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날다

20. 스케쥴 미기

by 최성길


“따르릉” 날카로운 전화기 소리가 깊은 숙면의 표피를 뚫고 의식의 언저리를 파고든다. 이내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이불을 박차고 동시에 전화기에 손이 간다. “부기장님 아직 집에 계시면 어떻게 하나요?” 아침 6시 출발하는 부산발 비행 스케쥴에 시간에 맞게 도착을 못 한 것이다. 이 시간이면 벌써 운항실에서 비행계획서 기상 공항 및 항로 정보 등을 수합하고 분석하여 기장님이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야 할 시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분명 잠들기 전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는데. 신경이 쭈뼛해져 아내가 챙겨주는 양복을 어떻게 입었는지도 모르게 벌써 차가운 겨울의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아직 잠을 떨치지 못한 새벽하늘에는 자욱한 안개가 어두움 속에서 내리고 있었다. 네 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는데 벌써 다섯 시다. 평소 그렇게 많던 택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양복 단추를 더듬으며 이따금 달려오는 자동차로 시선은 연신 향했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 행인도 찾아볼 수 없는 새벽에 택시를 기다리는 마음은 짙은 안개만큼이나 답답하고 오리무중이었다. 세상 속 모든 것에 차단되어 고립된 느낌이다.


겨우 택시비 다블, 트리플을 외친 끝에 방화동 운항실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싣고, 도착 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에 순서대로 계획을 한다. 굳어져 있을 기장님의 얼굴은 살필 겨를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간 운항실 입구에 동료들 두어 명이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었다. 비행 계획과 기상 각종 정보는 브리핑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다는 소리에 그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감사할 겨를도 없이 위층의 라커룸으로 올라가 간신히 유니폼을 걸치고는 늘렸다 놓은 스프링처럼 브리핑실로 곧장 달려왔다. 기장님과 운항 관리사는 당연히 한참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고 사과했다. 여유롭게 웃어주시는 기장님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온몸이 흠뻑 젖어있음을 느낀다. 미리 와서 비행계획서와 기상 공항 및 항로 정보 등 모든 자료를 읽어보고 기장님께 설명해야 하는 처지인데 기장님께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서류를 챙기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부기장으로 발령받고 아직 회사의 분위기가 낯설었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아직 제복과 가슴의 윙 그리고 어깨의 견장이 어색했고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졌던 풋풋한 시절 내로라하는 기장님들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웠었다. 젊음과 활기와 실수와 조바심이 섞여 있던 꿈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왜 그리 빼먹고 놓치는 일도 많았던지. 전날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여권을 비행 가방에 넣어 놓지 않고서 다음 날 국제선 검색대에서 당황했던 일과 비행 관련 서류를 책상에 빼놓고 챙기지 않은 경우 등 초조하고 다급했던 많은 경험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러한 일들은 웬만한 부기장들은 한두 번씩 겪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옆에서 보면서 이해해주고 도와주었던 동기와 선배들의 마음 씀씀이와 그들의 얼굴이 스친다.


스케쥴 미스는 이후에도 한두 번 더 경험했다. 운항실에 들를 시간적 여유도 없이 비행기로 직접 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갓 다린 옷깃처럼 빳빳했던 절도와 아직 고무줄처럼 탄력 있던 정신과 몸이 살아있던 그 시절의 좌충우돌이 유독 생각나고 싱거운 미소를 부르는 것은 아직 가진 것은 없어도 푸르렀던 그 시절에 품었던 꿈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만 있어도 적당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좌충우돌했던 경험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순수함과 열정의 모여 시간과 함께 여유로운 조종사로 시나브로 성장했었다. 경력이 쌓이고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얕은 포구를 떠난 배가 심연의 바다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더욱 깊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과 같을 것이다.


새벽을 달렸던 부기장 초년병 시절의 그 사건은 두렵고, 긴장되었지만 그래도 그 새벽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는 것은 아직 그곳에 남겨 놓았던 뭔가가 있는 것처럼 뒤돌아보게 하는 나의 젊음이 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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