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날다

18. 항공여행의 정취와 식사

by 최성길


비행기 객실의 벽이 더넓게 투명 유리로 바뀐다면 어떨가? 그래서 창이 넓은 건물에 있는 것처럼 바깥을 볼 수 있다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낯설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비행기의 속도 많큼이나 다채롭게 변하는 바깥의 현상들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류가 좋은 창공에서, 거대한 활처럼 직선인듯 굽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하게하는 수평공간에서, 붉은 석양 속에서, 별이 촘촘한 어둠속에서, 가득찬 달이 뿌리는 은색의 침묵속에서, 빛을 감싸고 솟아오르는 새벽에서 그리고 각양 각색의 기상현상,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시나브로 움직이는 바람과 구름들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정서적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기쁨과 행복 고뇌와 어려움을 잠시 색다른 경험과 마주하며 다른 시각으로도 생각해보고 순화시키며 삶을 깊이 있게 관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게다가 정찬과 커피 한잔이 추가된다면 여행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훤히 트여있는 조종석(cockpit)에서 언제나 맞이하는 현상들에 조종사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않는다. 익숙해지고 타성에 젖어서이기도 하고, 일하는 공간이고 이성적이고 기술적인 판단만이 요구되는 공간이며 때로는 극복하고 회피해야 하는 현실을 만나고 해결해야 하는 임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Cockpit은 정찬과 찬 한잔을 즐기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종실은 조종사들의 업무공간이다. 그곳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커피를 즐기기도 한다. 조종사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승객들의 것과 분리되어 준비되며 필요한 시간에 맞추어 제공된다. 지상에서의 휴식이 운항을 위한 준비의 연장인 것처럼 음식을 먹는 문제도 승객과 운항에 관련하여 안전 규칙에 저촉받는다. 음식의 질과 관계없이 업무상 특별 취급을 받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맛이 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기장과 부기장이 같은 음식을 선택할 수 없으며 음식을 취하는 시간도 기장 부기장 달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 음식의 조리가 잘못되거나 변질하였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동시에 영향을 받아 비행 불능상태가 되는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내에서 업무 후의 식사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일과 중에는 업무에 우선하는 식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승객의 안전에 대한 고려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아무튼 조종실의 식사는 근사한 환경과 경치에 비해 겸손하고 약소하다. 게다가 고고도의 조건은 지상과는 다른 기압 조건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식을 하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승객으로 비행 중 식사는 다를 수 있다. 조종사들은 다음 근무를 위해 승객으로 여행하여 그곳에서부터 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국내선이라든지 짧은 구간의 비행에서는 승객들과 좌석 구분이 되어있지 않지만, 장거리 국제선을 승객으로 여행할 경우는 보통 퍼스트 클라스나 비지니스 클라스의 자리를 받게된다. 이러한 경우엔 승객들과 같은 대접과 취급을 받게 되며 자유로이 식사와 음료를 즐기게 된다.

싱가포르 항공에서의 기내 서비스의 예를 들어본다. 매번 퍼스트클라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나 일반승객에게 일등석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곳에서는 어떠한 서비스가 이루어지나 궁금증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몇해전 유월 어느 날, 암스테르담에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의 일정이 나왔다. 싱가포르에서 암스테르담까지는 일반 여객으로 가서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일정이다. 비행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조종사들에게 있어 가족들과 오붓한 여행을 제외하고 비행한다는 자체가 그리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일의 일부로서 비행하는 거야 가족을 부양하고 나 자신의 성취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다음 근무를 위한 장거리 여행은 그다지 내끼는 여행은 아니다.

미리 객실 여객과에 전화를 해서 승객현황을 확인하고 퍼스트 클라스에 아직 공석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으면 비즈니스 클라스, 최악의 경우는 일반석으로 밀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도 있었다. 시카고에서 시작하는 연결 비행의 일정이 나왔고 싱가포르에서 뉴욕까지 A340 일반석을 받아 18시간 25분을 비행해서 다시 뉴욕 공항에서 2시간 30분을 기다린 후에 지역 항공기를 타고 시카고에 닿은 적이 있다. 죽을 맛이었다. 일반승객들도 그렇게 가는데 왠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순수 여행 또는 비지니스를 위한 것이 아니고 늘상 있을 수있는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 규정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여행은 급여 지급 대상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심한경우에는 그곳까지 갔다가 만일, 화물 비행에서 종종 있듯이 일정이 취소되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 부담도 있다. 며칠간의 시간을 아무 이유와 급여 없이 소비한 샘이되는 것이다.


아무튼, 다음 비행을 위해 부기장과 같이 암스테르담행 퍼스트 클라스에 탑승했다. 입구에서부터 정중한 안내를 받는다. 가방과 짐이 승무원들에게 건네지고 재킷 또한 옷걸이를 가지고 와 기다리는 승무원에게 건넸다. 자리에 안내받으며 신문과 잡지를 받고 과일 주스 한잔을 서비스받았다. 이곳저곳에 서서 또는 앉아서 자유롭게 읽을거리를 훑어보고 더러는 두셋이 모여 가벼운 얘기를 나눈다. 고참 여승무원이 다가왔다. 승객들이 혼자 남아있어 어색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배려였다. 근무 패턴이 어떻게 되며 암스테르담에서 며칠간을 휴식하며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등 언제나 오가는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웃음과 가벼운 대화가 이루어진 후 음료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유명한 상표의 샴페인을 주문했고 땅콩과 간단한 핑거푸드가 제공되었다. 샴페인과 음료는 취향에 따라 보충이 계속되었고 언제나처럼 나는 한잔으로 만족했다.

