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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Feb 18. 2024

#18 스승과 제자_보고 듣고 말하기

# 스승과 제자_보고 듣고 말하기

          

    성인의 한자인 성(聖)을 분해하면 듣고(耳) 말하는(口) 왕(王)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살벌한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설적인 요순시대의 성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질고 군자다운 왕이 있다면 전쟁도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시작이었을 겁니다. 불교의 미륵신앙이나 기독교의 메시아 같은 존재를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이런 왕이 현실에 존재할 리가 없으니, 성인이라면 혹시나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겁니다. 듣고 말하는 것의 귀재가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붓다였습니다. 물론 전해지는 대부분의 언행이 그들의 제자들에 의해서 증언되지만 그 정도 훌륭한 제자들이라면 믿어도 될 듯합니다.     

 

    어떤 종교는 글이 아닌 구전으로 교리를 전하기도 했지만 그리스 철학, 기독교, 불교는 다행히 수많은 글로 남겼습니다. 이들은 삶의 지혜와 신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학습하고 깨달았으며 교육합니다.      


    이들은 그들의 깨달음을 전한 방식은 산 교육의 방식이었으며 이후의 인류 교육방식의 틀은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선행, 올곧은 행위 등의 솔선수범과 외롭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말로 눈앞에서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의 제자로 선별된 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으며 말씀을 전하기 위해 떠나고 투쟁하며 글로 남깁니다. 그들의 고난은 스승보다 더 가혹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배교(背敎, apostasy)하기도 하지만 굳건히 자리를 지킨 이들은 지금까지도 칭송받습니다.   

   

    저는 이 방대한 서사시를 교육의 관점에서 성인을 바라보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순서는 관계없지만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붓다 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순서에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BC 399)의 문답법은 철학적 사유의 방법이며 어느 정도 사상의 핵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지식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인 학습과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자발적인 과정이 중요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사회 현상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단순히 옮기는 태도를 비판하며 편견에 의한 판단을 엄격히 배제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주제에 대해 대화 상대의 의견을 도출하고 그 의견의 타당성을 검토함으로써 대화를 진행합니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시인하며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방식입니다.      


    경청의 단계라고 할 수 있으며 중언부언하지 않도록 중요한 개념들을 명확하게 정의해서 상호 간에 주제나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논증을 중요시 여겨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모순이나 결함이 드러나도록 하며 이를 통해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재고하도록 유도합니다.      


    물론 이런 것 말고도 소크라테스는 논증을 위해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기, 불확실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의문을 유지하거나 자기 반박, 사전 지식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가정하지 않기, 윤리적 해결방법 제시 등 다양한 방식을 구사합니다.      


    특히, 대화를 통해 상대자가 그의 표현대로 ‘등에(Tabanidae)의 찌름’이라는 순간을 맞이하게 합니다. 진리를 감싸고 있는 막이 찢어지는 순간을 말하며 이런 순간은 많은 아이러니 속에서 탄생합니다. 말끝마다 ‘자네가 분명히 옳으네.’라고 반론을 피는 그의 대화술은 상대방의 머리를 엉클어 놓고 다시 정립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현대적 관점으로는 정신분석의 수준으로 보이고 실제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파격적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스스로 어머니의 산파 기술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자신을 지식, 영혼의 산파라고 하며 산파술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은 헤겔(G. W. F. Hegel, 1770~1831)의 변증법으로 발전하며 논증체계의 기초가 됩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에서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법을 지속해서 적용합니다. 그런데 후기 작품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으로 변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상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인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가 봐도 귀족은 아니었는데 그의 제자들은 플라톤을 포함해서 대부분 귀족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재능을 대가로 하는 소유를 불명예로 여겼으며 당시 소피스트들이 비싼 수업료를 받는 등 지혜를 돈벌이로 간주하는 행태를 비난했기 때문에 무상교육을 합니다.      


