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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향 Feb 28. 2024

작업실의 시간_매화

탐매와 부동

탐매(探梅와 부동(浮動)

조미향

밤새 비는 내렸고 매화는 핀다. 이때 나는 몸과 마음이 바쁘다. 마음에 담은 매화를 찾아나서야 하기에. 매실을 위한 매화가 아니라 어디선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터진 매화송이, 그 청초하고 영롱한 연둣빛 봉오리를 찾아가야 한다.

지금은 어디나 매화가 흔하지만 그렇지 않던 시절, 삼십 년 전쯤에 가창의 어느 다 무너진 집 돌담에 기대어 핀 매화를 봤을 때, 우리 옛 문학과 그림에서 그렇게나 자주 읽히고 보이던 매화의 실체를 마주했다. 실체를 체험하는 것과 상상으로 접근하는 세계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우수(雨水)를 전후로 매화가 필 때, 그 성근 꽃송이의 배치구조와 봄을 향하여 그대로 쑥 내밀어 기일게 올라가는 가지가 참 좋았다. 저녁 산책길에 송이가 성글게 달린 기다란 가지 하나를 찾아 거실에 두고 자면 아침에 온 집이 매화 향기로 가득하다. 그 순간의 향취란......     


국어선생이던 시절, 길어야 열흘 정도인 이 매화의 절정을 학생들에게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삼월 첫 주에 마지막일 매화를 한 가지 들고 들어가 학생들과의 첫 대면을 시작했다. 새로운 의자와 새로운 반 친구들에 싸여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은 나의 이 의아한 첫 등장방식에 당황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여러분, 이것이 매화예요. 여러분은 새학기를 맞이하는 긴장에 싸여 있지만, 지금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는 이 꽃들이 한껏 터져 나오며 그들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이제 올해 나와 문학수업을 하는 동안 매화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거예요. 우리의 선비정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시가 나올 때는 매화를 볼 수 없어서 오늘 미리 가져왔어요. 오늘 이 향기와 자태를 경험하고 나중에 작품에서 매화라는 말이 보일 때, 이 기억을 되살려 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할 때 상상과 체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더군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오늘 매화를 온몸으로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하고 매화를 학생들에게 넘겨준다.


어떤 학생은 꼼꼼히 모양을 살피고 향기를 맡아보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아무렇게나 쓱 보고 다음으로 넘긴다. ‘선생님, 향기가 안 나네요?’ 하는 학생도 있다. 이때다! 하고 안민영의 시조 한 구절을 알려준다. 북송의 시인이던 임화정의 시조에서 인용한 ‘暗香浮動(암향부동)의 자세, 매화향기는 코에 가까이 대고 맡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좀 두고 매화가 향기를 풍겨 그 향기가 공간을 지나서 나에게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봄의 이 시간에 매화를 찾고(탐매探梅), 부동(浮動)하는 향기가 내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 선조들이 매화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보면 매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모든 관계에서 가져야 할 사랑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무심하지 않게 다가가 홀로 있게 하지 않고, 서로 잊혀지지는 않을 거리에서 대상에게 시간을 주는 것, 아......어려운 일이다.     

어리고 성근 매화/ 너를 밋지 안얏더니

눈 기약 능히 직켜/ 두세 송이 푸엿구나

촉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부동(暗香)조차 부동(浮動)하더라.     안민영, 매화사(19세기)     


작업실 옆에 야생매화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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