비행기는 이륙하여 만 피트를 지나며 시트벨트 사인이 꺼지고 승객들은 자리를 이동하고 화장실을 갈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양고기 사태 즉 가느다란 막대에 끼워져 구워진 양고기와 꼬치와 땅콩 소스 그리고 붉은 포도주가 제공되었다. 이 서비스가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다. 래드와인의 향과 양고기꼬치는 언제나 취향에 딱 맞았다.

곧이어 객실 승무원들은 각 승객의 음식을 미리 주문받았다. 다소곳이 무릎을 꿇거나 살짝 자세를 낮추어 승객과 눈높이를 맞추어서 몇 가지 제공된 메뉴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을 했다. 연어구이와 적포도주가 있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얼마나 됐을까 항공기의 잔잔한 엔진 소리로 항로 고도를 취했음을 감지 할 때 즈음 깔끔하면서 풍미가 있는 정찬이 시작되었다.

우선 케비어를 서비스받았다. 회사 로그가 박혀있는 하얀 중간접시에 케비어와 케비어를 얹어서 먹을 수있는 비스켓이 놓여있고 접시 한쪽에 양파와 가는 파 다진 것이 놓여있었다. 와인 한잔을 머금고 준비된 케비어 알갱이와 다진 양파가 올려진 비스켓 셋트를 입에 밀어 넣었다. 톡톡 터지는 케비어의 알과 양파의 향과 아삭거리는 비스켓 사이로 레드와인이 스며듦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제법 양이 부풀려있는 야채 셀러드가 제공이 되었다. 승무원 한 명이 원통형의 후추통을 가져와 후추를 뿌려주고 스위스 치즈를 작은 강판같은 것으로 즉석에서 실같이 뽑아 세러드위에 얹어주었다. 달콤하고 마늘 향이 살짝 나는 로컬 소스를 곁들였다.

매번 코스가 바뀔 때마다 다른 접시가 제공되었고 목수 아저씨들의 두루마리 공구 세트 주머니처럼 흰 수건에 여러 개의 포크와 나이프들이 펼쳐져 나열되어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사용되었다.

서너 단계의 다른 음식과 음료 서비스가 진행된 후에서야 오늘의 주 음식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커다란 흰색 접시 위에 어른 손바닥만 한 연어가 옅은 밤색으로 적당하게 구워져 나왔다. 아스파라거스 줄기 몇 개가 같이 놓여있고 알 수 없는 아이 주먹만 한 녹색 어린순의 야채가 놓여있었다. 비어있는 접시 양옆 공간으로 초콜릿 색의 누군가의 형식없는 사인(Autograph) 같은 선의 표현들이 보였다. 한두 명의 승무원들이 빵 바구니를 들고 다녔다. 갓 구워낸 빵의 향기가 미각을 자극했지만 단호히 사양했다. 이렇게 단호히 라는 표현을 쓰며 강조하는 것은 퍼스트 클레스에서 제공되는 모든 음식을 소화하기는 역부족이며 장거리 비지니스나 퍼스트 클라스를 타는 승객들은 기내 서비스에 대해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빵까지 다 먹으면서 순서에 따라 제공되는 음식을 다 받는다면 배가 터질 것이다. 음식서비스 후에는 감당해야 할 지나친 포만감에 비행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연어는 부드럽게 구워졌다. 선으로 표현된 밤색의 액체는 소스였다. 돈가스 소스와 같은듯하면서 다른 맛이었다. 어린 야채와 아스파라거스 줄기는 연어의 맛과 잘 어울렸다. 두어 조각의 김치가 있었으면 완벽일 텐데. 어쩌겠는가 한국 사람임을 증명하는 생리적 욕구인 것을.

이렇게 커피와 과일, 마지막 음료 서비스를 받고 나면 거의 두 시간의 식사 시간이 지나간다. 이후 휴식을 취하고 독서와 TV 시청하면서 요청에 따라 간식 또는 주식과 같은 양의 식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국내의 대형항공사의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라스 서비스도 식사 아이템에서는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반석의 기준과는 매우 다르지만 지급한 만큼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퍼스트 클라스라도 여행 거리에 따라 서비스는 당연히 달라진다.

일반석 승객 입장에서 그곳에서는 어떤 서비스가 제공이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항상 있는 듯해서 올려보았다.


지나친 상상인지 모르겠다. 어떠한 식사를 하던 분위기는 음식이 줄수 없는 정취를 만들어 낸다. 만일 비행기에 더 많은 창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주는 새로운 정서적 반응 뿐 아니라 식사를 즐기는 독특한 정취가 상상이 된다. 높은 공중에 노출되어 바깥세상을 볼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사색하고 글을 쓰고 묵상하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전문가에 의견을 물어보니 웃음과 함께 대답은 “노우”였다. 승객들의 호불호를 떠나 항공기의 구조 강도와 안전성에 비추어 아직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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