    당연하게도 그는 교육에 차등을 두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에 완전한 교육 평등을 바라는 것은 지금의 우리를 반추해 봐도 정당한 요구는 아닙니다. 플라톤은 여러 이유로 아케데미아(Academia)를 열었고 가장 훌륭한 제자는 아테네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카데미아

    소크라테스는 그의 재능만으로도 차고 넘치도록 정치적 성공이 가능했지만 이런 성공의 간단한 방정식을 거리로 나가 상식을 공격하고 절대 진리에 대한 사유를 구축한 것과 플라톤 같은 훌륭한 제자를 둔 것만으로도 성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이들이 성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폭압의 현실 정치권력에 도덕으로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에 등장하는 파이돈은 심지어 남(크리톤)이 사준 노예였으며 결국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 만듭니다. 그는 독약을 먹기 전에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이다가 대화를 통해 깨닫고 신이 허락한다면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나쁜 선생(소피스트 등)을 둔 나머지 자신이 지닌 모든 씨앗을 허비…진리보다 거짓과 겉치레에 더 신경을 쓰는 젊은이도 있다." 좋은 스승은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공자(孔子, BC 551~BC 479)는 춘추시대 말기에 노(魯)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자의 자(子)는 이미 스승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후대에 붙여집니다. 공자뿐 아니라 맹자, 순자, 노자 등과 송의 주자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그 시대는 주 왕조(진시황이 최초의 3 황 5제를 빌려 황제라 칭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중국은 12개의 제후국(諸侯國)으로 갈라져 서로 패권을 다투던 때였습니다.     

 

    제후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은 당연했고 제후국 안에서도 내란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공자는 주나라 초기의 조화로운 시대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인(仁), 예(禮), 덕(德)을 강조합니다. 국가, 왕, 신하는 전설적인 은, 주 나라 특히 주나라를 모델로 하고, 개인 차원은 군자(君子)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논어(論語)에는 그의 여러 제자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공자가 쓰지는 않았지만 초판이 써질 당시에는 이미 공자의 제자들이 상당히 많아서 논어를 통해 공자의 사상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의 글쓰기가 축약과 비유, 그리고 그전 고사를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해석은 언제나 다양하고 현재도 새로운 해석이 존재합니다. 주자(朱子, 1130~1200)가 대표적으로, 남송(南宋, 1127∼1279) 시대의 신하이기도 했던 주희는 유학 경전에 주석을 달며 새로운 사상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주자는 역경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공자가 주역을 읽을 때 책을 엮은 가죽끈이 끊어진 것을 교훈 삼아 공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공자의 제자들은 후대의 평가로 70명의 가장 뛰어난 제자를 70자, 72자로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의 12제자 곱하기 6을 하면 72자입니다.      


    제자의 숫자가 비교적 정확한 것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이 많은 제자 중 경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공자가 아꼈던 두 사람이 자로(子路)와 안회(顔回)입니다. 자로는 무인에 가까우면서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부족함을 알고 질문하며 신념이 강하고 다소 다혈질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반인들에 가까웠습니다.      

공자와 제자들

    반면 안회는 학덕이 높고 공자가 매우 아끼는 천재이자 학문을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안회만이 공자가 원하는 군자(君子)에 가까웠으며 조화로운 자였습니다. 문제는 공자의 예상대로 자로는 용감하지만 참지 못해 정쟁에 휘말려 죽고, 안회는 몸이 약해 젊은 나이에 요절하며 둘 다 공자보다 먼저 죽습니다.      


    정확하게는 공자가 당시의 평균 연령보다 오래 살았고 제자들이 먼저 죽으니 슬픈 감정을 후대에 남기게 됩니다. 자로는 항상 공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공자는 아주 자세히 때로는 감정을 드러내며 나무라기도 하고 답답해하기도 하면서 질책하고 설득합니다.      


    안회의 질문에는 같은 질문에도 감탄하고 칭찬하는 등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자로를 절대로 미워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안회보다 자로에 대한 답처럼 다소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학 공부의 목적 중 하나는 어리석은 백성을 교화시키는 일입니다. 여하튼 최근에는 이런 논어의 구성을 맞춤식 교육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는 데는 불교를 따라올 종교, 철학을 찾기 어렵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  BC 563~BC 483)는 브라만교(베다교, 힌두교)에 밀려 토착 종교 정도였던 불교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힌두교에 비해 불교의 교리는 어쩌면 단순합니다. 브라만교의 교세 확장 시기에 불교의 간단명료한 세계관 때문에 힌두교 교리를 다소 완화시켰다고 합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물론 깊게 들어가면 매한가지로 어렵지만 붓다가 된 싯다르타는 왕에게는 왕의 언어로 백성에게는 백성의 언어로 가르쳤습니다. 싯다르타는 한 지역의 왕자였으며 최소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현실 민중의 삶을 접하고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매우 다양하지만 어느 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고 출가합니다.      


