념과 일치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해하기 위해서 최소한 영어 원서를 찾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공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식은 수학적 언어로 적혀 있으며 기호는 대부분 그리스어입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이공계 학문이 컴퓨터를 사용하니 컴퓨터 언어도 배워야 합니다.     


    해방 전 우리나라 모든 학문의 단어와 문장은 중국과 일본의 책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었습니다. 더욱이 한자가 어렵다는 이유로 한글로 풀어서 설명하느라 영어로는 한 단어로 끝나는 것도 여러 단어로 학습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경제, 경영학 교과서뿐 아니라 이공계 책도 단어는 한자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회귀 분석(回歸分析, regression analysis)의 회귀(regress 리그레스)의 원래 의미는 옛날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도 분석의 특성을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회귀’라는 한자는 정말이지 무협지에나 등장할 용어입니다. 영어 regression을 번역하면서 가장 비슷한 한자어를 일본에서 고르면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골턴이 창안한 회귀 분석은 이름만 존재할 뿐 현대의 회귀 분석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를 처음 언급한 골턴, 그는 우생학에 통계학을 이용해서 비난받지만 고전 통계학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Factor analysis라는 분석은 아예 같은 영어를 인자분석, 요인분석으로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차라리 영어 원문으로 읽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기하학과 대수학 부분이 geometry, algebra로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당연하게도 기하학과 대수학이라는 용어는 고등학교 이후에나 사용합니다. 저는 지금도 대수학(代數學)의 ‘代’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며 큰 대(大)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글로 수학을 교육하고 배워야 합니다. 수학적 사고가 한글 언어체계에 녹아들 때 비로소 한글도 형태적으로 뿐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을 동시에 갖춘 언어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수학이 멀리 동떨어진 학문이나 천재들의 소일거리가 아닌 삶과 연결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이 있습니다. 초등 5학년에서 수포자(단어 자체가 주는 공포가 엄청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가 처음 생기기 시작합니다. 분수 심화와 방정식 개념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학생마다 배우는 속도가 차이가 있으며 관심의 정도도 저마다 다르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수학에 대한 공포가 심화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다른 과목도 그렇지만 특히 수학은 암기와 이해를 동시에 해야 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기존의 단계에 대한 완벽한 암기와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당연히 시간이 부족하고 점점 자신 없는 수학에 쏟는 시간이 부족해지며 점수는 떨어지고 자존감은 낮아집니다.      


    그러니 수학은 우리 인생에 최초로 실패감만 전해주는 하등 필요 없는 수업이 됩니다. 어떤 일이든 목적이 중요합니다. 특히 교육에서는 목적이 결국 수준을 결정합니다. 전문가들은 수학교육의 목적을 수학은 학습하는 학생들에게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 이른바 도야(陶冶)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화 속 눈을 표현하는 CG, 실제이든 가상현실이든 수많은 방정식이 실 생황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수학적 추론 과정은 정신적 능력의 훈련에 적합한 요인(엄밀성, 간결성, 논리성, 일반성)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 어려워졌지만 수학을 공리부터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들입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통상 수학의 공식과 증명 과정의 엄밀성, 간결성, 논리성, 일반성을 좋아합니다.   

   

    물론 문과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이와 반대되지는 않습니다. 수학 교육의 목적과 특성은 서구 과학적 합리성의 기초가 되는 성향입니다. 우리는 어떤 공부든지 이러한 프레임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물론 각 학문이나 분야마다 적용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학 관련 글을 쓸 경우 당연히 근거나 분석의 틀, 논리가 엄밀해야 하며 간결해서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글의 진행이 논리 정연해야 합니다.  

    

    중언부언하면 장문이 되고 길을 잃습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일반화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주장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일반화(generalize)의 의미는 반복적이고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현실 세계를 설명해야 하는 인문학은 엄밀하게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에는 다양한 변수와 가정 등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함정이 도처에 있습니다.      