    즉 종교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의 속박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 번뇌를 느끼고자 수행하고 유혹을 물리친 후 큰 깨달음 ‘보리’를 얻고 윤회에서 해방되며 붓다가 됩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첫 설법을 하고 그들은 첫 번째 비구(받는 이)가 되며 단번에 깨닫습니다.      


    붓다는 윤회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의 신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오욕칠정에서 벗어나 있으며 본래 그런 모습인 것처럼 존재합니다. 설득하려 하지도 않고 논쟁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이야기할 뿐입니다. 다만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화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독화살 맞은 사냥꾼의 예가 유명합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보여준, 가르쳐 준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붓다의 자기 수양의 핵심은 명상이고 그가 보여준 것처럼 설법으로 자비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붓다도 죽음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음식이 상한 것을 알고 있었으며 죽음을 벗어난 존재임을 알리고 언행을 일치하기 위해 받아들입니다.      


    그의 사후 가르침을 전하고자 다양한 종파가 생겨나며 크게는, 대중과 윤회를 함께하며 이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大乘佛敎)와 개인의 해탈을 중시하는 소승불교(小乘佛敎)로 나뉘게 됩니다.    

  

    어떤 게 붓다의 뜻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대승불교는 한중일로 전해지고 소승불교는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라오스 등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사실 싯다르타와 아소카왕의 불교 부흥 시기 원형은 소승불교였습니다. 대승불교가 나중에 생겼지만 교인이 많고 불교 운동과 맞물려 다양한 경전이 나오면서 기존의 승려를 힐난하며 만든 용어가 소승(작은 수례) 불교입니다.    

  

    여하튼 붓다의 설교는 지금의 학교 교육과 유사합니다. 그는 모든 자들에게 설법합니다. 어떤 상황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으며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줍니다. 그의 사상과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동양의 국가가 성립하는 단계로 불교를 국교로 택하는 것을 손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는 인간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했으며 정치, 사상, 문화, 제례, 복색, 기복 등과 더불어 교육 체계를 동시에 전합니다. 불교 예술은 서양의 고대 종교 예술과 맞닿아 있습니다. 중앙집권은 부처의 뜻이 아니었지만 최소한 민중들에게도 부처의 자비가 전해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설법은 일종의 교육이었으며 승려는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현대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대처럼 제정일치(祭政一致) 국가에서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Jesus Christ, BC 4년~AD 30)는 어떻게 보면 완성형입니다. 일각에서는 후대에 만들어진 종교일수록 교리나 체계의 완성도가 높다고 합니다. 더욱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본래 유대교와 기존의 다양한 종교에서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뚜렷합니다.      

예수의 산상설교

   예수도 직접 글로 남긴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의 언행도 심지어 신약에서조차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왜 그런 불확실성을 남겼을까요? 아마도 유대교의 경전인 모세 5경의 문화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세 5경을 비롯한 구약의 내용들은 아브라함, 노아, 다윗, 솔로몬 등 신화적, 역사적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일화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 종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본래 후대로 가며 더욱 신격화되고 그들의 실패는 전하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특히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들의 배교와 우상 숭배는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신은 그들의 배교행위에 당연히 노하고 벌하며 멀리하기도 합니다. 유대교가 이런 권선징악에서 멈췄다면 그 유명한 탈무드나 랍비는 존재하지 못했을 거고 기독교나 이슬람교도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구약에서는 신의 분노와 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계와 용서가 뒤따릅니다.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기록하고 전하며 언제나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대의 인간은 신 앞에 너무도 초라했고 신의 의지를 알기에 미약했습니다.    

  

    아마도 구약을 전해 들은 일반적인 유대인들에게 신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리스 도시국가에게 신이 절대적 존재인 이유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보면 신들의 일관성 없는 모습과 잔인하고 포악하며 안하무인인 태도에 화가 나고 동시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 어느 날 사소한 이유로 신의 분노를 사게 되면 왕도 죽거나 저주를 받을 수 있으니 일반 사람들의 인생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삶의 고통을 신의 의지로 인식하던 시대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예수는 달랐습니다.      


    신의 의지는 인간 의지의 반영이라고 생각했으며 선지자의 역할은 신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라 보았으며 바리새인이 신의 뜻을 버린 자라 칭합니다(바리새인은 근본주의자였던 사두개인보다 현실주의적이었음).     


    소크라테스는 대화술과 반어법에 뛰어났고 붓다는 설법에 탁월했습니다. 공자와 예수는 다양한 화법과 어투, 예제에 능통했습니다. 공자는 과거의 역사에서 다양한 예를 가져오는 반면 예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실생활에서의 예제로 설명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려운 율법으로 유대인들을 옭아매는 것을 비판하고 왜 쉽게 설명하는지 이유도 말해줍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은 비난하지만 그들의 율법이나 예언에 대해서는 비난하거나 찬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율법학자와 급진적이고 교조주의적 행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예수를 시험하고 예수의 기적을 폄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예수는 기적 또한 이용하지 않고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기다려 줍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부정할 때도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는 그 자체로 구루가 되었습니다. 고난 받는 유대인과 로마에 지배받는 피지배 민족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유대민족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개인의 구원으로 완성될 것이며 신앙과 믿음, 신을 향한 사랑만이 영원함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도덕이 어떻게 신의 의지와 연결되는지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용서,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을 논리적으로 간명하게 정의 내립니다. 새로운 시대에 내려주는 처방 같은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으며 복잡하고 중이적이면서 난해한 율법을 신의 대리자가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산상설교(山上說敎, Sermon on the Mount 또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할 때는 권위 있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제자들에게는 따뜻하고 섬세하게 지도합니다.      


    진리와 영혼의 구도자와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신이란, 신의 아들이란 이런 정도는 돼야 한다는 듯이 모든 것을 행하고 떠납니다. 그는 직접적인 화법보다 비유나 은유가 개인의 구도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탈무드 문화가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외워서 하는 것과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복음을 보면 제자들을 비롯한 대중의 질문에 예수가 즉답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질문들의 대다수가 상당히 공격적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예수가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른 성인들은 이미 상당히 세를 유지한 상태의 스승이었지만 그들 눈에 예수는 일반인 보다 조금 나은 혹세무민 하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 시각을 예수가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거침없이 기존 교단의 권위와 제례를 무너뜨립니다. 심지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만찬 이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시장을 모두 엎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여러 예언과 당부,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배신하는 제자도 있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었으며 예수가 타협하기를 원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합니다.      


    이 짧은 말에는 그의 사상, 신념, 제자, 전도 등 모든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의 말에 베드로는 불안함을 들어내고 예수는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합니다. 다시 묻는 제자에게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논쟁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예수는 죽음과 부활로 가르침을 완성합니다.      


    소크라테스, 공자, 붓다, 예수 모두 2,000년 전의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진리와 영혼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자들이 아닌 진화의 정점에 선 자였습니다. 고대 종교의 시대를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드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한 명의 깨달은 자, 구루가 인류 역사에 주는 함의를 일깨웠으며 전달하는 자의 가치를 바로 세웠습니다.     


    특히 예수는 어떤 식으로 보아도 기존의 예언자보다 명예나 부가 많지 않았으며 당시의 사회 통념으로도 존경받거나 주목받을 위치에 있거나 어떤 행사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타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유대를,  돌아간 뒤에는 지구 전체에서 2,000년 동안 스승으로 경외되고 있습니다.   

   

    그는 기존의 공고했던 유대교의 가치관과 로마 황제의 권위를 뒤집고 비천하고 비루한 자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하며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고, 이교도 여인과 죄를 지은 여인에게도 가르침을 실천하다 가장 낮은 자들의 형벌로 죽어갑니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예수는 죽음을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완성되기 위해 왔기 때문에 부활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마지막까지 보여줍니다.      