    그런데 수학과 과학은 상당 부분 이러한 가정과 오차를 제어하며 증명하고 발달했습니다. 그러니 명확한 세계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수학이란 세계는 다른 차원의 동굴일 수도 있습니다. 이론 수학과 현실의 차이를 조금은 메꿔주는 분야로 통계학이 있습니다. 통계학은 이론과 진짜 세계를 연결하는 구름다리 역할을 합니다.      

    수학의 엄밀성, 간결성, 논리성, 일반성 등의 특징은 컴퓨팅과 연계됩니다. 수학적 사고의 흐름을 따라 컴퓨팅도 연산을 합니다. 코딩은 사람이 아닌 컴퓨터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수학 기호도 일종의 언어입니다. 수학을 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언어에 친숙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수학 하나를 이해하고 실제 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어, 한자는 물론이고 수학적 언어와 컴퓨터 언어까지 이해하고 활용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수포자가 더욱 생길 것 같습니다.      


    수포자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이유는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르고 살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도 한어와 만주어를 몰라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어를 못한다고 옥살이를 하거나 독립운동가로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각 분야에서 국영수를 대학 수준까지 하지 않더라도 성공하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취업시험에서 국영수가 필요할까요?      


    사실 과거에는 조국 근대화를 이끌 근면성실한 인재 양성이 교육 목표였습니다. 당연히 성실성을 테스트해야 했습니다. 평생 같이 사는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개인의 성실성을 알 수 있었을까요? 조선에도 존재했던 고려의 음서 제도나 유럽의 귀족 등 신분제는 이러한 고민을 반영했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세습하며 그들 중에 관료를 선발해서 불확실성을 차단했습니다. 개개인의 능력은 높낮이가 있을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일반인 보다 당연히 높을 수 있습니다. 일반인과 세습 귀족과의 교육 격차는 현재의 저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산학도 서얼 중에서 서인만 입교할 수 있었고 시험을 볼 수 있었고 통역도 중인만 응시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거대해진 국가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리가 필요했고 당연히 다국적 기업은 더욱 절실했습니다. 국가와 조직에서 요구하는 적정 능력을 보유한 성실한 노동력, 군사력이 대규모로 필요했고 그에 걸맞은 근대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국영수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가장 값싼 선발도구이며 학생들이 평생 공부하지 않고서 중간에 잠시 반짝해서 잘하기 어려운 과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부의 머리 좋은 사람이나 잠시 외도했던 준수한 극히 일부의 청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균적인 두뇌와 평균적인 가정의 사람들이 그 정도의 학력을 갖추고 어느 정도의 대학에 들어가고 반쯤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초중고 12년간 크게 엇나가지 않고 학폭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며 선생님과 교우관계가 원만한 수준에서도 상당한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말합니다.      

    거기에 대학 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대학 학점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상대평가인 대학 학점을 3.5 정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국영수를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인문학 분야도 수학과 컴퓨팅 능력이 연봉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 해라입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존재하는 각종 고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럼 지금도 이런 이유로 혹은 반대의 이유로 국영수를 평가에 넣거나 뺄까요? 현재는 성실성만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IQ, EQ, InQ 등을 측정합니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개인주의 풍조 때문에 조직 적응력 등도 이야기합니다. 최근에는 AI가 면접도 보고 관상을 보는 회사도 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차라리 국영수만 할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진행되는 다양한 분야의 수행평가는 만능을 요구합니다. 이런 다양한 교육과 평가 방법이 있지만 그럼에도 국영수는 현재도 매우 유효합니다. 여전히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입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해도 모자라고 시간이 부족하니 얇고 넓게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깊이 있게 교육하기도 어렵습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은 대학부터 공부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늡니다. 과거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생들도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아직도 취업과의 연계성이 부족하니 전공 공부보다 스펙과 자격증 시험공부, 취직 시험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공부에 성실한 사람이 대략 성실하고 순종적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앞서의 논의대로 예체능을 비롯한 학업에서의 단 한 번의 외도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옆으로 새지 않도록 세심한 지도와 통제를 합니다. 실패와 좌절, 독립과 용기 등의 가슴 뛰는 말은 출산율 저하와 맞물려 사문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교육의 목적이 성실성, 변별력 등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런 것은 AI가 확실하게 우위에 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는 괴물 경쟁자가 언제 어디서나 제 옆에 있습니다, 과거에 대학원 시절에 조금 복잡한 모델을 PC로 작업하면 PC 혼자서 며칠을 혼자서 돌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잠도 자는데 PC는 혼자서 잘도 돌아갔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AI는 천배는 빠른 속도로 잘도 돕니다. 이제는 몇몇의 창의력 있는 소수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다수의 창의력, 협업 능력이 있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컴퓨터 연산 속도의 변화