    소크라테스, 공자, 붓다, 예수 모두 사후에 사상과 교리가 더욱 깊어지고 갈등과 다툼의 광풍이 지나갑니다. 이 위대한 성인들이 만약 사후의 일을 알았다면 엄청 꾸짖거나 아예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국가에서나 종교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 통합을 위한 갈등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진리에 대한 사랑, 공자의 어진 마음(仁, 인), 붓다의 자비(慈悲, Mercy), 예수의 사랑은 아무리 오래되도 황금률로 우리에게 남아있지만 아무나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종교 사상이든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교조주의적인 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조주의(dogmatism)는 어떤 교리나 이론을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진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사상적 태도를 말합니다. dogma라는 의미가 부정적으로 정착된 이후에 한자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교조주의는 매우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본래 의미는 진리, 신념에 가까웠으며 묘하게 힌두교의 다르마(dharma)와 닮았습니다.      


    다만 현대적 개념의 교조주의는 어떤 교리나 이론을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진리로 여겨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신념만을 중요시 여깁니다. 또한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만 상황과 사물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난과 역경으로 둔갑시켜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교조주의는 각자가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고, 갈등이 심화되며 기존의 관념만을 고수하기 때문에 진행될수록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초기의 종교와 사상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조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본래 뜻대로 진리와 신념으로 교인들이 똘똘 뭉쳐야 합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그와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자들이 스스로 성인들을 다소 교조적으로 받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의 교만은 도리여 폭력과 저항을 낳으며 성의(聖意)를 왜곡하고 무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오직 진리만을 위해 삶을 강조하고 무욕, 무소유를 주장합니다. 공자의 사상은 치국(治國)을 하기 위함이었지만 말년의 공자는 무소유, 소박하고 자족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붓다는 사상 전체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는 집착에서 생기므로 내려놓고 벗어나야 해탈할 수 있습니다.   

   

    예수도 현실의 삶을 인정하면서도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최소한의 소유만을 권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하면서 오히려 소외받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와는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시기에는 받아들여졌을까요? 오히려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폭력과 죽음이 가까이 존재하던 시기였습니다. 성인들에게 죽음은 그저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스승이 훌륭하다고 반드시 제자가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억압받고 소외받는 민중들과 오욕칠정에 괴로워하며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 주는 수많은 제자들이 나왔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도 성인이자 스승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귀가 2개인 이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위해서라는 설과 단순 대칭설, 하나만 있는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많이 들어라 등등 다양합니다.      


    현대적 의미도 비슷합니다. 자율 주행 차량이나 군사용 차량 등의 연구 진행 과정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 주행, 비행 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인지, 지각입니다. 인공지능이 부각되기 훨씬 이전에도 군에서는 무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미사일과 어뢰 등 현대의 무기체계의 정보판단과 발사는 모두 당연히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발사 이후의 단계에서 능동적으로 목표물을 찾아가는 기능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미사일, 어뢰는 목표물에서 나오는 전파, 열, 소음을 추적합니다.      


    목표물과 미사일의 속도와 해양의 다양한 소음을 고려할 때 인지하는 센서와 추적하는 시스템의 정교함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3차원의 공간에서 위치, 속도를 측정하고 자세를 제어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평형감각은 2차원 공간을 가정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3차원 공간에서 간혹 착각을 합니다. 

     

    여하튼 이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기관이 귀의 가장 안쪽 부분인 내이(內耳)에 위치하고 있는 반고리관(semicircular canal)입니다. 몸이 얼마나 회전하는지를 감지하는 평형기관으로 귀의 가장 안쪽 부분인 내이에 위치하며 안에 있는 림프액의 변화나 섬모의 감각으로 판단합니다.      

    림프액(lymph)과 섬모(纖毛, cilium)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데 항공기가 장시간 선회할 경우 원위치로 돌아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사람은 아직 선회하고 있지만 원위치로 회복된 것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공군에서는 버티고(vertigo)라고 하며 계기 비행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런데 공군의 버티고는 단순히 비행착각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기계의 출력 수치와 다를 때 순간적으로 행동이 제약되는 심리적 위축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처음 버티고를 경험한 조종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군에서는 체험 반복 훈련을 합니다.     