    어떤 교육과정을 선택하든 모든 학문의 단계별 수업도 문제가 많습니다. 영어 문법의 부정사, 분사, 동명사… 등등, 수학 교과서의 다항식, 방정식과 부등식, 도형의 방정식, 집합과 명제… 등등의 단계별 수업은 결국 부정사와 집합 문제 풀이만 잘하는 학생을 양산할 수도 있습니다.      


    수학의 확률통계와 미적분은 아예 다른 책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분야로 인식되곤 합니다. 교육자 입장에서 입시라는 목적의 교육에서는 단계별 교육이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단계별 교육은 모든 과정을 성실하게 끝냈을 때만 효율적입니다. 오히려 중도 하차하거나 일정 부분만을 반복적으로 공부할 때는 안 하는 것보다 더 비생산적입니다.      


    당연히 타 과목과의 연계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적분의 개념을 배우기 전에 가속도의 법칙을 배우게 되면 수리를 글로 이해해야 합니다. 당연히 참고서적이 필요하고 심화 과정에서는 수리 개념을 별도로 배우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적분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외워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미적분을 가르치는 수학 선생님이 예시로 가속도의 법칙을 설명해야 합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뉴튼의 <프린키피아>를 읽지 않아도 고전역학을 배우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프린키피

    왜 뉴튼의 이론이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쌌지만 웬만한 지식으로는 읽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니 대학을 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지식인들은 이런 책을 읽고 이해했습니다.      


    얼마 전에 드디어 완역본이 출간되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의 여정은 우리가 왜 공부를 하는가, 왜 현대 과학의 경전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역사 교육에서 지금도 발생 연도를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짧아서이기도 하지만 역사란 결국 시간에 종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 교육은 자칫 사건 위주의 얇은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수행평가로 작문, 발표와 병행해서 진행합니다. 교육과정을 분해하고 이를 학년별로 난이도를 구분하여 나열하면 진도를 적응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에 우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혹은 기하는 잘하는데 대수를 못하는 학생처럼 선택에 따른 우열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대수와 기하를 동시에 잘하는 학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많습니다.      


    특히 확률통계처럼 나중에 배우거나 배우지 않아도 그만인 부분은 항상 모릅니다. 그런데 수학교육의 목적과 그 외 실생활에서의 적용을 생각해 본다면 확률통계를 배우지 않는 것은 지극히 손해입니다. 현대 서양 과학의 발전은 귀납법(歸納法, induction)을 강조한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과학적 합리주의(Scientific Rationalism)로 생각하는 견해가 다수이며 귀납법적 사고의 기초가 통계학이기 때문입니다.     

[학문의 진보], [신기관]에 실린 삽화. 상단 왼편과 오른편에는 ‘감각적 세계’와 ‘지성적 세계’가 각각 그려져 있다. 학문의 진보로 두 세계가 일치하는 순간을 맞이한다는 내용

    어쩔 수 없이 단계별 수업을 하더라도 모든 것을 100% 이해하고 넘어가기를 기대하기보다 전체를 빠르게 이해하고 반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문제의 난이도를 높여 가며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하튼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공부를 하던지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영수를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학 경전을 밤낮없이 공부한 것처럼 그곳에 진리와 길이 있다고 믿고 정진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지금이 공부법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고 해서 공부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최소한 신분에 따라 공부하는 시대는 아니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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