 

    버티고는 야간 비행 등 시각이 제한될 때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시각 정보가 제한될 때 조종사는 계기로만 비행을 해야 하지만 외부의 특정 물체가 시각에 들어오는 경우 인간의 뇌는 자동으로 자세, 속도 등을 분석하는데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합니다. 조종사는 인생 처음으로 자신의 지각 판단을 부정하고 기계를 믿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최소 수만 년을 내려온 생체 본능, 지각을 믿지 않고 겨우 100년 남짓 발전한 기계를 믿어야 합니다. 무인기를 포함한 모든 기계에는 자이로스코프 등 자세 제어 센서를 탑재해서 움직임을 통제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인간의 눈, 귀, 코, 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뛰어넘는 기계는 만들지 못합니다.      


    물론 어떤 특정 영역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이미 예전에 뛰어넘었지만 그것도 어떤 한 부분의 기능을 극대화시킨 정도에 불과합니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교통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기 위해 눈, 귀와 같은 감각기관이 많이 있으며 이런 카페라, 집음기 등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 AI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미사일이나 어뢰에 적용하던 알고리즘의 수백 배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컴퓨팅의 발전은 문제를 선택과 집중의 문제가 아닌 과잉 데이터의 생산과 소비의 전장으로 옮겼습니다. 인간이 눈 2개, 귀 2개인 이유는 본래 삼차원 세계를 고려한 신의 배려였습니다. 심지어 양쪽 눈과 귀의 적당한 거리마저 정밀하게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속도를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추가적인 진화를 하든지 보조 기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 주행 가능한 기계들은 인간보다 더 많은 감각기관을 필요합니다.  

   

     특히 기계의 속도를 고려할 때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행동할 것인가가 승패의 관건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이 프로세스에서 초기 단계인 인지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누적되는 오차로 인해 결과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사실 인간이 어떻게 보면 단순한 감각기관으로 다른 동식물을 압도하는 이유는 통합적 사고와 상상이 가능한 인간의 뇌, 신피질과 피부 덕분입니다. 본래 눈마저도 피부에서 진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감각 이외에도 표정과 접촉 등으로 감정마저도 피부를 통해 전해지니 다른 감각기관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2개의 눈, 2개의 귀와 피부를 통해 3차원 공간을 이해하고 시간을 덫 씌우며 라벨(기억) 작업마저 순식간에 처리합니다. 무섭기도 한 뇌의 능력은 심지어 다른 중대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병렬처리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거의 다수의 행동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 번 세팅된 라벨 작업은 다시 하지 않습니다. 고양이인지 개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모든 판별 프로세스를 돌리지 않아도 ‘척 보면 아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영역도 경험과 기억 세포에 의해서 재구성합니다.      


    한편 이런 절차는 순차적이지 않고 병렬적이면서 몇 가지 단계는 뛰어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무의식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보고 듣는 행위의 중요성을 오히려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구태여 의식적으로 보고나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평상시에는 별 다른 감상이 없지만 지각 능력 중 한 가지라도 비정상일 경우에는 적응될 때까지 의식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고 듣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말하기만을 무한하게 반복합니다.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이전에는 언어가 발전하지도 않았지만 보고 듣는 게 생존에 더 필요했을 겁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보고 듣는 행위가 말하기보다 더욱 중요했을 겁니다. 종교 철학적 사유가 시작된 이후에, 언어가 어느 정도 발전하고 나서야 다양한 말하기가 생겼으니 말하기가 가장 나중에 진화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부모님, 선생님, 군대 선임의 공통점은 말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말이 직업이고 본업 이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하기 싫거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        


    말을 줄이라고 하는데 사실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참으면 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소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말을 줄일 수 없다면 말을 잘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많은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도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 할 듯합니다. 물론 부모님, 선생님, 동네 형은 때로는 듣기 싫지만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그럼 듣기 좋은 소리는 7, 싫은 소리는 3 정도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말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의 니즈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말을 잘 듣고 잘 봐야 합니다. 유재석의 리액션은 참으로 좋은 본보기입니다. 결국 말을 잘하기 위해서도 잘 듣고 잘 봐야 하니 말하기는 다시 후순위입니다. 가장 나중에 진화했으며 인류 문명, 언어와 가장 가깝기 때문인지 말하는 방법은 종교, 철학 스승 분들을 통해 많이 전해졌고 교육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기, 듣기 방법은 별로 못 들어 봤습니다. 오히려 명상을 하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가 눈과 귀를 닫고 면벽수도(面壁修道)하는 종교는 봤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수행 중 ‘묵언(默言)’ 수행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동굴로 들어가 면벽수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묵언을 하라고 하다니, 이 정도면 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아마도 절대적인 금욕의 굴절된 형태로 보입니다. 인도 밀교의 수련법은 육체적 고통도 동반합니다.     


     인류 최대의 스승이며 베스트셀러는 성경입니다. 성경에는 참으로 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종교와 신념에 따라서 더 좋아하는 경전이나 책이 있을 수 있지만 불신자를 포함한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한 번은 감동을 선사했을 성경에는 특히 좋은 말씀만 모아놓은 잠언(Proverbs)이 있습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1:7)이라고 교훈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잠언은 세상을 사는 인생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지혜를 짧은 경구, 댓 구들을 소개한 일종의 시가서입니다. 저자는 잠언 대부분을 작성한 지혜로운 왕이며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Salomon, BC 990~931)으로 보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재판

    그는 완전한 참된 성군이며 명군이었습니다. 그의 치세 기간은 유대 민족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대평화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명시된 것처럼 이교도 첩을 많이 두고 결국 그들에게 동화되어 우상을 숭배합니다. 솔로몬과 우상 숭배는 뭔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지만 그의 아버지 다윗의 죄처럼 나약한 인간이기에 하는 잘못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말년에 죄를 회계하며 잠언을 작성하지만 신의 분노는 쉽게 살아지지 않으며 다윗을 선택한 신의 의지로 말미암아 솔로몬 사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잠언에는 솔로몬의 이런 때 늦은 후회와 삶에 지침을 제공합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다른 지혜문학인 욥기와 전도서에서 볼 수 있듯이 잠언도 도덕적 가치, 인간 삶의 의미, 정의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욥기, 잠언, 전도서는 성직자들 뿐 아니라 평민들의 삶에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지혜문학이 다루는 문제는 동시대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다룬 문제들이었으며, 이후의 모든 자기 계발서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육 내용은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보다 여호와의 수많은 은혜로움을 받은 자로 어떻게 인간의 욕망에 그토록 쉽게 무너졌는가입니다.      


    만약 그가 삶 속에서, 가장 욕망이 들끓던 젊은 날에 잠언의 10분의 1이라도 지켰다면 그는 전 세계의 스승이 되었을 겁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의 <명상록>이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Nikolayevich Tolstoy, 1828~1910)의 <고백론>과 유사합니다.      

톨스토이

    다만 아쉬운 것은 아우렐리우스, 톨스토이 모두 성인급의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의 인간적인 실수들, 아우렐리우스는 5 현재 중 유일하게 아들(콤모두스)에게 황제를 물려주었지만 그의 우려대로 로마 최악의 황제 중 한 명이 되며 톨스토이는 <고백록>을 통해 자신의 젊은 날의 방탕을 고백했듯이 그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온갖 욕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성경의 그들처럼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신은 벌을 하지만 용서한다면 사실 그들이 남긴 글처럼 절제해야 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자신들은 실컷 다 하고 나서 세월이 지나서 할 수 없게 되니 젊은이들에게 절제하고 인내하라는 말은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글은 자기 고백서이며 신께 용서를 구하는 반성문일지도 모르며 그들보다 절제하고 인내하는 대다수의 평민이 아니라 욕망의 굴레에 빠졌던 사람들에게 면죄부, 안식의 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스승이란 이렇게 어렵고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죽어서도 평가받는 길입니다. 평생을 교만하지 않고 신과 생명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산다는 것은 성인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인간이기에 너무 위대한 스승이 되려 하지 말고 조금만 잘못하고 자주 회개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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